지난 금요일이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제법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평소 다니지 않던 길이라 거기 늘 계셨는지 아니면 그날만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에 띄었다. 드디어 만났다, 빅판(빅이슈 판매사원)!

일부러 후원은 못하더라도, 일부러 찾아가 사지는 못하더라도, 또 일부러 같이 팔아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마주치기까지 했는데 그냥 가진 못하겠더라.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혼자 반가운 척 하면서 "한 권 주세요" 했다. 왠지 뿌듯한 마음. 그냥 돈을 "준다"가 아니라 무엇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다"고 생각하니 돈을 건네는 나도, 그걸 받는 빅판님도, 손들이 부끄럽지 않다.

(잠깐! <빅이슈>는 뭐고 '빅판'은 뭐냐고요? <빅이슈코리아> 블로그에 가 보시라~)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게 '읽기'보다 '기부'에 가까운 행위였던지라 막상 잡지를 펼쳐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더랬다. 이름도 좀 그래. '소셜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이라니, 인터넷 연예기사 보고 말지 뭐, 이런 마음?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 말똥말똥하게 떠진 눈이 '문제'였던 거라. 마침 가방에 들어 있길래 표지부터 훑어나간다. 값 3,000원이라는 문구 아래 "3,000원 가운데 1,600원이 홈리스에게 갑니다"고 쓰여 있다. 그날 내가 건넨 돈 중 3,200원(동행 것까지 두 권 샀다)이 빅판님에게 가고, 그 중 1,600원은 이분의 저금으로 쓰였겠구나야(빅판 수칙 열 번째가 "하루 수익의 50%는 저축합니다"더라. 이번 호 <빅이슈> 34쪽에 나와 있다). 내가 '후원'한 금액의 쓰임새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으니 더 좋다(잡지를 보면 판매실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각설하고, 표지까지 합쳐 36쪽짜리 잡지 한 권이 이렇게나 알찰 수가 있나 싶다. 여보세요들, 아무리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었다지만 본전은 뽑으시는가요들?

해외에서 시작한 잡지라 그런지 해외 <빅이슈>를 번역한 기사도 있고, 공짜로 <빅이슈> 표지모델을 몇 번이나 했다는 졸리 얘기도 있고, 국내 편집진이 기획하고 쓴 꼭지들도 있다. 그 내용이 특집(이번 호 특집은 "세계 5개 도시의 유행 통신"이다. 그 다섯 개가 뭐냐고? 사서 봅셔!), 스포츠, 영화, 음악, 카운슬링, 영어회화, 음식, 빅판 이야기, 그리고 땡땡이 좋아하는 스도쿠까지 망라할 정도니 내용은 굳이 말해 무엇하랴(사기 전에 내용이 정 궁금하면 저 위 <빅이슈코리아> 블로그에 가 보시라. 거기서도 이번 호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잡지'답게 술술 읽히는 건 물론. 고재열, 허지웅 등 나름 유명한 분들의 "재능기부"도 눈에 띄었다. 아유, "재능기부자"라고 쓰인 잡지를 받아보는 필자의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 지 이름 석 자 대도 아는 이 없을 쥔장의 시샘이다.

선입견을 완전히 깬 편집도 놀라웠다. 사실 '홈리스' 잡지라고 하면 사진 해상도도 엄청 떨어지고 본문은 오탈자투성이일 것 같고 그렇잖나. 물론 비싸게 파는 패션잡지 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기대 이상의 편집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오탈자(여기서 '거의'라고 한 것은 내가 교정교열을 보기 위해 이 잡지를 꼼꼼히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오타'는 하나도 없지만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다), 참 마음에 든다. 청년 일자리 마련에도 기여한다더니, 이 청년들 일 참 잘하네.

뎅강, 또 각설하고, 당신이 누구건, 독자가 누구건, 이 잡지에 실린 기사 중 최소한 한 꼭지는 마음에 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든 그 한 꼭지는 최소 3,000원의 값어치를 해줄 것이다. 그러니 길을 가다 저 멀리 빅판님이 눈에 띄거들랑 망설이지 말고 한 권 사 읽으시라. 아이 참, 아니면 내가 3,000원 물어준다, 까짓!

<빅이슈코리아> No.2 (2010년 8월호)
거리의천사들 안기성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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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8/16 20:28 2010/08/1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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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7 17:47 # M/D Reply Permalink

    홍대역에 약속 기다리다가 지난 번에 창간호를 샀었지.
    시간 되면 이동가판 지원하고 싶었는데 몇 달간 꾸준히 해야하더라고.

    여자 분도 있는 듯 한데, 여성노숙이나 관련 이야기도 많이 볼 수 있음 좋겠던데. 흣-

    암튼, 왠지 기대가 되는 잡지여!

    1. etcetera 2010/08/18 09:38 # M/D Permalink

      그치? 지금이라고 딱히 거부감이 들 것까지는 없지만 잡지가 더 활성화 돼서 여성주의자에게도 '더 좋은' 잡지가 되었으면 좋겠어. 빅판 님들을 빅판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소망도 있고.

  2. 작게작게 2010/08/17 22:42 # M/D Reply Permalink

    전 살 용의도 있고 궁금도 한데.. 왜 제 눈에는 안 띄는 건가요!

    1. etcetera 2010/08/18 09:38 # M/D Permalink

      빅판님들이 아직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주로 번화가에 계시는데 고정적인 것 같지는 않구요. 편집국 블로그인가 빅이슈 블로그인가에서는 "현재 빅이슈 판매지 현황" 같은 것도 올려 주더라구요. 사람 많은 데 가실 때 한 번 주의 깊게 보시길. 빨간 조끼 때문에 눈에 잘 띄는 편이에요 ^^

  3. 냐옹 2010/08/19 00:11 # M/D Reply Permalink

    엇, 한국에도 상륙했군요 저도 구해(?)서 봐야겠어요

    1. etcetera 2010/08/19 09:58 # M/D Permalink

      넵, 부디 성공하시길! 제게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어요 ^^

  4. 작게작게 2010/08/23 12:01 # M/D Reply Permalink

    새 글을 내놓으시오!

    1. etcetera 2010/08/23 12:55 # M/D Permalink

      미친듯이 바빠요, 철푸덕.

  5. 라일라 2010/08/24 02:20 # M/D Reply Permalink

    지나치기만 했는데 저도 사봐야겠어요
    그리고 컴퓨터를 바꾸어서 홈페이지 주소가 기억나질 않길래(즐찾해뒀었거든요) 구글에서 '치한하는 법'으로 검색해서 들어왔어요 ^^v

    1. etcetera 2010/08/24 09:17 # M/D Permalink

      아놔;;;

      부모님 댁에는 잘 다녀 오셨어요? ^^

  6. 빅이슈 청년 2010/09/07 13:54 # M/D Reply Permalink

    고맙습니다. ㅠ.ㅠ (폭풍눈물) 더 열심히 하겠어요!

    1. etcetera 2010/09/08 09:53 # M/D Permalink

      덕분에 "빅이슈"가 유입 검색어로 쑥쑥 크고 있답니다. 관심 가지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얘기겠지요? 계속 좋은 잡지 만들어 주시어요. 계속 열심히 사 읽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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