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사건은 휴대폰용 이어폰을 잃어버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사건 전에 잠재되어 있던 건, 세계 최대의 껌(내 취미생활. 아 뭔가 다른 이름을 지어줘야 할 텐데;) 데이터베이스 구축시도. 1년 전 마련한 보급형 DMB 전화는 MP3 듣기와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모델이다. 덕분에 껌 관련 동영상을 변환하여 짬짬이 보길 생활화. 덕분에 독서량은 급감 -.-V

이어폰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기어나왔다. PMP를 사 봐? 일단 화면이 크잖아. 휴대폰 동영상은 너무 작고 뭉개진다구. 제대로 안 보이니 이거야 뭐... 여기저기 뒤져보니 요즘 나오는 보급형은 30만 원 정도로 충분히 구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뜻밖의 암초를 만났으니, 눈 나빠진다며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보기 드물게 반대의견을 피력하신 그분.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보기 드물게 피력하시는 반대라는 걸 알기에 대번에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어폰 새로 구매. 무슨 좋지도 않은 게 15,000원 씩이나 하냔 말이닷. 그리고 또 그 다음날 아침, 잃어버렸던 이어폰 회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분도 하나 공수를 해 놓으셨다나 -_-V

이어폰이 다시 생기면서 PMP에 대한 욕심은 급속도로 사그라들었다. 그래, 수험생처럼 끼고 살 것도 아닌데 몇십 만 원 들여서 살 건 없지. 휴대폰 영상도 생각보다 괜찮네. 아 그런데 그런데 이번에 나타나신 신님은 물량까지 갖추고 오셨다. 생각지도 않았던 돈 50만 원. 이름도 아름다워라 "용돈"

처음에는 빚 갚는 데나 써야지 했다. 그런데 또 갑자기 머릿속에서 PMP PMP PMP...가 댕댕댕 울리는 거다. 다시 검색. 30만 원이면 적당하잖아? 사버려 사버려 사버려. 이미 산 걸 그분이라고 어쩔 거야. 애시당초 나한테 뭐라고 하시는 분도 아니고. 그러나, 미리 보아둔 모델을 주문하려던 찰나 눈에 띈 비보급형 모델이 문제였다. 이건 뭐, 메탈 바디에, 내가 사랑하는 단순무식 디자인에(겉에서 잘 보이는 건 액정과 프레임밖에 없더라 *.*) 용량까지, 침이 꼴까닥 넘어가게 생긴 거다. 하지만 마침내 침을 꼴까닥 삼키게 된 건 그놈의 가격. 60만 원이 조금 안 되더라. 그 예쁜 것이!

쿠폰에 마일리지 탈탈 터니 인터넷 최저가보다 3만 원 정도는 싸게 살 수 있었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 그러니까 카드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창을 꺼버렸다. 50만 원이면... 세탁기네. 세탁기는 사면 10년은 쓰지만 이건 5년이나 쓰려나? PMP 54만 원을 5년 쓰면 1년에 11만 원. 한 달에 9,000원이 좀 넘고, 이걸 다시 일일로 나누면 300원.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집구석에서 잠만 자도 5년 동안 매일매일 300원이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그럼 나는 PMP를 하루에 300원 가치 이상으로 활용할 수 있나? 그럴 리가.

사실 PMP만 생각한다면 하루에 300원이야 어떻게 해볼 만도 하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하루에 몇백 원씩 나가는 냉장고와 세탁기, 침대, 휴대폰 등등까지 합쳐보면, 나라는 인간 하나가 지금과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오늘 돈을 한 푼도 안 썼다고 진짜로 한 푼도 안 쓴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난 보험회사들이 하루에 백 원 이백 원만 내면 된다며 꼬시는 게 정말 무섭다)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하다 보면 소위 디지털 가전이라는 제품들이 얼마나 눈 튀어 나오게 비싼지 '체감'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21만 원 주고 산 휴대폰은 기껏해야 3년이 한계일 것이다. 요즘은 제품을 그 이상 튼튼하게 만들지 않으니까. 그럼 1년에 7만 원. 한 달에 약 6천 원. 하루에 200원. 냉장고랑 세탁기를 합쳐도 하루에 300원이 조금 넘는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휴대폰은 3년보다는 훨씬 훨씬 오래 써야만 하는 물건이다.

반면 날마다 지불하는 액수가 수긍할 만도 한 아이템도 있기 마련인데, 자주 입는 옷 같은 것들이다. 만 10년 동안 겨울이면 날마다 입었던 긴 오리털 파카는 10만 원 주고 샀던 것이다. 1년에 만 원 꼴. 11월부터 3월까지 입으니까 네 달로 셈하면 한 달에 2,500원. 겨우내 하루에 백 원씩을 내고 나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또 다른 아이템과 합쳐지면 얘기가 달라지지. 저 위에 세탁기랑 냉장고랑... 합친 데다 백 원까지 더하면, 다시 무시 못할 액수가 된다. 몇십 만 원짜리 옷이라면 10년 동안 날마다 입어야 할 판이다. 그것도 한 벌일 리는 없으니까 몽땅 겹쳐서 입어야 한닷!

언젠가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지금과 같은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내가 하루에 얼마씩 지출하고 있는지를 셈해 볼까 하는데, 일단 개별 아이템의 구매를 결정하는 데는 이런 식의 계산법이 큰 도움이 된다. 이걸 사서 얼마나 활용할 것인가, 보다는 이걸 사면 몇 년 동안 하루에 얼마씩을 써야 하나(감가상각 이런 거 없다 --;) 하루도 빼놓지 않고 5년 동안 삼백 원씩 모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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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03/04 10:47 2009/03/0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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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휘모리 2009/05/22 10:36 # M/D Reply Permalink

    잘 읽어보았습니다.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 입니다 ^^

    1. etcetera 2009/05/22 13:17 # M/D Permalink

      마음에 드셨다니 기쁩니다. 그러나 전 아직 PMP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답니다. 흙. 사고 싶을 때마다 이 글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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