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차코(Huanchaco) 찾아 삼만리

동이 틀까 말까 한 아침 일곱 시 반. 트루히요에 도착했다. 웬 블로거의 여행기를 보니 아침에 도착해서 바로 완차코(Huanchaco) 해안 구경을 하고 찬찬(Chan Chan) 일일투어를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일정에 따르기로 한다. 숙소는 완차코에 잡아야지.

터미널 맞은편에, 한국 거랑 비슷하게 생긴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Linea 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Linea 터미널>

한국의 마을버스 내지는 봉고차 크기의 버스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안내원(나 어릴 때는 대부분 '안내양'이었는데 여기는 대개 젊은 '안내군'들이다)들이 제각기 목적지를 외친다. (물론 못 알아들었다. 한국 마트나 시장에서 호객하는 소리도 잘 못 알아듣는 판에;) 그 많은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완차꼬?" 했지만 다들 안 간단다. 한 20분 그러고 있자 과연 여기가 버스정류장이 맞는지, 완차코 가는 버스가 여기 서기는 하는지, 아니 대체 완차코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른 아침,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지라 물어볼 데도 없고, 바쁜 버스 안내원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바쁘다'는 의미는 이렇다. 봉고차 버스의 안내원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문을 열고 내린다. 물론 여전히 달리고 있는 차에서. 열심히 모객을 한 다음 출발하는 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승객에게 빨리 빨리, 를 외치며 타고 내리는 걸 돕는다. 순전히 차를 더 일찍 출발하게 하기 위해서. 마을버스 크기의 버스는 앞문이고 뒷문이고 문을 닫지 않는다. 승객으로 만원이 되었을 때조차.)

버스만 믿고 온 터라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벤치에 앉아 정신을 좀 수습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길 5분? 웬 중년여성이 정류장으로 온다. 짐을 보아하니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모양이다. 손짓 발짓 섞어 완차코 가는 버스가 여기 서냐 하니 그렇단다. 아이고 감사 감사. 그런데 얼마예요? 하면서 손으로 돈 모양을 그렸더니 이 아주머니 손사래를 친다. 응? 버스비 얼마냐는 거였는데 돈 좀 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으셨나 보다. 다시 한 번 물었더니 이번엔 통했다. 운 씬꾸엔따(1.5솔). 한국 돈으로 700원쯤 되려나?

그러고 있으려니 빨갛고 노란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버스가 한 대가 온다. 드디어 완차코 가는 버스. 이 버스가 그 버스라고 알려주신 아주머니도 함께 탔다. 나중에 보니 버스에 대문짝만 하게 Huanchaco라 쓰여 있다. (론리에도 버스안내가 되어 있더라. 췌.)

완차코 가는 버스
<완차코행 버스>

삼사십 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바다가 보인다. 좀 아까의 아주머니가 내리면서 "난 내린단다. 넌 좀 더 가야해." 해 주신다. 고맙습니다. 그때부터 긴장하고 밖을 바라봤지만 완차코가 어디인지는 오리무중. 버스가 설 때마다 여기서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내리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류장에서 기사와 안내원이 이구동성으로 여기니까 내리라고 얘기해 주었다. 우왕, 고마워요. 버스가 떠나는데 기사와 안내원 모두 손을 흔든다. 무뚝뚝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마주 인사하며 활짝 웃어 주었다.

그리고 완차코.
내려서 본 풍광은 이러했다.

완차코 해변
<완차코 해안>

완차코 해변은 현지인들도 많이 놀러오는 곳이라 일과시간에는 사람이 없을 때가 없는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가면 태평양과 독대할 수 있다. 이런 곳인 줄은 몰랐는데, 여기 참, 좋다. 그런데 사진으로 봐선 여느 바다랑 다를 게 없네;

해변을 쭉 걸어 올라가 숙소를 잡았다. 론리에 소개된 NAYLAMP다. 1인실에서 샤워도 하고 속옷도 빨았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포스트도 남겼다. 허기지고 체력도 달려 일일투어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밥을 먹고, 트루히요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세비체(Ceviche)와 잉카콜라

빅벤(Big Ben)이라는 식당은 세비체(Ceviche)로 유명하다고, 론리님께서 말씀하셨다. 세비체는 익히지 않은 생선살을 라임즙에 담뿍 절인 것을 기본으로, 다른 것을 위에 얹거나 섞거나 하는 페루 음식이다. 그런데 나는 회를 못 먹는다. 날것의 느물느물한 감촉을 견디지 못해서다. 그리고 신 것도 못 먹는다. 남들이 별로 안 시다고 하는 과일도 못 먹을 정도다. 그래서 가기 전부터 먹을 수 있을지 적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페루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인데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는가. 단백질(생선살)은 산(酸)과 만나면 응고되니까, 감촉이 일반 회랑 좀 다를 수도 있다는 데 희망을 가졌다.

가격대는 좀 되지만, 이왕 먹어볼 거면 제대로 된 데서 제대로 된 메뉴를 맛봐야 한다는 생각에 빅벤으로. (참고로 빅벤에서는 점심식사만 가능함. 열한 시 반에 열고 다섯 시 반에 닫음)

빅벤에서 바라본 완차코 해변
<빅벤에서 바라본 완차코 해변>

마실 것은 잉카콜라. 페루인들이 코카콜라보다 더 많이 마시는 음료라고 하는데, 코카콜라사에 인수되었다나. 익숙한 불량식품의 맛이다. 합성착향료와 색소가 듬뿍 들어 있다.

잉카콜라와 볶은 옥수수
<잉카콜라와 볶은 옥수수>

그리고 세비체는 역시, 나를 위한 음식은 아니었다. 생선살은 겉이 아주 약간 응고되었지만 특유의 살성은 여전했고, 그 신맛은 내 이까지 녹여버릴 듯, 좀 있으니 잇몸까지 아렸다. 하루 넘게 굶다시피 했고, 그 가격을 생각하자면 어떻게든 다 먹어치웠어야 했으나 결국 1/3도 못 먹고 내가 졌소를 읊조리고 도망 나왔다. 남은 접시를 보고 좌절할 주방장이나 웨이터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에요, 제 입맛이 문제예요,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스페인어가 안 되니 도망 칠 수밖에. 30분 만에 2만 원을 날렸지만, 계산할 때 기념으로 준 열쇠고리 가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굶어 쓰러지진 않을 테니 트루히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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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3/09/16 12:55 2013/09/1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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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마에서 완차코"

    Tracked from 세상 모든 것에 투덜대기 2014/01/08 13:08 Delete

    우힛, 드디어 여행 관련 검색어가 등장. 아 저 이런 거 좋아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정보 막 퍼 주는 거. 다 알려주는 거.리마에서 완차코 가는 방법. 저는 완차코가 첫 일정이어서 트루히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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