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카에서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까지는 14시간이 걸린다. 그 열네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산 넘고 또 산 넘고 또 산 넘고, 점점 높아지고 달리는 건 버스인데 내 숨도 차고, 창가에 둔 물병이 빵빵해졌다 쪼그라들기를 반복하고, 그럼에도 바깥 풍경은 혼자 보기 아깝게 멋있고.

쿠스코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저기가 쿠스코라는 건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 동네에 온 듯, 기와집도 있고 전체적으로 예스럽다. 그러나 동시에 알 수 없는 품위와 위엄이 느껴진다. 도시 전체에 후광이 걸린 것 같다.

쿠스코 가는 길
<쿠스코 가는 길>

마추픽추는 이맘때가 성수기라서 쿠스코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었다. 이름이 예쁘고, 여자들이 주로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한 마마 시모나. 마마 시모나 산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소는 나쁘지 않았다. 서둘러 짐을 풀고 볼리비아 영사관을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 찾기 어렵다는 악명이 자자한 곳이라 나 역시 엄청 헤맸다. 현지인도 모르는 길목에 있을 게 뭐람. 그 근처를 한 시간 이상 헤맨 끝에 겨우 찾았으나 으아악, 업무시간 종료! 할 수 없지. 마추픽추 다녀온 다음에 다시 가야 한다. (볼리비아 영사관 찾아가는 방법은 여기 클릭)

저녁에는 드디어 L님을 만나 저녁을 얻어 먹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마추픽추 턱 밑까지 이동한다.

아침에 일어나 미니 버스(콜렉티보)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 도착했다. 이 기차가 마추픽추 턱 밑에 있는 작은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 데려다 줄 것이다. 그런데 기차는, 기차는... 그 옛날 경춘선이 떠오를 정도로 시끄러웠다. 놀러 간다고 들뜬 마음에 관광열차, 거기에 머릿수가 합쳐치면 가공할 만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아아 이건 좋지 않은 징조야, 절레절레.

가끔 나는 정말 바보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있는데,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나는 왜, 성수기라고 쿠스코 숙소는 미리 예약해 놓고 정작 이틀이나 잘 예정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숙소는 알아볼 생각도 안 했던 걸까? 몇 군데 게스트하우스에 들렀지만 남아 있는 도미토리가 없다. 겨우 남아있는 70솔짜리 싱글룸도 하루밖에 안 된다고 한다. 이러다간 경찰서 가서 하룻밤만 재워 달라 사정해야 할 판이다. 대체 같이 기차에서 내린 그 많은 여행객들은 다 어디서 짐을 푼 걸까. (사실 이건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궁금하다;) 다 포기하고 경찰서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골목에 있는 호스텔 간판이 보인다. 론리에도 나와 있는 호스텔 존(John). 1박에 60인가 70솔을 불렀는데 이틀 잘 거라고 하니까 100솔로 퉁쳐 주었다. 하루에 이만 원 돈이니 어차피 선택의 여지도 없고, 이곳이 물가가 비싼 곳이라고는 해도 한국 모텔값에 비하면 싼 편인지라 그냥 감사히 들어가기로 했다. 쿠스코의 30솔 도미토리 따위는 잊어라! 며칠 (그래봤자 이틀) 도미토리에서 고생했으니 좀 쉬라는 계시로 이해하기로 했다. 시장에서 이것 저것 사다가 방에서 와구 와구 먹고 마실 테닷.

방 잡기 좀 전부터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더니 오후가 되니 제법 온다. 페루에서 처음 맞는 비다. 그나저나 이 상태라면 내일 와이나픽추는 못 올라가겠는 걸.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4/01/20 14:50 2014/01/20 14:50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91

Trackback URL : http://etceteras.pe.kr/trackback/191

Comments List

  1. tinder 2018/03/01 01:42 # M/D Reply Permalink

    facebook find love -
    Incredible! This blog looks exactly like my
    old one! It's on a entirely different subject but it has pretty
    much the same page layout and design. Wonderful
    choice of colors!

  2. coconut oil benefits 2018/04/04 18:45 # M/D Reply Permalink

    Hey are using Wordpress for your blog platform? I'm new to the blog
    world but I'm trying to get started and create my
    own. Do you require any html coding knowledge to make
    your own blog? Any help would be really appreciated!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 197 : Next »

블로그 이미지

투덜투덜

- etcetera

Archives

Authors

  1. etcetera

Calendar

«   2018/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179454
Today:
777
Yesterday: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