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과 후

30년 전,

아버지는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집 아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스름이면 엄마랑 아줌마들은 사택을 도는 트럭에 밥과 국을 들통으로 실어 날랐다.
훗날 사람들은 이를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집에서 마음 졸이며 우리를 돌보았던 엄마는, 밥과 국을 해 날랐던 엄마는,
기억되지 않는다.  

아랫지방에서 내가 해맑게 트럭을 쫓아다니고 있을 때
나보다 세상을 좀 더 산 어떤 여자들은 왜 투쟁 전과 투쟁 후의 차이가 없는지 고민했다.
니넨 투쟁하는데 왜 우린 여전히 답답한 거지?
왜 여전히 ‘중요한’ 일들은 니네가 하고 우리는 밥이나 나르라는 거지?
왜 그에 대해 말하려 하면 그건 부차적인 거니까 ’대의’를 위해 가만히 있으라 하는 거지?
그래서 여자들은 결심했다. 가만히 있지 않기로.
우리가 직접 우리의 얘기를 하기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여성단체들이 1987년에 생겨난 이유이다.


30년 후,

여전히 ‘대의’를 위해 그 입 다물라고 말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고,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만 보고 있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어떤 여자들은
네가 가리키는 그것은 달도 아니고 손가락도 아니라고 말하거나,
누구든 달이든 손가락이든 그 무엇이든에 대해 얘기할 자유가 있다고 말하거나,
달도 손가락도 내게는 모두 중요하다고 말한다.

혹은 나처럼,
‘혐오’가 ‘표현의 자유’라면, ‘혐오할 자유’가 성립된다는 얘기인데,
대체 누구에게 어떤 ‘존재’를 혐오할 자유가 있다는 건가. 
라고 써 보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이제
"딸들아 일어나라"라는 노래를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대신
"딸들아 일어나라! 밥해라!"로 개사해 부르면서 낄낄대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세상은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
30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지.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7/01/30 20:41 2017/01/30 20:41
Response
No Trackback , 109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220

설 며칠 전, 클렌징 티슈를 사 오라는 명이 하달되었다.

“알쩜! 인터넷으로 주문해 드릴게.”
“인터넷으로 하지 말고 그냥 가게에서 사 와.”
“왜. 인터넷으로 하면 더 싸고 편한데.”
“이런 대목에 인터넷으로 그런 거 시키는 거 아니야. 그럴 거면 사 오지 마.”

알 수 없는 사람 1
초극강의 가족이기주의자인 저분은 가끔 저런 언사로 나를 놀래킨다.
어딘가에 썼던 얘기인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아주 아주 꼬꼬마였을 때 완행 시외버스 타고 시골에 가던 길이었다. 추석이었나 설이었나, 아무튼.
좌석번호 같은 건 따로 없고 앉은 사람 선 사람이 마구 뒤엉켜 있다가 무조건 자리가 나면 앉는 사람이 장땡인 그런 옛날 버스. 네 시간쯤 가야 했을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 복잡한 와중에 누군가 내렸고 나는 재빨리 자리를 맡고 그녀를 불렀다. “엄마! 여기!”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내 옆에 서 있던 아기 업은 아줌마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아줌마, 여기 앉아요.
아마 엄마는, 나나 오빠가 아가였을 때 우리를 업고 시외버스를 탔던 그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 아무도 자리 같은 건 양보해 주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환갑이 넘은 연세에도 내 배낭조차 못 들게 할 정도로 자식 새끼 끔찍하게 여기는 그 성정에 비추어 보면 대체 어디에 저런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도 그때 완전 어렸었다니깐?!

알 수 없는 사람 2
그 댁 담당 택배기사님은 더 바쁘더라도 외진 집에 택배 하나 더 배달하고 수수료 받는 걸 선호할까, 아니면 어차피 대목이니 하나쯤 덜 배달하고 10분이라도 일찍 퇴근하는 걸 선호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7/01/30 19:41 2017/01/30 19:41
Response
No Trackback , 50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219


블로그 이미지

투덜투덜

- etcetera

Archives

Authors

  1. etcetera

Calendar

«   2017/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093440
Today:
49
Yesterday:
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