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댐 사업의 허상과 핵 보유국이 된 인도에 대한 비판 글 두 개로 이루어진 책. 10년쯤 전부터 책꽂이에 꽂혀 있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댐'을 '4대강'으로 바꾸어도 내용이 얼추 맞아 떨어진다. 진작 읽을 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을 쓰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갖게 하는 책.

<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펴냄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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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9 18:11 2015/02/0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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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는 당최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순전히 '네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선택한 책. 내가 다녀온, 여전히 좋아하는 터키에도 독재정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 시절, '우리(터키)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심지어 배포되지도 못했던) 팸플릿 때문에 옥고를 치른 후 네 달 하고도 열흘 동안(그것도 추운 계절에!) '부르사'라는 곳으로 유배살이를 했던 네신의 기록. 그 열악한 상황을 특유의 필치로 맛깔나게 써내려갔다. 지은이는 이 책을 '회고록'이라 하고 옮긴이는 이 책을 '자전소설'이라 부르는데, 뭐라 부르든지 간에 참 재미있고 따뜻하고 뭉클하고 슬프다. 아마도 네신 당신 스스로 의도한 것일 테지만, 당신은 정말 정말 고생이 많았을 텐데 나는 재미있게만 읽어서 미안해요.

덧. 간만에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이북.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푸른숲 펴냄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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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8:03 2011/03/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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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에도, 답할 수 없는 것들에도 아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왜냐고 묻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는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을 덜하게 되는 과정이, 속칭 '어른이 되는'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여전히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왜'냐고 묻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나는 여전히 아이인지도. 그리고 더 이상 '성장'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아이'일 것이다. 그런 '아이'의 눈으로 보아 더욱 즐거웠던 책, <제이넵의 비밀편지>.

<생사불명 야샤르>가 어른 버전 네신표 소설이었다면, <제이넵의 비밀편지>는 아이 버전 네신표 소설이다. 제이넵과 아흐멧, 가상의 두 아이가 주고받는 편지에는, 어릴 때 내가 궁금해 했던, 그러니까 납득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1등만 했어'라고 말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 '애국'하기 위해 저개발 지역으로 가 봉사하라는 연설을 할 때는 언제고 자신의 아들이 그 '오지'로 발령났다며 화내는 저명 언론인, 자신의 아이는 모두 대단한 천재라며 자랑을 일삼는 부모, 늘 사장 욕을 하면서도 사장 아들과의 혼사를 성사시키려는 노동자, 학예회에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쓴 어른들의 연극을 강요하는 선생님...

아이를 가장한 어른의 시선으로 쓴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것이 아이들의 '진짜' 생각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자. 여기 나오는 어른들과, 어릴 적 그 어른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부조리함은 이 아이들이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한편으로 재미있는 건, 그러니까 이 책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건, 이 아이들은 절대 어른들을 직접적으로 비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에게 벌어진 에피소드를 진지하게 주고받을 뿐이다. 그 안에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어른들이고).

하지만 이 책이 무조건 시니컬하고 또 무조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어른'이기에 느끼는 것일 텐데, 이제 나는 어른이 '완벽한 사람'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에게 연민 비슷한 감정도 가지게 된다. 이건 내가 어릴 때는 몰랐을 감정.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 작가의 이 책을 일독한 후 결국 내게 남은 기운은 '따뜻함'이다(하긴, 나는 모든 풍자문학의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 감히 권하건대, 아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어른들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이 책을, 어른인 당신도, 아이인 당신도, 부디 한 번씩 읽어보시기 바란다. 초판이 출간된 지 4,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작가의 말과 옮긴이의 글도 빼먹지 말고!

* 덧붙임 *
퀴즈. 아래 인용문에서 역주(譯註)를 표시하시오.

"메틴, 낭비하지 말랬지? 한 방울 두 방울 모여 호수가 되는거야 우리나라 속담 ‘티끌 모아 태산’에 해당되는 터키의 속담. 매일 이렇게 한 장만 낭비해도 1년이면 공책 몇 권을 낭비하게 되는 줄 아니? 아깝지도 않니?"

종이 버전은 이렇지 않을 것 같은데, 이북으로 읽을 때는 처음 한두 개, 끝의 한두 개 빼고는('제대로' 처리된 역주는 본문보다 더 작은 크기에 갈색으로 표시되었다) 모두 본문과 동일한 색깔과 크기로 처리된 이 역주가 책 읽기에 몰입하는 데 몹시 방해된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역주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아니니까), 나처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독자에게는 충분히 거슬리는 수준. 그러니 '사서' 읽으려는 분들은 이를 감안하시라. 이북 시장,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아직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

<제이넵의 비밀편지>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푸른숲 펴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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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10:05 2011/03/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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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재미있고 수컷 운운하는 부분 빼면 대략 공감. 낱개로 쓴 글들을 모아 낸 책이어선지 책 한 권으로 보면 동어반복이 좀 나오긴 하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님. 그냥 뒤지게 강조하고 싶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음.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행위 자체에는 여전히 회의적. 물론 그 이전에 '사연' 들고 오는 사람들이 더 이해 불가이긴 하지만. 게다가 나는 낯모르는 인간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훔쳐보면서 재미보단 부담을 느끼는 종류의 인간인 것 같음.

책 내용 이야긴 여기서 끝. 이제 책 만듦새 얘기. 아래 인용문은 감동적이어서가 아니라 하도 얼척이 없어 따 붙였음. 그러니까 저 숨막히는 문장들을 내가 일부러 타이핑한 건 아니란 말씀.

그럼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 아니라는 건 어떤 거냐. 장애인이야기나온김에거기서풀어보자.독일엔정차시버스의한쪽면을기울여 버스 계단의 턱을 없애고 휠체어가 올라탈 수 있도록 만든 시내버스가벌써십년넘게운행되고있다.그들이휠체어를탄장애인들이남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버스를 만든 이유는 장애인을 특별히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비장애인들이미안한 마음에 장애인들의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마음먹어서가 아니다.

위와 같은 문단이 부지기수. 이 지은이의 글쓰기 특징은 '과도한' 쉼표 사용과 조사 생략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땡땡한 이북이 그 감칠맛을 다 망쳐 놓았음. 띄어쓰기 적용이 제대로 안 되어 오독한 적도 많음.

뭐, 짧게는 아래와 같은 문장도 있음. 생략된 것으로 추정되는 뭉텅이 역시 내 작품이 아님.

하지만 당신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건 분명 있다. 그 과장에 대다음에 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설마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일러스트 그리신 분은, 앞으로도 그림에 말풍선 넣고 '글'까지 넣으시려거든 기본적인 맞춤법 정도는 익히시길 권함. 건투를 빌겠음.

<건투를 빈다>
김어준 지음 / 푸른숲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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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6 11:40 2011/03/0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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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안 읽는 책 두 가지가 문학 요약본과 자기계발서란다. 자기계발서는 예전엔 베스트셀러가 되면 호기심에 읽기도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않는다고.

내가 안 읽는 책 두 가지는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이 책은 나랑 인연이 없을 예정이었다. 이 책 이전에 낸 책이 일곱 권이라는데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나게 해준 건 역시나 빠르고 편리한 전자책 도서관. 흠흠.

이래 봬도 예전 이분의 한겨레 칼럼 팬이었던 사람인지라 호기심이 동했다. 미안하지만 돈 내고 사 읽고 싶진 않았고(이 정도 책을 읽어온 사람이면 본능적으로 돈 내고 살 책인지 아닌지 정도는 감이 잡힌다. 물론 그게 어떤 사람에겐 에세이일 수도, 문학일 수도, 만화일 수도, 사회과학 서적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자신에게'이다), 조금 궁금하긴 했고. 어쨌든 베스트셀러는 덮어놓고 안 읽을 생각 먼저 하는 나 같은 인간까지 끌어당긴 걸 보면 이 분, 참 대단한 작가시긴 한 거지.

하지만 역시나, 나는 에세이와는 안 맞는 인간. 더구나 작가가 싫어한다는 '~하라' 식의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하고 있는 말의 내용만 조금 다를 뿐(아니 이게 중요한 거지 참;;;) '자기계발'이라는 본질은 같아 보인다는 데서도 이 책은 역시 나랑 친하게 지내기 힘든 책. 괜히 읽어서 작가에게 누만 끼쳤고나.

그런데, 자기계발서를 안 읽어봐서 잘 모르고 하는 얘기이긴 한데, 이 책 자기계발서 아님? 아니 뭐, 글 자체가 엉터리라거나 내용이 얼척 없다거나 한 건 아니고, 그저 내 책 취향과 맞지 않는다고만. 그러니까, 내가 '책'에서 기대하는 것을 이 책이 채워주진 못했다고만. 이는 전적으로 얄팍한 호기심만으로 책을 고른 내 잘못이라고만. 그러니 우리 각자의 영역에서 열심히 사시자고만. 이렇게 정식으로 책 말고, 오며 가며 마주칠 짧은 글들은 앞으로도 반갑게 읽겠다고만.

이북에 대해서는, 챕터와 각 챕터의 소제목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서 이게 앞 얘기랑 연결이 되는 건지 어쩐지 알기 어려웠음.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여전히 몰입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주의환기 역할 정도는 맡고 있음. 아래 인용문처럼 본문 사이에 느닷없이 챕터나 책 제목이 튀어나와 깜짝 놀람.

대여섯 살도 되지 않은 이런 꼬마가 집도 절도 없이, 엄마 아빠도 없이 지독한 가난 속에서 얼마나 어려운 인생을 살아야 할지 그건, 사랑이었네 뻔한 일이었다.

저거 말고도 한 건 더 있음.처음엔 비문인가 뭔가 싶어서 한참 고민했는데, 오프라인 책도 이런지 누가 알려주면 고맙겠음.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펴냄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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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6 17:05 2011/02/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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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생사불명 야샤르>가 나왔을 때였다. 야샤르는 참 좋아서 잘 안 쓰는 독후감까지 썼었는데, 그 후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마땅찮던 차 별 기대 없이 펼쳐본 책이 바로 이 <개가 남긴 한마디>이다. 별 기대 없이 오프라인 서점에서 읽다가 아쉬움에 쩝쩝 덮어두고 나왔던 이 책을 어느 고마운 분께서 사주셨고, 덕분에 감사히 일독한 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창고에 모셔둔 참.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이지만,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어젯밤 둘러본 땡땡성당 전자책도서관과 아이패드 때문이다. 입사담당자에게 어필하는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이니, 네이티브처럼 영어 말하는 법이니 하는 실용서가 신간의 절대다수인 여느 도서관과 달리 이 도서관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는지 제법 많은 '푸른숲'의 책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아직 전자책 도서관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이라 보유권수가 1권뿐이라도 대부분 대출이 가능한 상황. 얏호 하며 리스트를 살피다 다시금 내 눈에 띈 게 바로 이 책이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당장 대출. 당장 이독.

풍자소설에 열광하는 내게 이 책은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처음 읽었을 땐 대체 이게 어떤 상황을 비꼰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도 한 번 더 읽으면서 분명해졌고, 출판사가 왜 이 책의 독자를 하필(?) '청소년'으로 상정했는지도 헤아리게 되었다.

나는 바담풍이라 해도 너는 바람풍이라 하라는 부모(유독 '인간'의 부모만 그러하다!)의 이야기, 국세청으로 환생한 도둑고양이 이야기, 뇌물 받는 관리들의 이야기(세어보진 않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왕과 관리를 비롯한 공공기관, 그리고 아이 키우는 부모가 아닌가 싶다)에 깔깔대다 보면 조금은 가슴이 뻐근해지는데, 그건 아마 우리들 중 누구도 작가가 비판하는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 아니 심지어 당신도 나도 때로는 이 체제유지의 공모자이기 때문일 테지.

뭐 어쨌든, 산책하는 마음으로 스윽 읽기 좋은 책.

아참, 내용 말고 형식, 그러니까 이북에 대해서라면, 며칠 전 혹평한 책보다는 훨씬 낫다. 띄어쓰기가 간혹 이상하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종이책에 수록되었던 그림까지 함께 넣어 읽는 재미를 높였다. 그림은 무조건 새 페이지에서 시작하도록 되어 있어서 가끔 문단 중간 글이 끊기고 아래쪽이 텅텅 비어서 깜짝 놀라게는 되지만, 이건 만드는 쪽에서 페이지를 일일이 지정할 수 없는 epub 포맷 자체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그 외 불규칙한 행간은 앱(북땡땡)의 오류인 듯하고. 역시 모든 이북이 내 참을성을 시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가 남긴 한마디>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이종균 그림 / 푸른숲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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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23:14 2011/02/2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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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가 생겼고,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으로 이북(전자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글 책은 아직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결제수단이 한정되어 있어 많이 사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종이 대신 모니터를 보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인터땡땡 이북 카테고리에서 드디어 휴대폰 소액결제가 가능해졌을 때, 젠장,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구나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번 책 <대학로 좀비 습격 사건>은 내가 인터땡땡에서 돈 내고 '구입'한 세 번째 이북이다. 가격도 무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보다 비싼 5,000원!

뉴에이지 문학선이라는 생경한 소개글(편집장님, 책 소개글 참 좋더군요. 작품보다 오히려 책 소개가 더 훌륭해 보였다는 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지만요)도, 서점에서 먼저 보았다면 아마도 구입할 일 없었을 소재도, '블랙 코미디'를 의도했다고 하나 나와의 교감에는 실패한 책의 내용도, 다 이해할 수 있다. 나 이외의 누군가는 그 내용에 몹시 흡족해 했을 테고, 그것으로 책의 값어치는 충분히 한 것일 테니까. 그건 다만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소설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정작 나를 분노케 한 것은 바로 책의 만듦새였다. 이북의 '만듦새'라니, 오오, 나도 내가 저런 단어 조합을 만들어 쓸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나 분명 내가 몇 개월 만에 텍스트 앱까지 다운 받아가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한 건 분명 이 책의 만듦새다.

각 장(챕터)제목을 본문과 한치의 구분도 없이, 심지어는 띄어쓰기도 없이 본문 위에 대충 얹어놓은 모양새는, 무료로 다운 받아 읽은 <인형의 집을 나와서>보다 못했다. 그뿐이랴. 분명 하나인, 따라서 '한 줄'로 처리되어야 할 문장이 갑자기 줄바꿈 되면서 새로운 문단으로 시작하는지, 왜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무시로 일어나서 글 읽기를 방해하는지. 혹시 '좀비'라는 '무서운' 소재를 가지고 쓴 무서운 소설에 너무 몰입하지 말라는 편집진의 배려인 걸까?

아마추어라도 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운 교정교열은 또 어땠던가. 띄어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띄어쓰기에 자신없어 하는 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거푸 나오는 '만신창이' 아닌 '망신창이'는 내가 어찌나 다 '망신'스럽던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책의 종이책은 어떤 모습일지. 이북 버전처럼 '망신창이'일까? 아님 그쪽은 그나마 '책'이라 불려도 좋을 만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부디 후자였으면 좋으련만. 안 그럼 그 때문에 잘려나간 나무들이 너무 불쌍해서 오늘밤 잠을 못 이룰 것 같으니까.

그러나 한편으론, 역시나 이쪽 동네도 대형 출판사들의 발빠른 대응과 비교적 깔끔한 편집(epub가 깔끔해 봤자긴 하지만. 하긴 그래서 이 책에 더 화가 나는 거긴 하지만.)에는 못 당해내겠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박완서님의 책들은 벌써 이북으로 속속 제작되었고, 유명작가들의 책을 내는 유명 출판사는 이제 종이책 신간과 거의 동시에 이북도 발매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 그래도 부족한 편집일손과 자금력으로 그들과 똑같은 수준의 책을 만든다는 건, 군소출판사(이 책을 낸 곳이 군소 출판사인지는 모르겠다만. 다만 지금은 일반적인 추측 경로를 따를 뿐.)로서는 가랑이 찢어지는 지름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럴 때는 엉거주춤 가랑이 벌리고 있느니 잠깐 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듣보잡 블로거한테 혹평이나 듣고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장기적인 안목으로 천천히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그러나(대체 왜 자꾸 '그러나'로 문단을 시작하는 것이냐! 블로깅 안 하는 동안 접속사는 '그러나' 말고는 다 잊어버란 것이더냐!)어쩌면 이 책을 이북으로 구입한 게 더 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에 산 맞춤법 가관인, 유명 출판사에서 낸 유명 번역가의 유명한 소설은 그래도 '책'이라고, 버리지도 못하고 다시 읽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책꽂이에 밀어넣어 두었는데 이 책은 그냥 '삭제'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물경 오천 원이면 밥이 한 낀데 쩝, 하는 탄식과 더불어.

그나저나 이북도 미리보기나 샘플 내려받기 좀 얼른 갖춰 주십쇼 쫌. 사고 싶은 책 있어도 번역 편집 상태를 확인할 수가 없어서 구입 안 하고 있는 책이 한둘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문득 엄습하는 두려움. 혹시 내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수많은 이북 대부분이 이보다 못한 모양새인 것은 아닐까?...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구현 지음 / 휴먼앤북스 펴냄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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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2 22:56 2011/02/2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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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이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제법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평소 다니지 않던 길이라 거기 늘 계셨는지 아니면 그날만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눈에 띄었다. 드디어 만났다, 빅판(빅이슈 판매사원)!

일부러 후원은 못하더라도, 일부러 찾아가 사지는 못하더라도, 또 일부러 같이 팔아 드리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마주치기까지 했는데 그냥 가진 못하겠더라.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닌데 괜히 혼자 반가운 척 하면서 "한 권 주세요" 했다. 왠지 뿌듯한 마음. 그냥 돈을 "준다"가 아니라 무엇에 대한 대가로 "지불한다"고 생각하니 돈을 건네는 나도, 그걸 받는 빅판님도, 손들이 부끄럽지 않다.

(잠깐! <빅이슈>는 뭐고 '빅판'은 뭐냐고요? <빅이슈코리아> 블로그에 가 보시라~)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게 '읽기'보다 '기부'에 가까운 행위였던지라 막상 잡지를 펼쳐 볼 생각은 하지 않았더랬다. 이름도 좀 그래. '소셜 엔터테인먼트 매거진'이라니, 인터넷 연예기사 보고 말지 뭐, 이런 마음? 그런데 아침 출근길에 말똥말똥하게 떠진 눈이 '문제'였던 거라. 마침 가방에 들어 있길래 표지부터 훑어나간다. 값 3,000원이라는 문구 아래 "3,000원 가운데 1,600원이 홈리스에게 갑니다"고 쓰여 있다. 그날 내가 건넨 돈 중 3,200원(동행 것까지 두 권 샀다)이 빅판님에게 가고, 그 중 1,600원은 이분의 저금으로 쓰였겠구나야(빅판 수칙 열 번째가 "하루 수익의 50%는 저축합니다"더라. 이번 호 <빅이슈> 34쪽에 나와 있다). 내가 '후원'한 금액의 쓰임새를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으니 더 좋다(잡지를 보면 판매실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각설하고, 표지까지 합쳐 36쪽짜리 잡지 한 권이 이렇게나 알찰 수가 있나 싶다. 여보세요들, 아무리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었다지만 본전은 뽑으시는가요들?

해외에서 시작한 잡지라 그런지 해외 <빅이슈>를 번역한 기사도 있고, 공짜로 <빅이슈> 표지모델을 몇 번이나 했다는 졸리 얘기도 있고, 국내 편집진이 기획하고 쓴 꼭지들도 있다. 그 내용이 특집(이번 호 특집은 "세계 5개 도시의 유행 통신"이다. 그 다섯 개가 뭐냐고? 사서 봅셔!), 스포츠, 영화, 음악, 카운슬링, 영어회화, 음식, 빅판 이야기, 그리고 땡땡이 좋아하는 스도쿠까지 망라할 정도니 내용은 굳이 말해 무엇하랴(사기 전에 내용이 정 궁금하면 저 위 <빅이슈코리아> 블로그에 가 보시라. 거기서도 이번 호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잡지'답게 술술 읽히는 건 물론. 고재열, 허지웅 등 나름 유명한 분들의 "재능기부"도 눈에 띄었다. 아유, "재능기부자"라고 쓰인 잡지를 받아보는 필자의 기분은 얼마나 좋을까. 지 이름 석 자 대도 아는 이 없을 쥔장의 시샘이다.

선입견을 완전히 깬 편집도 놀라웠다. 사실 '홈리스' 잡지라고 하면 사진 해상도도 엄청 떨어지고 본문은 오탈자투성이일 것 같고 그렇잖나. 물론 비싸게 파는 패션잡지 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기대 이상의 편집과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오탈자(여기서 '거의'라고 한 것은 내가 교정교열을 보기 위해 이 잡지를 꼼꼼히 읽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오타'는 하나도 없지만 '전혀 없다'고 말하지 않은 이유다), 참 마음에 든다. 청년 일자리 마련에도 기여한다더니, 이 청년들 일 참 잘하네.

뎅강, 또 각설하고, 당신이 누구건, 독자가 누구건, 이 잡지에 실린 기사 중 최소한 한 꼭지는 마음에 들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든 그 한 꼭지는 최소 3,000원의 값어치를 해줄 것이다. 그러니 길을 가다 저 멀리 빅판님이 눈에 띄거들랑 망설이지 말고 한 권 사 읽으시라. 아이 참, 아니면 내가 3,000원 물어준다, 까짓!

<빅이슈코리아> No.2 (2010년 8월호)
거리의천사들 안기성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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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20:28 2010/08/1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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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책좀사서볼까하는데좋은책좀추천해주세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답장을 보냈다.

"나 요새 보는 책은 뜨개질책뿐;;;"
"ㅋㅋ 뜨개질도책보고하나요"
"그럼 도안 보고 하쥐 ㅎㅎ"

아 난 왜 요즘 책도 안 읽고 뜨개질만 할까. 보는 책이라곤 왜 뜨개도안 책뿐일까. 불쌍한 리뷰 카테고리... 이렇게 자책하다 생각이 미쳤다. 뜨개질 책 리뷰 올리면 안 돼? 원래 인터넷서점 블로그 접고 나온 데는 별점 같은 거 매길 필요 없이 내 맘대로 내가 쓰고 싶은 책이든 논문이든 쪽글이든에 관해 아무 제약 없이 리뷰 쓰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잖아? 왜 안 돼? 그래서 쓰기로 했다. 뜨개질 책 리뷰!

"두고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인테리어 소품 DIY"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각종 인테리어 소품 도안으로 꽉 차 있다. 컵 홀더부터 바구니, 쟁반, 밸런스 커튼, 테이블 매트, 슬리퍼까지 제목만 보면 홀딱 넘어가게 생겼다.

그런데 지금까지 뜨개질 책 몇 권 사서 살펴보고 내린 결론에 따르면, 원래 뜨개질 책이라는 게 도안을 알리고 책을 팔겠다는 의도도 있지만 저자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파는 '실'을 판매하는 목적이 더 크다. 이 책뿐 아니라 다른 뜨개질 책도 펼쳐 보면 사람들이 많이 쓰는 실보다는 ㅇㅇ사니 xx사니 하는, 딱 그 가게에서만 파는 특정 실 이름을 재료로 해서 작품을 만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책에 나오는 이미지에 반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 독특한 실을 찾게 되고, 저자(와 그 가게)는 당연히 책도 팔도 실도 팔고 일석이조의 이문을 남길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리고 이 책의 '그 실'은 바로 주트사다. 40여 개의 도안 중 30개 정도는 모두 주트사로 떠야 하는 소품이니 말 다했지.

주트(Jute)는 '황마'라는 뜻으로 여러 종류의 마 중 가장 질이 떨어져 자루나 마끈 등으로 사용되는 저급 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 모토히로 사에서(이렇게 말하니 뭐 좀 잘 아는 회사 같다만 사실 주트사 검색해 보다가 알았다) 황마(30%)와 아크릴(70%)을 섞어 만든 게 바로 주트사다. 이렇게 뜨개용 실로 탈피하면서 주트사 가격도 덩달아 치솟는다. 지은이가 운영하는 뜨개 사이트에서 확인한 바 주트사 가격은 25g에 무려 3,500원!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감이 안 온다면 청송에서 나오는 면콘사(무색) 한 콘(1kg 이상)이 12,500원이고 겨울철 쓰는 모사 100g짜리가 보통 5,000원 안팎(물론 비싸려면 한정 없이 비싸진다만)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된다(물론 단가는 실 종류에 따라 다른 게 맞다. 가격을 단순비교하자면 그렇다는 거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엄청 바가지를 씌워 파는 건 아닌 것 같은 게, 일본 본사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25g 소매가가 4,000원 정도니까 워낙 이렇게 허걱스러운 실이려니, 가공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이려니, 할 수밖에.

그러나 덕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심플섬머러그' 한 장을 뜨려면 실값만 16만 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고(완제품 사진이 있고 옆에 가격이 있길래 처음엔 완제품 가격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DIY 패키지;;;), 작은 바구니 하나 뜨는 것도 1~2만 원은 들여야 할 참이다. "두고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상당한 금전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뭐, 주트사가 부담스럽다면 좀 더 싼 실을 가지고 책에 나오는 도안을 응용해 볼 수는 있겠다(실제 청송 사이트 같은 데 들어가보면 여기 나오는 도안을 응용해서 짠 카페트 등을 볼 수 있다). 한데 이런 경우(사실 이건 주트사를 가지고 뜰 때도 마찬가지이긴 하다만) 안타깝게도 도안 자체가 별로 친절하지 않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다른 뜨개질 책이 빼뜨기해야 할 부분 등을 일일이 짚어주는 반면 이 책은 다 생략 생략 생략. 자세한 설계도라기보다는 스케치보다 좀 더 자세한 수준에 가깝다. 그렇다고 '도안' 축에 낄 수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고, 뜨개질 중수 내지 고수라면(내가 '중수' 정도 되는데 몇 개 빼고는 이해 가능했음) 도안만 보고 무리 없이 떠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뜨개초보인 데다 주위에 자문할 사람도 없다면 구입을 재고해보기 바란다.

오류로 보이는 부분도 몇 있다. 별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요새 내가 뜨고 있는 "꽃모양 밸런스 커튼(이 책 표지에 나와 있는 그 커튼)"은 모눈뜨기로 대칭이 되게 떠야 하는데 중앙선을 중심으로 왼쪽이랑 오른쪽 색칠된 부분이 다른 부분이 있다. 코바늘 대바늘 기초 뜨기 알려주는 부분에서도 가로로 실을 빼 뜨는 방법을 표시한 기호 아래 3코 모아뜨기가 설명되어 있다든지 하는 것도 오류로 보인다(다 사진 찍어 올리고도 싶다만;;; 저작권이랑 귀차니즘 때문에;;; 혹시 관계자가 보고 '증거'를 요구한다면 그 때 찍어 올리도록 하겠다). 역시 전체적인 흐름을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이것이 '오류'임을 알아챌 수 없는 수준의 뜨개꾼이라면 진행이 좀 어렵긴 하겠다.

그렇지만 도안을 자신만의 작품에 응용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라면 참고 삼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책이다. '이런 것도 뜨개로?' 하고 놀랄 정도로 제법 깜찍하고 기발한 소품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까. 뜨개질 책이 대개 그렇듯 앞쪽의 시원시원한 이미지 컷들도 볼 만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주트사, 예쁘긴 예쁘네그려. 츄릅~

<송영예의 스타일 손뜨개>
송영예 지음 / 동아일보사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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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5:17 2010/06/1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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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번역이 엉망이어서도 아니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오탈자 때문도 아니고, 행간이 너무 빡빡해서도 아니고,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도 아니다. 그냥,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심장을 한 번씩 들었다 놓는 것처럼 무겁기 때문이다.

일 없고 돈 없고 부양해야 할 아이만 있는 남미의 한부모 여성의 선택은 미국행이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그럼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책이 탐구하는 건 바로 그 남겨진 아이들이다.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떠난 아이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엔리케의 여정은 결코 (제대로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이진 않다.

어릴 때 헤어져 어렴풋한 촉감과 몇 장의 사진, 간혹 걸리는 전화 목소리 정도로만 엄마를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우리 환상 속의 완전무결한 엄마이기도 하고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기도 하다.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이곳에서 다른 집보다는 약간, 아주 약간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정서적으로 몹시 피폐하다. 책에서 세밀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건 딱히 '엄마'가 키우지 않아서(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 뷁!)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래 하나 뿐이던 주 양육자가 아예 없어져버리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다른 일가친척에게, 그것도 모자라 번번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려가며 맡겨지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다.

(이건 잠깐 다른 얘긴데, 어찌 보면 엄마들에게도 이 아이들은 '드림'인지도 모른다.

"많은 엄마들이 아주 잠깐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6년에서 8년까지 계속 헤어져야 해요." 이주민 문제를 전공한, 로스앤젤레스 지역연합학교 사회복지사인 아날루이사 에스피노자가 말했다. 어떤 엄마들은 밀입국 알선자에게서 자기 아이가 아닌 아이를 건네받는 경우도 있다. 처음 보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잃지만, 엄마들은 금세 받아들이고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 (189쪽)

"금세 받아들이고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을 정말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 보니 공부랑 영 등진 건 아닌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마치고 변변한 직업을 갖길 바라는 '엄마'의 소망과 달리 이들은 대개 본드와 마약에 손을 대고, '막장'까지 치닫다 결국 아무 희망도 없는 고향을 떠나 '엄마'를 찾아가게 된다. 미국에 가서, 엄마를 찾으면, 다 잘될 거야.

책의 상당 부분은 이들이 '엄마'를 찾아 가는 여정에 대한 묘사이다. 어디서 어떻게 기차를 몰래 타고, 어디서 강도를 만나고, 어디서 치료를 받고, 어디서 다시 잡혀 송환되었다가 다시 시도를 했는지. 그 와중에 누구는 강간을 당하고 누구는 다리를 잃고, 누구는 돈을 잃고, 또 누구는 목숨을 잃는다. 함께 여행하는 아이들도 믿을 수 없고 지역 폭력배들도 믿을 수 없고 경찰도, 이민국 사람들도 믿을 수 없는 여행길.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눈물겨운  여정.

그래도 그들이 이 지독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이민국 직원에게 발각되어 돌려보내진 뒤에도 두 번 세 번, 일고여덟 번, 성공할 때까지 시도할 수 있는 건, '엄마'에 대한 그리움(혹은 환상), 희망 없는 고국,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예수 성심상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엔리케는 밑열이식 화물차 위에 혼자 있게 되었다. 밤이 검은 망토로 사방을 감쌌고, 기차는 작은 마을을 지나며 구슬픈 기적 소리를 냈다. 그때 우연히 옆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수십 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작은 꾸러미를 들고 철길을 따라 집에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두려웠다. 이 사람들이 돌을, 아니 바위를 던질 것 같았다. 그들은 기차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렸다. 엔리케도 한 여자와 아이가 그의 밑열이식 화물차를 따라 달리는 것을 보았다.
  "이봐요!" 그들이 소리치며 던져준 것은 롤 크래커였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엔리케는 몸을 쭉 뻗어 잡으려고 했지만, 놓치고 말았다. 크래커가 몇 센티미터 옆으로 날아가, 기차에 맞고 땅에 풀썩 떨어졌다. 철길 양 옆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차량 지붕에 있는 불법이주민들에게 꾸러미를 던지고 있었다. 기차가 빨리 달려서 빗맞지 않도록 잘 겨냥해 그들에게 던져 본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엔리케가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그 여자와 소년이었다. 그들은 파란색 비닐봉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팔에 뚝 떨어졌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다. 쏜살같이 지나간 그 사람들이, 엔리케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엔리케는 봉지를 열었다. 롤 빵 여섯 개가 들어있었다. 엔리케는 그들의 친절함에 한동안 넋이 나갔다. (138~139쪽)

롤 빵 여섯 개에 넋이 나간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의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한동안 넋이 나갔다. 어떻게,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두들겨 맞고 며칠은 좋이 굶은 아이에게, 상대에게 들리지도 않을, 고맙다는 인사를 할 힘이, 심성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나를 울리는 건 언제나 다큐. 고맙습니다, 라니.

그리고 잘 찾아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인간이란,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

이주민을 돕던 마을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의 총을 잘못 맞아 죽은 것 같았다. 이들은 막대기와 돌멩이를 쥐고 시청을 둘러쌌다고 한다. 그리고 뭘 요구했을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물론 그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것은 그 전날 체포된 이주민들의 석방이었다. 이 가난한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이 단지 '재수 없이 경찰 총에 맞아 죽은 사건' 이상이 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도움으로 멕시코-미국 국경에 도착해 어렵사리 돈을 모아 어렵사리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 엄마는 어렵사리 돈을 모아 '코요테(불법 밀입국 알선자)'에게 보내준다. 코요테는 아이와 몰래 강을 건너 육로로 엄마가 있는 지역에 데려다 준다. 드디어 모자상봉.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엔리케(<엄마 찾아 삼만 리>의 주인공 아이와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일까? 책 내용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의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반가움도 잠시, 엄마는 고국에서 그려왔던 '그 엄마'가 아니요, 아이 역시 미국에서 오매불망 기다렸던 '그 아이'가 아님을 서로 깨닫게 된다. 왜 필요할 때 사랑을 주지 않았냐, 왜 곁에 없었냐며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와, 누구 때문에 이 타국에서 필요한 돈과 장난감을 보내주려고 열심히 일했는데 적반하장이냐며 억울해 하는 엄마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엄마'가 있는 '미국'이 결코 지상낙원이 아님을 깨달은 아이는 다시금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고국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삶은 망가져간다.

그쯤 가다 보면, 어떤 아이들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정착하고 사랑하는 이와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그렇고 그렇게 살다 그렇고 그런 삶을 마감할 것이다.

... 아이와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고국에는 굶어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엄마/아빠 혼자 미국으로 떠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학비와 장난감이 채워줄 수 없는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남미의 가난한 이들에게 계속 주어지고 있다. 이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에필로그에 가서야 지은이와 전문가는 단순하지만 어렵고, 그러나 그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이는 해법을 제시한다. 남미 국가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그들 나라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라는 것.

... 오랜 시간과 돈, 무엇보다 열정과 애정으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 써낸 감동적인 르포 하나는 정말 많은 생각거리와 연구주제, 크나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더불어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다.

<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 하정임 옮김 /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펴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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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00:11 2009/08/0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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