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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이 이전의 반으로 줄어들면서 보다 계획적으로 살 필요성이 생겼다. 고정지출은 예상 가능하니 별 문제 없지만 다달이 닥치는 특별(?)지출이 문제였다. 어느 달은 경조사비, 어느 달은 병원비, 또 어느 달은 자동차 보험료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지출들. 거기에 맞추다 보니 어느 달은 쪼들리고 어느 달은 좀 남고... 그것까지는 감수할 수 있었지만, (가계부를 착실히 쓰는 것과는 별개로) 그달 그달 이번 달엔 얼마가 나갈까 어떻게 돈을 메울까 하는 데 과도한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고안(?)했고, 1년 넘게 성공적으로 유지 관리하고 있다.

1) 부정기/부정액 지출 항목 정해서 계좌 개설하기
일단 부정기/부정액 지출의 주요 항목을 정한다. 이건 당연히 사람마다 다르다. 내 경우 보험/의료, 생활요금, 차량유지, 데이트, 경조사, 예비비, 미용 피복, 취미, 운동, 여행, 용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항목에 따라 계좌를 개설한다. 항목 하나에 계좌 하나. 은행에 방문해서 종이통장을 만들어야 하는 거면 번거로웠을 텐데 다행히 내 주거래 은행은 은행에 방문하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입출금 계좌를 개설해 준다. 인터넷 전용 계좌지만 상관없다. 다만 매달 고정적으로 정액이 지출되는 항목은 제외한다. 예를 들어 매달 4만 원씩 내는 관리비와 55,000원씩 나가는 통신비는 생활비 계좌에 몰아넣는다.

2) 항목별 월평균 지출 금액 산출하기
예를 들어, ‘도시가스’ 통장이 있다 치자. 여름 세 달의 도시가스 요금은 5,000원씩이고 한겨울 요금은 10만 원, 봄 가을 요금은 2만 원 정도라면 연간 지출은 총 40만 원 정도겠다. 이걸 12개월로 나누면 3만 원 정도다. 다른 항목도 이런 식으로 해서 월평균 지출액을 가늠한다. 뭐, 반드시 월평균 금액이 아니라 ‘이 항목에는 한 달에 이만큼만 지출하겠어!’ 하는 의지의 표현이어도 괜찮다. 이를테면 나는 미용/피복에는 한 달에 2만 원을 배정하였다. (지켜진 적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그럴 때 쓰라고 ‘예비비’ 계좌가 있는 것이다! 예비비 계좌는 아래 팁 참조)

3) 개별 계좌에 월평균 금액 입금 후 해당 항목 지출은 해당 계좌에서 지출하기
이렇게 계산한 월평균 금액에 약간의 여유분을 더한 금액을 다달이 해당 계좌에 입금한다. 위에서 예로 든 ‘도시가스’라면 35,000원 내지 40,000원을 ‘도시가스’ 계좌에 입금한다. 그리고 매달 도시가스 요금을 이 계좌에서 지출하는 거다. 그리고 약간 넉넉하게 입금하기 때문에 1년이 지나면 자투리 돈이 생긴다. 그럼 그걸 적금통장에 넣든지 ‘나한테 선물’을 하든지 아무튼 공돈 생긴 기분으로 쓰면 된다.

그러니까 이건 비고정 지출을 고정지출화 하는 방법인 셈이다. 환갑이나 칠순 등 집안 경조사를 위해 이런 식으로 목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착안했는데, 1년 동안 운용해 본 결과, 아주 만족스럽다. 덕분에 올 1월 자동차보험이라는 큰 산을 넘었고, 여행도 다녀왔으며, 며칠 전엔 파마도 했으니까. 무엇보다 매월 달라지는 지출액에 따라 가계가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점, 무조건 일정액 이상 저축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그래서 월급날 각각의 계좌와 적금에 돈을 넣고 나면 생활비 계좌에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금액(관리비 등)만 남아 있게 된다. (짬 내서 이거 하고 나면 완전 뿌듯함.) 그런데 그럼 용돈은? 또다른 계좌에 한 달 용돈을 입금해 놓고 그때 그때 꺼내 쓴다.

이렇게 관리하다 보면 1년, 혹은 몇 달쯤 지나면 가랑비 젖듯이 각각의 계좌에 여윳돈이 쌓이게 된다. 그럼 그런 돈을 모아 뭔가 사치(?)를 하거나 또 다른 목돈이 필요한 데 쓸 수 있다. 내 경우, 매달 의료비로 4만 원씩을 모으는데 이 계좌의 잔액이 얼마 전 40만 원이 되어 별도의 부담 없이, 벌벌 떨지 않고도 수명이 다 된 금니를 교체할 수 있게 되었다.

참, 누군가 혹시 이 방법으로 돈 관리를 시작하겠다면 ‘예비비’ 계좌는 꼭 만들 것. 경조사비 통장으로도 해결 안 될 만큼의 경조사가 있는 달 같은 때 유용하게 쓰인다.

팁 하나 더. 신용카드 얘긴데, 관리가 안 돼서 신용카드를 안 쓰는 사람도 있던데 나는 항공사 마일리지랑 연계해 놓고 열심히 잘 쓴다. 신용카드를 잘 관리할 자신이 없을 때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세워 놓고 지키면 된다. 1)할부(무이자할부 포함. 절대 ‘무이자’에 현혹되지 말 것)와 현금서비스는 사용하지 않는다. 2)‘미리결제’ 서비스를 이용하여 신용카드를 체크카드처럼 사용한다. 즉, 계좌에 잔액이 있는 만큼만 결제하고 이삼일 뒤 전표가 매입되면 계좌에서 돈을 빼내 바로 결제해 버리는 거다. 나처럼 신용카드 부가서비스가 필요하긴 한데 잘 사용할 자신이 없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이 방법은 무조건 아끼고 아끼고 아끼는 사람에게보다는 적당히 쓰면서도 수입과 지출을 계획적으로 ‘관리’하려는 사람에게 더 적합한 방법이다. 그리고 계좌에 늘 얼마간의 돈이 남아 있기 때문에(왜인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경우 이렇게 모인 계좌들의 총 잔액은 늘 150~250만 원 정도 된다) 정말로 급한 목돈이 필요할 때는 이 돈을 다 그러모아 사용할 수 있다. 줄줄이 통장을 보면 고프던 배도 불러진다는 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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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3 16:02 2015/04/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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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달 지난 얘기지만 그래도 해야겠기에;

지난 11월 말, 인터스텔라를 보러 갔습니다.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대서 무려 2주 전에 예약을 했지요. 아이맥스는 무조건 뒷자리를 외친 동행 덕에 예매한 좌석은 맨 뒷자리 장애인석 옆이었습니다.

영화관 좌석배치도
<상영관 좌석 배치도>

이렇게 생긴 배치라, 영화를 보러 온 휠체어 장애인이 없을 경우 우리는 맨 뒷줄에 오붓하게 앉아 영화를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휠체어석은 공간과 바(bar)만 있어 휠체어를 타고 있어야만 착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이틀 전, 우연히 들어가 본 영화관 사이트는 제가 예매한 일시의 표가 매진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응? 장애인석도 매진이라고? 때마침 쥔장의 호기심 발동. 매진 표시는 장애인석까지 매진일 경우 표시되는가, 비장애인석만 매진일 경우 매진 표시를 하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다른 시간대의 예매현황 등등을 살펴보고 마침내 알아낸 정답은? 장애인석까지 매진되어야 ‘매진’으로 표시된다, 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에 살짝 설렜습니다. 1년에 한 번 영화관을 갈까 말까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휠체어 장애인들이 영화관람을 하기 편치 않은 조건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영화관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어쨌든 휠체어 장애인도 한참 유행하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니, 한국도 조금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또 하나의 호기심 발동. 이게 정말 장애인에게 판매된 것일까? 혹시 비장애인이 장애인인 척 하고 표를 산 건 아닐까? 그래 시험 삼아(?) 다른 시간대 장애인석 예매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오, 안내 같은 경고 같은 안내 같은 아무튼 팝업창이 표시됩니다.

“고객님이 선택하신 좌석은 장애인석으로 일반고객은 예매하실 수 없는 좌석입니다. 장애인석은 휠체어 전용좌석으로 일반고객은 현장에서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좌석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일반고객’이란 말이 두 번이나 나와 빈정이 좀 상하긴 하지만 그건 잠시 덮어두죠. 그러니까 내용인즉슨, 이 자리는 휠체어 장애인만 예매 가능하고, 비장애인이 예매한다손 치더라도 현장에서 들여보낼 때 휠체어에 착석한 사람이 아니면 입장을 시키지 않겠노라는 얘기인 거죠.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나는 휠체어 장애인과 영화를 보는, 한국에서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비장애인이 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죠. 보통 장애인석(엄밀히 말하면 휠체어석)은 몇 개씩 연달아 설치하는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보러 온 경우에는 따로 앉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장애인은 장애인끼리만 영화를 보라는 건가 -_-;) 장기적으로는 어느 자리든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되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일 낮, 동행과 휠체어석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를 정하기도 하면서 점심을 먹고 영화관에 입장. 그런데 응? 우리 자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두 좌석만 동떨어져 보이거나 우리 좌석 옆에는 휠체어가 있어서 바로 눈에 띄어야 할 텐데 말이죠. 뭐지 뭐지? 왜지 왜지? 당황하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왼쪽에는 휠체어 대신 이동식 커플석 의자 세 개가 놓여있네요. 그곳에는 젊은 커플 세 쌍이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말이죠. 텅 비거나 휠체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일반의자’ 세 개가 놓여 있으니 우리 자리가 눈에 띌 리 없었습니다.

대외적으로 영화관의 장애인석은 영화상영 10분 전까지 비장애인에게 예매가 허용되지 않다가 (당연하죠. 영화를 보고자 하는 장애인이 언제 예매를 하거나 현장에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영화상영 시간이 임박해서도 좌석이 소진되지 않으면 비로소 비장애인에게도 입장을 허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는 영화상영 시간과 관계없이 비워두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만, 현실적으로 저 정도 성의(?)라도 보인다면 크게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앉았던 사람들의 정체가 휠체어 장애인 전용석을 상영 직전이 아니라 이미 ‘며칠 전’에 예약해서 앉아 있는 비장애인이라는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영화관에서 휠체어석을 매진 처리하고 의자를 미리 세팅한 후 현장에 도착한 비장애인에게 선착순으로 좌석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겠네요. 다른 시간대의 예매상황을 보면 아주 아주 낮은 가능성이긴 하지만요;) 그들이 어떤 경로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그것도 일단 넘어가죠. 여기서 중요한 건, 회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수입 빵빵한 영화를 상영하는 대기업 영화관은 휠체어 장애인을 기다리는 대신 회당 72,000원(12,000원*6명)의 추가 수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지요. 네, 영화관은 그 돈 받아서 잘 먹고 잘 사시겠지요?

장애인석을 차지한 커플용 간이의자
<휠체어 대신 커플석>

영화가 끝나고 장애인석 운영 규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장애인석 ‘설치’만을 강제하고 있을 뿐, 설치한 장애인석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나 기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임시의자를 갖다 놓고 비장애인에게 표를 팔아도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거죠. 쩝, 허탈하군요.

몇 년 전에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일부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을 몰아서 설치하는 방식으로 ‘편법’ 운영을 하고 있음이 지적되기도 했는데요, 이젠 설치에 대한 문제제기뿐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점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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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1 13:26 2015/01/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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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짬을 내어 어머니 아버지가 사시는 시골에 다녀왔다.
월요일에 출근하자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돌아가며 묻는다.

"집엔 잘 갔다 왔어?"
"예? 집? ...아, 부모님 댁요?"
"응."
"아 예."

결혼한 사람이 시가나 친가에 다녀왔다고 '집'에 잘 다녀왔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독 비혼만이, 독립가구로 인정 받지 못하고 어딘가에 '집'이 따로 있는 '자취생' 취급을 받는다.
대체 1인 가구가 몇 퍼센트까지 되어야 날마다 내가 퇴근해서 가는 데가 내 '집'이란 걸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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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0 13:12 2014/08/2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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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냐고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왜냐는 물음이 용납되지 않아, 저는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느 순간부터 저는 말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앎과 삶의 불일치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있으면서 ‘감히’ 여성주의자입네 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문을 틔웠던 여성주의로 인해 되레 말을 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제 입을 반쯤 틔운 건 하나의 글이었습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여가부와 일베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는 글이었죠. (이후 '공통점'을 추가해 새 글까지 썼네요. 법원판결도 여성가족부 탓이군요. 보시다시피 사법, 입법, 행정부를 쥐락펴락 하는 여성가족부입니다, 녜;)

공통점

1.남녀갈등을 조장한다.
ex)여가부:군가산점,성매매특례법 등
일베:김치X, 보X아치

2.둘다 似而非(사이비)다.
ex)일베는 보수가 아닌데 보수라 주장(실제로는 친일종북)하고
여가부는 페미니즘이 아닌데 페미니즘이라 우긴다.(실제로는 여성우월주의) (원래 페미니즘은 남성의 인권을 떨어뜨리고 여성인권을 올리는게 아니라,여성인권을 남성수준으로 신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국,북유럽등의 페미니스트가 우리나라에 오면 욕을 할것이다.)

3.일반 사람들에게 욕 먹는다. 특히 여자에게 더 욕 먹는다.

4.둘다 선행보다 악행이 많다.
일베에서도 선행을 어느 정도로는 하지만,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수간).
역시 여가부에서도 성폭력예방, 호주제(이건 선행)이지만, 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 셧다운제, 아청법).

차이점

1. 여가부는 정부 산하지만, 일베는 국정원 산하 무료알바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편견과 오만에 가득 찬 이 글이 ‘유머’ 게시판에 올라가 있고, 수십 명이 그 논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 이 글은 풍자와 비하에 관한 것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풍자에 대해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때 풍자소설을 가장 사랑했던 제 생각에, 권력을 비트는 것은 풍자입니다.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것은 폭력입니다. 전자는, 약자들과 함께 보고 웃을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마음에는 안 들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권력이 있으니까 그깟 풍자 따위,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괜찮습니다. 좀 더 대범한 치라면 함께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요. 좀 더 꼰대 같은 이라면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보복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건, 잔인한 행위입니다. 장애나 인종, 성정체성 등에 대한 비틀기가 ‘풍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비하이고 차별, 폭력이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거나 관철할 힘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한 가지 속성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권력자인 동시에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한 가지 정체성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한국사회에서 그 오묘한 결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집단이 (특히 보수 쪽의) 여성 정치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권력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이기에 ‘OO년’이라는 막말을 듣거나, 누드 합성사진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현재 여성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풍자의 대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현재의 여성가족부. 네, 저도 참 별로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더 더 우월하게 하려고 여성가족부를 존속시키고 있는 걸까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여성들만 그걸 모르고 있어서 놔두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여성우월 사회라고 할 만한 권력이란 게 대체 여성의 어디에 있는 건지요. 불혹의 나이에 집도 절도 직장도 없어서, 생존을 위해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충고나 받는 제게 있습니까? 아이는 어린이집과 보모에게 맡기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주말에는 밀린 살림과 아이 보기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이는, 제 언니에게 있습니까? 살림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상대적으로 살림할 시간을 보장해 주는, 그렇기에 '최고의 신붓감’ 소리를 듣는 제 교사 사촌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박근혜에게 있습니까? 그것이 박근혜가 ‘여성’이라서 획득한 것입니까? 주위 어떤 사례, 어떤 통계에서도 여성우월 사회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징집이나 군 가산점제 얘기하고 싶은 분들은 이 글 읽고 다시 오세요. 여성징집을 제일 반대하는 부처가 어디인지도 좀 파악하시고.)

이쯤에서 저는 또 궁금해집니다. 다른 행정부처 다 놔두고 왜 하필, ‘여성가족부 괴담’만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는 걸까요? 노동자를 위한 정부기관이라 하는, 그러나 정작 사용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용노동부가 회식비를 얼마를 썼니 마니에 대한 루머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보건사회복지부와 일베의 공통점 따윈 상상해 본 적도 없으시겠지요. 바로 그 사실이, 여성이 여전한 사회적 약자임을 증명하는 거 아닐까요. (심지어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가족청소년부’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여성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가장 ‘만만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 지위에 변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소수집단과 비교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요.

저 ‘유머’의 당사자가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결국 저 ‘유머’를 만든 이의 여성에 대한 관점은 ‘일베’ 사용자들의 여성혐오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욕설의 수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은 ‘내가 일베란 말이냐! 민영화나 먹어랏!’으로 수렴될 테죠.

...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굳었던 입이 쉽게 열릴 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다어제, 소위 ‘김치녀 대자보’를 접했습니다. 사실 그리 ‘세련된’ 혹은 ‘친절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의 글이 먹히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메시지를 구구절절 집어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나 세련되지 않았기에 더 진정성 있어 보이는 그 대자보를 보고, 미안했습니다. 20년 전 우리는 ‘여성의 현실이 이래.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원해’라고만 했으면 됐는데, 한바탕 페미니즘의 유행이 쓸고 간 이 사회의 여성들은 이제 여성차별에 더해 여성혐오와도 싸워야 하니까요. 선배 여성(주의자)으로서 이런 사회를 물려주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제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개념녀도, 김치녀도, 그 어떤 기준에도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사세요”인 것도 미안합니다. 좀 더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런데 오늘, “대자보는 이런거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며, 또 다른 ‘김치녀 대자보’를 지칭하는 글을 접했습니다. 역시 '유머' 게시판에 있는 해당 글에는 이 문구에 빨간 네모가 쳐져 있더군요. (어이쿠, 그새 '민영화' 많이 먹고 사라졌네요.)

김치녀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이 각박한 세상입니다
평범한 여성이 이 사회에서 안녕하려면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많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기에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합니다.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자신의 생활 수준보다 높은 소비를 해야 하기에 명품 백을 들고 스타벅스에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씩 김치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군요. 대자보는 그런 거 쓰라고 있는 게 아니군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대자보는 어떤 데 쓰라고 있는 것인가요? 알려 주세요. 아, 그런데 그 전에 누가 당신에게, 저 여성의 입을 막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사실 개념녀가 될 수도, 김치녀가 될 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을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온 저는 눈물이 나더군요. 저희 세대 역시 주류에서 배척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주장 앞에는 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을 붙여야 했으니까요. 더 더 오래 전부터, 여성은 성녀이자 마녀여야 했으니까요. 이름만 다를 뿐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와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구나 싶어 몹시 서글펐습니다.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성이 되지 않는 것'뿐인데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얘기죠. 자기부정의 끝은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물론 선배 여성으로서 안타까운 점은 분명 있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려는 것도 나쁘지만, 모든 원인을 사회에만 전가하는 것도 건강한 사고방식은 아니니까요. 평범한 여성이 되지 않기를 선택하고, 조금 덜 안녕하기를 선택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겁니다. 너무 두려워 마세요. “평범한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안녕”하길 택하지 않고서야 비로소 행복해진, 제 얘기입니다.

다시 돌아와, 누가 글쓴이에게 저 여성을 비웃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을까요?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저 여성도 그럴 텐데. 네네, ‘무지몽매한’ 여성을 가르치는 건 예로부터 천부남권(天賦男權)이었죠. 여성은 늘 남성의 소유물이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이고,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하는 열등한 존재니까요. 어디 암탉 따위가 말이죠. 그러니 이렇게 ‘준엄히 꾸짖어’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죠.

... 설득에 지치고 게으른 저는 그저,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쓴이님, 그리고 오늘도 다른 여성을 가르치느라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실 남성 여러분, 그런 사명감 따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무거운 짐일랑 내려놓으시고, 공감을 할 수 없다면 그저 존중해 주세요. 죽을 수도, 미칠 수도 없는 그들의 고민을 존중마저 하기 어렵다면 그저, 무시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왜 이것을 하지 않아?’라고 남을 다그치지 마시고, 가르치려 하지도 마시고, 당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잘 살 테니까요. 그렇게 놔둬서야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고요? 그런 우국충정은 다른 ‘거대한’ 주제에 쏟으셔도, 사회는 충분히 잘 돌아갑니다. 걱정 마세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두 개나 가져와서 썼으니 응당 그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이 좋았겠으나, 커뮤니티 활동은 당최 적성에 안 맞는지라 제 공간에 올린 것이니 너무 불쾌해 하진 마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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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14:57 2014/01/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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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나한테 왜 이래

오랜만에 컴퓨터를 밀고 블로그에 들어왔다. 더 미루면 정말 까먹을 것 같아서. 10년 전 터키 여행기도 그렇게 날려먹은 게 생각나서. 그런데... 분명 9월에, 다음 포스트(여행기)를 써서 USB 메모리에 저장해 두었는데 지금 보니 없다... 기운이 빠져 그 얘길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다음 얘기도 할 기운이 없다.


잡담 2. 올 겨울 최대의 수확 (부제: 생강차의 비밀)

2~3년 전에 생강을 설탕에 재 두었다. 그냥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뭔가 생강의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 같아 올 겨울엔 큰 냄비에 생강청과 물을 넣고 팔팔 끓인 후 마셨다.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것보다야 낫지만 여전히 성에 안 찬다. 그러다 한살림에 장 보러 갔다 생강차 파는 것을 보고 성분을 확인. (참고로 한살림 생강차는 별로 달지 않고 생강의 화~ 한 맛이 잘 느껴진다는 평이 있다.) 응? 생강가루가 좀 들어갔네? 집에 돌아와 속는 셈 치고 마침 시골에서 얻어온 생강가루를 몇 번 탈탈 털어 넣었다. 그래, 이 맛이야!


잡담 3. 아이 갓 럭키

1월 7일. 스타벅스 '럭키 백' 파는 날. (럭키 백이란, 지난 시즌에 팔다 팔다 못 판 텀블러나 머그 같은 것들을 세트로 구성해서 무료음료권과 함께 파는 것. 사기 전엔 구성품을 확인할 수 없고, 대략 10만 원 안팎의 커피 관련 용품들이 들어 있다.) 재작년엔 살까 말까 고민하다 넘겼다. 작년엔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인가 여유롭게 갔다가 당일 매진 되었다는 얘길 듣고 헉; 올해도 어김 없이 날아온 예고 메일을 보고 사러 갈까 말까 고민하다 사 보기로 결정. 스테인리스 텀블러도 두 개나 있고, 플라스틱 텀블러도 있고 머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서! 심지어 백수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45,000원을 쓰겠노라 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섯 시가 좀 넘었다.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하다 7시 정각에 집 근처 매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장사진이;;; 헐;;; 배급량은 13개라는데 줄 선 사람은 그보다 많다. 내 앞에서 끊길 게 확실. 헐레벌떡 8시부터 문을 여는 근처 다른 매장으로 갔다. 문도 안 열린 가게 앞에 다섯 명이 줄을 서 있다. 앞에 선 언니에게  "럭키 백 줄 서신 거죠?" 했더니, "네. 그런데... 다섯 개밖에 없대요." 쿠당. 이쯤 되면 오기인지 성질인지가 생긴다. 우쒸, 차 가지고 다니면서 이 지역 매장을 다 훑어버리겠어!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근처에 매장이 어디 있더라... 땡땡 오피스텔 지하에 하나 있고 저쪽 지하철역 근처에도 새로 하나 생겼다고 하고, 아 거긴 주차하기가 좀 거시기한데... 하다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매장에서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감사를;) 근처 매장이 이런 상황이면 다른 매장도 십중팔구 마찬가지일 거야, 당장 쓸 컵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밑창 다 떨어진 운동화도 못 바꾸고 있으면서 이게 지금 뭐 하는 짓? ... 그리하여 찬바람에 정신 든 쥔장은 손 호호 불면서 곱게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는 얘기.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사 마실까 하다 집에서 냉동실 묵은(;) 원두 꺼내 드립해 마셨다는 얘기. 그래도 성과라면, 작은 행운을 잡으면 늘 '이게 내 행운의 최대치가 아닐까'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 럭키 백을 놓침으로써 뭔가 더 큰 행운이 나를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괜찮아. 내 럭키 백은 아직 개봉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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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0:49 2014/01/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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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스 카드 잔액이 0원이 되었다. 휴게소에서만 충전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은행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고 해서 ATM기에 갔다. 처음(그러니까 며칠 전)에는 해당시간이 아니라고 나를 밀어내더니, 오늘(금요일)은 통신이상이라고 내 돈을 안 받아준다. 별수 없이 창구로 가서 내 카드를 보여주었다. 이참에 그냥 자동충전을 신청하자 싶어 자동충전을 설정해 주시되, 새로 카드를 발급 받지 않고 지금 보유한 카드와 연계가 가능하면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내가 갖고 있던 카드에도 분명 자동충전이 가능한 카드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새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한다면 굳이 자동충전 카드를 쓸 생각은 없었다. 괜히 지구에 쓰잘 데 없는 플라스틱을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으니까.

어리바리한 직원은(입사 1년이 안 돼 보이는 이 직원은, 이상하게 내가 이 은행에 갈 때마다 내게 배정이 되는데, 만족스럽게 일을 처리한 적이 없다) 버벅대다 몇 가지 바보스런 질문(차가 1종이냐 2종이냐-면허 얘기 아님-고 묻질 않나, 기껏 경차라고 얘기해 줬더니 '승합차'라고 하질 않나-승합차는 봉고차예요-)을 던진 후 아무렇지 않게 새 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으이구... 기존 카드에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냐 하니 그제야 여기 저기 클릭해 본다. 에효,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쩔 것인가. 됐다고, 놔두라 하니 꼭 이 카드를 쓰셔야 하는 이유가 있냔다.

"쓰레기 생기니까 그러죠."
"아, 제가 대신 버려 드릴까요?"

헐... "쓰레기가 생긴다는 말이 제 손으로 버리기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한 마디 남기고 카드를 다시 받아왔다.

저렇게 일 못하는 사람도 정규직에 나보다 월급 많이 받고(지금은 누구든 나보다 월급 많이 받는 사람; 나는 백수이므로;) 일하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그분에게 투덜거렸다. 한편으론, 하루에도 무수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주제에 특정 상황에만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살짝 반성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이나마 신경 쓰니 그나마 지구의 쓰레기가 주는 거라는 생각도. 근데 그러고 보니 오천 원이나 주고 샀는데 카드값은 환불도 안 해준다. 우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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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0:30 2013/10/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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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던 아버지는 밥을 할 줄 안다. 어릴 적 주말이면 잘게 썬 삼겹살과 콩나물, 김치를 넣어 볶은 밥을 특식이라며 내어놓는 것도 좋아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삼겹살 못 먹는 나는 질색팔색 했지만. 그러나 그 외에는 손 하나 까딱할 줄 모르는, 별 놀랍지도 않은 그 시절 아저씨였다. (지금 세상에서는 까무러칠 일이지만) 어린 내게 늘 담배 심부름을,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재떨이 대령을,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서 방에 있는 내게 물 심부름을 시키는. 그래도 엄마 편찮으셨을 땐 (내가 밥 할 만큼 큰 이후에도) 더러 밥을 안치기도 한 걸 보면, 영 몹쓸(!) 가부장은 아니었지 싶다.

당신 밥상에 숟가락 하나 안 놓던 아버지가 바뀐 건 퇴직 이후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자식들 다 키워놓고 상대적으로 활동이 많아진 엄마는 끼니 때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별수 없이 아버지는 당신 진지를 스스로 차려 잡수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오실 때까지 굶어버리거나, 끼니 때 꼭 맞춰 집에 돌아오라고 윽박지르지 않은 걸로 봐선 역시 영 몹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전화하면 가끔 혼자 식사 중이라며 툴툴대시지만, 정작 당신도 어머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실 때면 일주일 넘게도 혼자 삼시 세 끼를 해 드시는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런 양반이 아니었는데;

그런 아버지도 집에 다른 사람, 아니 내가 있으면 달라진다. 밥 차리기는커녕 식탁에 앉아 밥 차려라, 숟가락 놔라, 무슨 무슨 반찬 꺼내라... 잔소리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설거지는 무슨, 당신 식사 끝내자마자 빈 그릇 그대로 두고 상에서 일어나신다. 이건 딱 내가 어릴 때 날마다 보았던 광경이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는 그 행위를 통해 여전히 당신이 '집안의 가장'임을 주지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고 짠해 군말 않고 치워 드린다.

(그러나 당신 닮아 성질 고약한 딸내미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국 뜨고 있는데 빈 그릇 하나 가져오라 해서 조용히 "한 번에 한 가지만 시키셔 --;" 하고, 제상에 올린 음식들 쉬니까 갈무리 좀 해 놓으라고, 그런 건 '여자가' 미리 미리 알아서 해 놔야지 뭐 하냐시기에 심드렁하게 "내 살림인가, 아부지 살림이지" 해 버렸다.)

역시 음식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추석. 그리고 이것은 당신 빈 밥그릇 안 치워도 좋으니 건강만 하게 해 주세요, 할 날이 머잖은 '여성주의자 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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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1:06 2013/09/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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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그분과 통화를 하지 못해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를 예 해둔다. 까먹을까 봐;)

저녁에 운동을 하고 돌아와 주차를 하고 우리가 최근 발굴한 분식집에 가서 열무국수를 먹고 (아 그 집 열무국수는 별로예요!) 돌아오는 길에, 마침 오후에 매실 택배가 출발했다는 문자를 받은 게 생각 나서는 집 앞 슈퍼에 들러 35도짜리 과실주용 소주 두 병과 10리터에 달하는 유리병을 사지 않았겠어요? 소주 한 병이 3.6리터였으니 가지고 있던 가방이며 뭐며 합치면 10kg는 거뜬한 무게였죠. 슈퍼에서는 그거 한 번에 못 들고 간다며, 두 번에 나눠 가져 가라고 강권에 강권.

그러나 앤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집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의 5층 아니겠어요? 잠깐 고민했지만, 늘 그렇듯 씩씩하게 다 짊어졌죠. 그 짐을 들고 오르내리기를 또 하다니, 아니 될 말입니다, 우어우어우어. 출퇴근 가방이랑 샤워 가방은 왼쪽 어깨에 메고. 애 데리고 승천하는 선녀마냥 소주 한 통씩 양 품에 안고, 남는 두 손으로는 유리병 손잡이를 잡고요.

행여나 유리병 뚜껑이 돌아가 병이 바닥에 떨어져 폭삭 깨질까 봐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뭐, 그렇게 무겁진 않았어요. 아시잖아요. 냉온수기 물도 저 혼자 가는 거. 아이패드 들어 있는 가방만 보고도 무겁다며 만날 빼앗아 가시는 앤님은 싫어할 얘기겠지만. 아 그리고 어제 운동 끝나고 몸무게를 재 봤더니 1kg이 또 쪘더라고요! 몸무게 앞자리가 드디어 바뀐 거죠. 근육인지 나잇살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거울에 비친 팔뚝은 아무튼 튼실해 뵈더군요. 흠화화.

욘석들을 영차 영차 5층까지 올려놓고 한숨 돌리고 물 한 잔 마시고 마지막 참외 두 개 씻어 먹고서는 이 무용담을 전해 드리리 에헴, 하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찾는데 아뿔싸, 침대 위에도 작은방에도 가방 안에도 전화기가 없네요. 무용담은커녕 아아아아 앤님! 제 전화기가 없어졌어요!라고 전화하고 싶은데 전화기가 없다니.

이성을 되찾고 귀가경로를 역추적한 결과, 분식집에서 계산하며 카운터에 두었더군요. (잠시 잠깐, 차라리 기억 나지 말지! 하는 생각이;;;) 다시 신발을 신고 5층을 걸어 내려가 슈퍼를 지나쳐 휘적휘적 분식집에 갔더니 사장님이 절 보자마자 ‘언니! 휴대폰 놓고 갔죠?’ 하시네요.

5층을 다시 걸어 올라오며 다짐했어요. 슈퍼 사장님 말씀을 잘 듣자,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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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2 20:22 2013/07/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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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의 변

그해 2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살아온 곳을 떠난 내 손에는 낡은 이민가방 하나와 이불 한 채가 들려 있었다. 이민가방에는 봄 옷가지 몇 벌과 책 한두 권, 헤어 드라이기, 생필품 몇 가지가 들어 있었다. 그저 처음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았고, 다시는 '고향'에서 살 기회가 없으리란 걸 그 때는 몰랐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오롯이 혼자만의 살림을 시작했을 때, 냉장고와 책상 등등이 갖춰진 원룸을 채운 내 물건은 책 몇십 권과 작은 행거에 걸린 사계절 옷가지들, 일가붙이가 쓰다 버린 1인용 침대 정도뿐이었다.

그러나 살림은 불고 불어 책은 어느새 천 권이 되었고, 둘 곳이 없어 남의 창고 신세를 지고 있고, 몇백 리터에 달하는 냉장고는 언제나 만원이고, 나는 차렵이불 정도는 너끈히 빨 수 있는 세탁기를 주말마다 돌리고, 잘하면 세 명도 잘 수 있을 퀸 사이즈 침대에서 36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180도로는 돌면서 2단 행거와 5단 서랍장을 끼고 사는 서울시민이 되었다. 방 하나에 짐을 다 부릴 수 없게 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누군가 어떤 문제, 특히 관계에 대해 조언을 구해올 때면 나는 늘 이렇게 얘기한다. 참을 수 있으면 참으면 된다. 참을 수 없으면 떠나면 된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것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그 선택으로 인해 놓치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놓쳐지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으면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포기할 수 없으면,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쥔 것이 너무 많고, 메워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다른 구차한 곳이 나타날 때까지는 이 구차한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나는 불현듯 20년 전의 이민가방을 떠올렸다. 겨울에도 찬물에 머리를 감으며, 아주 가난하게 살 거라고 마음 먹었던 순간도 떠올렸다.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일할 데가 없었을 때, 한국사회에서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밥벌이가 없어 굶어 죽을 확률은 어마어마하게 낮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자신만만했던 때도 떠올렸다.

원하는 만큼의 내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려고, 원할 때는 언제든 책을 사 읽고 온갖 취미를 누리려고, 부모님께 몇십 내지 몇백 단위의 돈쯤은 호기롭게 드리려고, 예상치 않았던 일정 규모의 지출도 그달 그달 충분히 감당해 내려고, 다른 많은 것들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그 모든 것들을 좀 놓아버려도 괜찮겠다, 는 생각이 드는 건, 마침내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것. 나는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지는 길,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을 더 이상 포기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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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7 15:24 2013/06/17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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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 지 5분이 되지 않아 발견된, 눈썹(아 그러니까 눈썹, 이라 함은 아래 사진 우측 하단에 보이는, 차량용 눈썹, 되시겠다)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녀석. 웃기다가 안쓰럽다가 무섭다가. 차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니까 일단 창문은 꼭 닫고 말을 건다. 꼭 붙잡고 있어. 10분만 더 가면 설 거야. 섣불리 움직였다간 차도로 떨어져. 그럼... 알지?

하지만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던 거지. 녀석은 눈썹을 벗어나 보닛을 낑낑 기어 올라와 마침내 앞유리에 붙었다. 신묘한 빨판 덕분에 용케 유리에 붙어 있는 털북숭이는 물론, 징그러웠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생긴 건 네 탓이 아니지. 아니 '탓'이라니, 송충이 세계에선(그런데 저게 송충이가 맞긴 한 걸까) 네가 엄청난 미인에 모험가일 수도.

워셔액과 와이퍼로 저 녀석을 치워 버릴까, 세 번 정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처치'하기에 녀석은 너무 컸다. 저렇게 큰 생물을 내 손으로 없애 버리면 두고 두고 생각이 날 것이다. 아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 줘. 이제 5분만 가면 된다고. 그럼 어떻게든 널 막대기에 옮겨서 녹지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해 줄게.

하지만 녀석은 앞유리는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다. 낑낑대더니 계속 올라간다. 야야야! 그만 가. 올라가면 안 된다고! 녀석은 어느새 지붕으로 사라졌다. 야!!! 안 돼!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드디어 목적지 도착.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붕과 뒷유리를 살폈다. 주차 관리해 주시는 분이 왜 그러냐 물으신다. 아 예. 송충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거든요. 별 시덥잖은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날아갔겠지 뭐. 예...

계속 봤더라면 귀여울 수도 있었던, 주황색 발이 요새 유행하는 신발만큼 예뻤(!)던 털북숭이. 마지막 순간 고통은 적었길.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송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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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0 15:24 2013/06/1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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