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 11 : Next »
작년 말, 하고 있는 일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웹 접근성에 대해 잠깐이나마 고민할 기회를 가졌다. '웹 접근성(Web accessibility)'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웹 페이지에 이미지가 있을 경우, 이를 설명해 주는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자료를 조금만 더 찾아봐도 주의(이 얼마나 비시각장애인적 단어 선택인가. '당연'이 아니라 '주의'라니)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건 기본 중의 기본이고, 키보드만으로 메뉴 이동이나 선택이 가능해야 하고(그 이동방향은 '논리적'이어야 하고), 페이지마다 반복되는 메뉴는 건너 뛸 수도 있어야 하고, '표'에 대한 설명('당연'하잖아. 표에 그은 선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말해주지 않으면 표가 표인지 뭔지 알 수 없으니까.)도 있어야 하고, 색의 대비도 확실해야 하고 그래프를 그릴 때는 배경을 색깔만이 아니라 다른 기호로도 표시해야 하고... 휘유, 장애에 관한 내 감수성은 참으로 보잘 것 없었다. 이 분야에서는 내가 다수이자 권력을 가진 쪽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고 사고를 교정해야 하는, 짧지만 강렬한 경험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관련 블로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 http://www.haeppa.kr)

하기에 요즘 몇몇 대기업이나 은행 홈페이지에서 웹 접근성 '인증'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공지를 심심찮게 보면서, 한편으로는 웹 접근성이 향상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실질적인 편의성보다 인증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에 씁쓸하기도 하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위 진정에서 빚어진 일종의 '유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모쪼록 이를 계기로라도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웹 접근성을 보장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드디어 오늘 하려고 했던 얘기.

찾아볼 자료가 있어 어떤 단체의 홈페이지에 들렀다. 보고 싶었던 자료는 없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다 기관지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한 권 전체가 플래시로 제공되고 있었다. 그 단체에서 기관지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방법은 나름 진화해 왔다. 예전에는 자원활동가를 활용해 일일이 타이핑해서 올렸고, 그 다음에는 최종본 pdf를 긁어서 복사-붙이기-편집해서 올렸고, 그 다음에는 디자인 업체에서 최종 Quark Xpress 파일을 받아 텍스트를 복사해 올렸고(이 경우 pdf를 복사해서 쓸 때 가장 번거로운, 줄마다 들어가는 줄바꿈이 없다), (이렇까지 아는 이유는 내가 세 가지 다 해봤기 때문이지) 그 다음은 모르겠고, 이젠 전자책이구나. 그 전자책을 보고 처음 했던 생각은 와, 좋아졌네, 였다지. 플래시가 얼마나 웹 접근성에 도움 안 되는 도구인지 몸소 겪었으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웹 포스터를 첨부할 때마다 텍스트를 병기하는 이 단체의 평소 활동과, 게시판에 플래시'만' 올리기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 다시 보니 플래시 말고도 각각의 텍스트를 따로 올려 주었구나. 다행이다. 마음에 드는구려. 아 그러나 플래시에 자꾸 눈이 가는 난 어쩔 수 없는(?) 비시각장애인. 화려한 편집과 레이아웃, 이미지, 클릭만 하면 펼쳐지는 다음 페이지를 보며 '아름다움'과 '편리함'에 대한 내 '시각'이란 참으로 하잘 것 없는 것이로구나, 성찰하는 것도 잠시, 일 하자.

* 덧붙임
이 글의 흐름과 결말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유는 사실... 원래는 플래시'만' 보고 이 단체를 열나 성토(!)할 목적으로 성급히 시작했다가 뒤늦게 텍스트가 함께 올라와 있는 걸 보고 급 반성했으나 도입부 써 놓은 게 아까워 얼렁뚱땅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수줍은 고백.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5/22 13:37 2013/05/22 13:37

취업 관련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그래, 돈 벌어서 이만큼이나마 내 힘으로 마련했다는 게 참 신기하고 기특하네 하면서 방을 훑었다. 내 방. 마침 눈이 닿은 곳엔

이부자리. 이크, 그분이 쓰시던 거다. 눈을 돌렸더니 침대 위 풀오버. 헉,기숙사 시절 같은 방 언니가 입다 준 거. 왼쪽은 안 되겠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렸다. 배낭. 전 애인이 대학원 입학기념으로 선물. 으악, 선풍기 모양 히터. 그분이 사무실에서 업어옴.

내 힘이 아니라 각계의 온정으로 꾸려온 삶이었구나. 쿠당.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3/27 22:14 2013/03/27 22:14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48

처음 헌혈을 한 건 고등학교 1학년인지 2학년일 때였다. 학교로 찾아온 헌혈차가 무섭지 않았고, 주사도 무섭지 않았고, 친구들과 잠시 시간을 때우는 것도 재미있었다. 팔꿈치 안쪽이 며칠 동안 멍들었지만 피가 빠져 나가는 강렬하고 황홀한 느낌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다.

피가 필요한 분들에게는 좀 죄송하지만, 애시당초 내게 명분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왕창 피 뽑는 게 좋았을 뿐. 하여 적당함과 모자람을 오가는 헤모글로빈 수치 때문에 퇴짜를 맞은 적도 여러 번이고, 주위에 헌혈할 데가 없어서 못한 적도 또 여러 번이었지만, 시간이 있고 눈에 띌 때마다 고민 없이 헌혈의집으로 올라갔다.

그러던 어제.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서성이던 중 헌혈의집을 발견하고 꾸역꾸역 올라갔다. 다른 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작성하던 문진표에서 몇 가지가 걸렸다. 하지만 무조건이 아니라 '일부'는 할 수 없다 했으니 일단 간호사와 이야기를 해 보자는 심산으로 기다렸다.

"땡땡번 헌혈자님,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네. 혈압 먼저 재실게요."
"네. 그런데 문진표를 작성하다 보니 제가 문진 선에서 잘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니 왜요?"
"일단, 제가 오늘 채혈을 했구요,"
"채혈요? 왜요?"
"수술 전 검사로요."
"어떤 병으로요?"
"땡땡병으로요."
"아이구. 그럼 안 되세요."
"그렇군요... 하지만 현재 관련해서 아무런 치료도 약물도 받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왜 안 되나요? 제가 병이 있는 걸 몰랐다면 헌혈이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진단을 받으셨고 이젠 본인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세요."
"음. 그럼 수술을 받은 다음에도 앞으로 헌혈은 안 되는 건가요? 평생?"
"네."
"...그렇군요. 괜히 번거로우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환자라는 걸 자꾸 까먹네요."

20여 년에 걸친 내 헌혈인생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열 몇 장의 헌혈증을 남기고. (그나마 남아있는 건 한 장뿐;) 정기회원으로 등록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젠장. 게다가 밤중에 생각해 보니 몇 년 전에 피 뽑아 골수이식은행에 등록해 놨었는데, 이것도 이제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나더라도 이식 안 시켜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때문에라도 조만간 탈락할 예정이긴 했지만; 아니 내가 무슨 전염병 보균자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지만, 입장을 바꿔 내가 수혈 받는 입장이라도 환자의 피나 골수라고 하면 좀 꺼려질 것 같긴 하다;

병명을 처음 들었을 때도, 수술날짜를 잡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내 몸의 일부가 누군가에게 더 이상 도움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맞이하고서야... 조금 슬프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3/07 16:35 2013/03/07 16:35
, ,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47

굳이 가지 않아도 좋을 자리였다. 내가 안 왔다고 일부러 찾아볼 이 없을 터이고 내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사람도 없을 터였다.

다만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공부하기 시작했던 여성학(주의)은 더 이상 나를 지지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잠깐이나마 여성단체에서 일도 했던 여성주의자이지만, 현재 '일반 사기업'에서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 '전화는 여직원이 받는 게 아무래도 좋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사장이 꼭대기에 있는 개인회사이다. 왜 이런 데서 일하는 거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는데, 그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오라는 데가 여기뿐이라서."

이전 직장의 계약만료 후 새로운 밥벌이를 준비해야 했으나 계약만료가 다가올 때까지 직장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마침 여기서 연락이 왔고, 일단 입에 풀칠은 하면서 생각해 보자 하는 심정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리고 현실은 여전히, 공고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자리에서 조그만 것이라도, 가능한 것부터라도 바꿔 나가기엔... 휴. 앞서 걸어가는 여직원을 가리켜 '아무 생각 없이' "땡땡 씨는 허벅지가 참 튼실해." 하는 상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왜' 그렇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지 설득하기엔 하루가 모자라다. 그리고 하루 종일 설득한다 해도 결국 나는 그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실패할 것이다. 한 가지 주제만으로도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걸리는'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진다. 그러니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를 달고 다니려면 일 따위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해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부하직원들에게 내 컵은 내가 닦을 테니 씻지 말라고 하거나, 종이컵 아깝고 내 차는 내가 알아서 하니 회의 때는 내 차는 빼라고 하거나 내 책상은 닦지 말라고 하면 이들은 외려 더 신경 쓰여 하기 마련이다. 무거운 물건이라도 같이 나르겠다고 나서면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다시, '여성주의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 (꿈뻑꿈뻑)'로 돌아가 버렸다.

내가 평생 내 것으로 가져가기로 했던 신념이 이토록 가벼운 것이었나,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이런 '현실'에서 내가 뭘 어쩌겠어,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하고,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조직도 완벽하지는 않잖아? 자위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여성주의자인 '나'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원 없이 공부했던 시간들이 떠올랐고, 여전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활활 질투했으며, 다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었다. 물론 여성학 전공자로서 여성학과 아무런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나 고민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어쨌건 결국 그 날 느낀 건, 나는 더 이상(?) '여성학 커뮤니티'나 '여성학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아니구나, 라는 것. 어디에 있는지 아직 알 수는 없어도, 어디에 있지 않은지는 알게 되었다는 게 수확이면 수확이랄까.

...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조금이나마 덜 할 줄 알았는데, 외려 멋모르던 때보다 더 많이 하게 되니 인생 뭐 이러냐 싶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2/19 14:44 2013/02/19 14:44
, ,
Response
No Trackback , 6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45

하나. 빙수기 없이 빙수 만들기

1. 우유를 통에 넣어 얼린다.
   - 나중에 강판에 갈기 편할 것 같은 사이즈를 가진 통에 넣어 얼리면 된다.
   - 멸균우유 1000ml 한 팩 통째로 얼리면 편하다.
2. 우유가 꽝꽝 얼면 틀에서 빼낸다.
   - 실온에 살짝 놔뒀다 빼면 잘 빠진다.
3. 얼린 우유를 원하는 만큼 강판에 간다.
   - 우려와 달리, 가는 동안 우유가 녹는 불상사는 잘 일어나지 않으며 엄청 잘 갈린다.
   - 단, 강판에 가는 동안 손이 매우 시릴 수 있으므로 장갑 착용을 추천한다.
   - 우유는 물론 위생비닐 등으로 싸서 갈아야 한다.
4. 간 우유를 그릇에 넣고 원하는 토핑을 얹어 먹는다.
   - 빙수팥과 미숫가루 약간만 첨가해도 맛있다.
   - 생협 빙수팥 만세!


둘. 아이스크림 제조기 없이 아이스크림 만들기

1. 아이스크림 재료를 준비한다.
   - 본 포스트는 아이스크림 재료를 어떻게 마련하는가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므로 이 부분은 생략한다.
2. 만들어둔 재료를 밀봉력 좋은 지퍼백에 담는다.
3. 좀 더 큰 지퍼백에 (2)를 넣는다.
4. 재료가 들어 있는 큰 지퍼백에 얼음 한가득, 굵은소금 한주먹을 넣는다.
5. 지퍼백을 밀봉하고 한 10분 열심히 흔들어 준다.
   - 손이 시리고, 지퍼백이 열리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으므로 수건 등으로 감싸면 좋다.
6. 원하는 정도로 얼면 꺼내 먹는다.
   -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꺼낼 때 지퍼백 입구에 아이스크림이 묻어서 다시 닫기 지저분해진다는 것. 그러나 아이스크림 제조기의 구입비와 사용횟수, 공간점유율 등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참고>
아이스크림 제조기 없이 아이스크림 만드는 방법 6가지
(영어지만 사진만 봐도 대충 이해할 수 있음)
여기서 소개한 첫 번째 방법이 위에 소개한 방법이다.
재료를 넣고 얼음+소금을 넣은 뒤 공을 굴리면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지는 기구가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2/07/25 14:06 2012/07/25 14:06

1.
예전에 민우회에서 호칭의 성별 불평등을 바로잡아 보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 가장 '문제적'이라 지적되었던 단어가 '남편' '아내' '올케'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이에 부부간 호칭으로 적당한 말을 공모하였고 '배우자'라는 단어가 자체 선정되었다.

한데 당시 국어학에 나름 일가견 있어 뵈는 어떤 분은 '배우자'는 이름말이므로 이를 부름말로 사용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지적을 하셨더랬다. 당시에는 뭔 소리여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 이후 일상에서 이 문제를 가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학부 때 어떤 국문과 교수님은 대체 왜 당신을 '교수님'이라 부르냐며, '교수'는 지칭이요 호칭은 '선생님'이니 '선생님'이라 부르라 열변을 토하시기도 했구나. ('송수화기'를 왜 '수화기'라 부르냐며 분개하셨던 꼬장꼬장한 그분은 안녕하시겠지?)

2.
차림사.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작년 말 받아본 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에서였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처음 든 느낌은 별로, 였다. 총회에서 주력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며칠 전 '차림사'를 널리 알리고 써 달라는 홍보문자를 받았을 때도, 그닥 호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림사... 왜 마음에 안 들어오지? 나는 이제 여성주의자가 아닌 것인가? 벌써 '꼰대'가 되어버린 건가? 아냐, 나도 식당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분노한다고. 그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시길 원한다고.

차림사. 우선, 호칭(부름말)보다는 지칭(이름말)에 더 어울린다는 데 그 어색함이 있다. 호칭, 즉 부름말이란 상대를 앞에 놓고 대화할 때 이름 대신 쓰는 말이고 지칭이란 제3자에게 그 사람이 누구누구임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잖나. 이를테면 '의사'나 '교사'는 지칭이고 그들을 부르는 말은 '선생님'이듯이. 직업을 칭하는 말에 주로(?) '사'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아무리 입에서 굴려 봐도 직접 부르기보다는 일컫기 좋은 말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의사님, 왼쪽 어깨가 아픕니다'라거나 '간호사님, 이 주사는 얼마나 아픈가요?'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암만 상상해 봐도 '차림사님, 여기 좀 치워 주시겠어요?'는 입에 붙을 것 같지 않다.

'차림'이라는 순우리말과 '-사(士)'라는 한자의 조합도 어색함을 더한다. '심적(心的)으로'는 이상하지 않은데 '마음적(-的)으로'라는 말은 이상한 것처럼. 오히려 글자수는 더 길지만 '가정관리사'나 '궁중요리사'는 괜찮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다른 건 '안 개인적'이겠냐마는;) 요즘 새로 생기는 웬만한 직업에 모두 '-사(士)'가 붙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전에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직업'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안내하고는 있지만, 이 '일부 명사'가 원래 다 좀 '있어 보이는' 직업 아니던가(사전도 '변호사/세무사/회계사' 이렇게 예를 들고 있다). 그러던 것이 너도 나도 '있어 보이려고' 갖다 붙이다가, 이제는 '그냥 저냥' 쓰이게 된 것 아닌가? 그리하여 '의원(醫員)'이 '의사'가 되고 '간호원'이 '간호사'가 되고 '운전수'가 '운전사'가 되고. 해당 직업들을 비하할 의도는 당연히 없으나, '나의 직업'을 사회적으로/이름으로 인정받는 방법이 끝에 '-사'를 붙이는 것밖에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있다. 아무 직업에나 '사'자를 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이 모두 '선비(士')가 되는, 너도 나도 족보 사서 '양반'이 되는 것뿐이었을까 하는 거다. 예서 뻥튀기를 좀 더 하자면 '끼어들기'와 '새판짜기' 중 '끼어들기'를 선택한 것 같고, '끼어들기' 전략이 늘 그렇듯, 뭔가 다른 여지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

3.
한데 또 생각해 보면 공히 호칭과 지칭으로 쓰이는 직업/직함도 있다. 변호사, 기자, 의원, 부장, 과장 등등. 대개 남들 앞에서 명함 정도 들이밀어도 될 만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은 점점 지칭으로도 호칭으로도 쓰이는 것 같다. (근거는 없다. 사전조사 전혀 없이 이 글 쓰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운전기사를 부를 때 '기사님'이라고도 하는 걸 보면 호칭과 지칭의 경계가 점차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러고 보면, 똑같이 '사'자 돌림인데 (대부분 남성인) 운전사를 '기사님'이라 부르는 건 자연스럽고 (대부분 여성인) 식당 여성노동자를 '차림사님'이라 부르는 건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은 내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지점일지도. 그리고 이 모든 잡상은 어쩌면 단순히 새로 생긴 단어에 대한 낯섦일지도.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일단 힘을 실어주며 함께 가는 것이 좋을지도.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차림사님'을 '차림사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부르고 싶어질까?

아마도 나는 식당에 가면, 그냥 여지껏 해온 것처럼 식당의 분위기와 구조, 음식의 평균가와 친숙도와 종업원의 수와 기타등등에 따라 1)벨을 누르거나 2)메뉴판이나 손을 머리 위로 조용히 들거나 3)'저희요~' 하거나 4)주방이나 카운터에 찾아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거나 5)필요한 물건을 직접 공수할 것이다. 그리고 눈 마주치며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할 것이며, '잘 먹었습니다' 꾸벅 인사할 것이다. 아직은(?) '차림사님~'보다는 지금이 좋다. 미안하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2/06/26 17:30 2012/06/26 17:30
, , ,
Response
No Trackback , 16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42

이와키 워터드립의 가장 큰 단점(?)은 물이 너무 빨리 떨어진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개발해 내고 있다. (뾰족한 온도계 끼우기, 수액줄 활용하기 등등. 카페뮤제오 같은 사이트에 가 보면 여러 가지 방법을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무식 용감한 나는 '물 구멍을 줄이면 되잖아?' 하는 생각으로...

구멍 입구를 롱 노즈로 살짝 집어 주었다. 결과는 대만족. 5~8초 정도로 지연되었다. 그런데 한동안 안 쓰다가 엊그제 쓰려고 봤더니 뭐가 끼었는지 너무 막혔;;; 구멍을 핀으로 살짝 뚫어주었더니 어랍쇼, 다시 물이 콸콸콸;;; 그래서 다시 롱 노즈로 찝어 주었다능 ㅠ.ㅠ 그랬더니 우라질, 물이 30초에 한 방울씩 떨어진다. (어제 오후에 추출 시작했는데 아직 반밖에 안 됐;;; 아 마시고 싶다규 >.<) 이번 추출 끝나면 핀으로 또 살짝 뚫어주어야겠다. 킁.

(그리고 며칠 후...)

또 핀으로 살짝 뚫었더니 물리적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뭉텅이로 추출구 조각이 날아가 버렸다능. 덕분에! 처음 샀을 때보다 빨리 떨어지는 불상사 발생. 그날 이후로 더이상 사무실에서 더치커피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 마시고 싶어 마시고 싶어!

(그런데 다 쓰고 보니 민우회와 일다 메타블로그에 등록한 블로그의 글이라기엔 좀 거시기하군;)

* 후기 *
이제 물리력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아 화력을 이용했다. 적당히 달군 쇠젓가락으로 성심성의껏 물구멍 가장자리를 눌러주면 된다. 단, 젓가락이 그을거나 과열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쓰읍~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2/06/12 15:32 2012/06/12 15:32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40

쥔장이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작은 개인업체다.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기도 하다. 요새 한창 사람을 뽑는 중인데, 예전부터 느꼈지만 안타까운(?) 언니 오빠들이 참 많다. 정말 취직을 하고 싶은 건지 의심스러운. 하여 '정말' 작은 회사라도 취직하길 원한다면 아래 내용 정도는 좀 생각하고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쓴다. 내가 겪은/겪고 있는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나 조직 규모나 업종에 관계없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
해당 회사가 뭐 하는 데인지, 본인이 채용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좀 알아보고 지원하자.


취업 사이트에서 '구인' 중인 거의 모든 회사에 무차별적으로 서류를 집어넣는 게 아닐까 싶은 지원서가 꽤 많다. 여기 저기 다 걸어놓고 '하나만' 걸려라 하는 심산일 게다. 장담컨대, 그러면 '하나도' 안 걸린다. 담당자들이 읽어봐도 모를 것 같지? 기본 이력서랑 소개서 하나 써 놓고 글자 하나 안 바꾸고 제출한 거 다 보인다. 인터넷 지원이 쉬워지면서 어째 이런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 예나 지금이나 지원하는 회사에 그 정도 관심도 없는 사람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 리더십이 어쩌고 열정이 어쩌고 화목한 가정이 어쩌고 열심히 떠들어 보시라. 면접 보라고 연락 오는지 어디 보자.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나마 기본 포맷에 한두 문장이라도 회사 내용 추가한 사람이 예뻐 보일 지경. (하지만 착각은 금물. 이 경우도 기본 내용에 억지로 끼워 붙인 티 다 난다.) 정말 취직하고 싶다면 자기소개서는 회사별로 늘 새로 써라. 결국 비슷비슷한 내용이 되더라도 회사 하나 정해 놓고 쓰는 거랑 있는 거 복사-붙이기 해서 내는 거랑 천지차이다. 응? 그러다 언제 몇 군데씩 지원하냐고? 위에서 언니가 다 얘기했다. 어차피 있는 거 갖다 쓰다가는 한 군데서도 연락 안 온다고.

그리고 회사에서 어떤 직무를 뽑는지는 좀 확인하고 이력서 내자. 땡땡직을 뽑는데 지원 분야가 '무역'이나 '컨설팅', '교육'이면 어쩌라는 걸까. 공고에 저런 단어가 하나라도 들어갔으면 내 말을 안 해요. 다른 회사에 넣었던 서류 똑같이 내고 있다는 걸 광고하고 싶었거나, '취직' 자체에만 관심 있을 뿐 어떤 일인지는 전혀 관심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이 역시 학창시절이 어쩌고 사회 경험이 어쩌고 암만 읊어봐야 꽝이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을 뽑을 회사는 없으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는 '무역' 하고 싶으면 제발 '무역' 회사에만 지원하세요, 네?

둘, 오탈자와 맞춤법 체크는 백 번 해도 된다.

이게 두 번째로 올릴 내용인가 싶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도 그렇고 이 업무의 특성을 봐도 그렇고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 보라. 국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교정교열에 능하다고 어필한 지원자가 정작 자기소개서에 '~로서'를 '~로써'로 썼다면? 요새 말로 '헐~'인 거지. 본인이 하는 '말'은 소용없다. 그야 얼마든지 꾸미기 나름이니까. 그 '말'과 '행위', 혹은 그에 대한 결과물이 자기소개서인 거다. 깔끔한 문장, 틀림 없는 맞춤법은 반드시 채용 담당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다. 더불어 오탈자는 성의 없는 지원으로 보이기 딱 좋은 아이템.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점수 팍팍 깎인다. (아 물론 우리처럼 작은 회사에서 항목별 배분표를 가지고 점수를 매기는 것은 아니다. 지원서를 읽다가 내 마음이 서늘해진다는 얘기다.)

셋, 이모티콘 좀 쓰지 말자. '지원메일'에도 신경 좀 쓰자.

아주 정신 나간 지원자가 아니라면 지원서에 이모티콘이나 유행어, 비속어를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데 간혹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쓴 걸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랑 ~. 저 정도로 인사담당자가 친근함을 느끼게 될 거라는 착각은 제발 안 했으면 한다. 성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공적 영역에 진출하려는 사람이 '공식적으로' 자신이 어떠어떠한 인간이라는 걸 알리는 서류에 '안녕하세요^^'가 웬말인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는 또 뭔가. 내가 당신 선배여서 지금 나한테 인사청탁하는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댁 모른다. 참고로 예전에, 집에 있는 노트인지 연습장인지 한 장 찢어서 '자필'로 '무대뽀 정신으로^^' 임하겠다는 지원자가 있었다. 연습장에서 한 번 아웃, 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 '자필'에서 한 번 더 아웃, '무대뽀'에서 최종 아웃됐다.

지원메일 쓸 때도 마찬가지다. 큰 회사야 지원 시스템에서 바로 지원해 버리면 되니 메일 쓸 일이 없다. 그러나 작은 회사들은 메일로 지원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원메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착각은 버리자. 기본적으로 회사는 지원자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회사가 확보할 수 있는 내용은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지원자가 회사에 제공한 '모든' 자료를 판단 근거로 삼는다. 제출서류가 이력서, 자기소개서라고 그것만, 그러니까 그 내용만 보는 게 아니라는 거다. 지원메일의 형식과 내용, 심지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편집방식까지 살핀다. 우편일 경우 서류를 어떤 식으로 배열하고 철해서 넣었나, 봉투에 주소는 어떻게 썼나, 이런 것까지 본다. 이런 것들이 바로 채용 담당자들이 호감을 가지고 본인의 서류를 검토할지, 뾰족한 마음으로 훑을지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제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 좀 해라. 메일 쓸 때는, 회사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 난 선배 하나 붙잡아서 거래처에 처음 메일 보낼 때 어떻게 쓰느냐고 물어보든가, 검색을 해 보든가 책을 찾아보든가 해서 '공적' 느낌 풀풀 나게 써 내라. 짧고 간결하게.

넷, 사진이 그거밖에 없던가요?

개인적으로는 이력서에 사진 붙이는 거 별로다. 생긴 거 기억도 안 나고 괜히 선입견만 심어준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는 사진을 요구한다. 별 수 있나. 일단 붙여야지. 한데 디지털 카메라 때문에 사진 찍기가 너무 쉬워진 게 문제라면 문제다. 어지간한 스냅 사진이어야 이해를 하지. 이어폰 꽂고 찍은 사진(이어폰 줄 자랑하고 싶으셨어요?), 모자 쓰고 찍은 사진, 머리 위쪽은 뎅강 자르고 첨부한 사진... 그런 사진 낼 바에야 그냥 사진 첨부하지 마라. 우스워 보이는 건 그 사람 하나로 족하지, 괜히 채용했다 회사까지 우스워질라.

그러니까 요는,

회사 작다고 사람도 허투루 뽑는 거 아니라는 거다. 좀 모자란 사람들이 모여서 얼렁뚱땅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데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정말 밥 벌어 먹고 살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 그만큼의 성의는 보여라. 하다못해 인터넷 서평단이니 체험단이니 하는 활동할 때도 그 상품 받아먹은 값 하려고 몇 시간씩 사진 찍고 글 쓰고 하지 않나? 하물며 밥벌이하는 데 그 정도 정성도 못 쏟나? 일에 비해 대기업보다 연봉 적고 이름값 없고 복지수준 형편없어도, 그보다 형편없는 지원서 감내해 가며 사람 쓸 회사 없다. 제대로 된 사람 아니면 그만큼의 급여도 아까운 거니까.

별책부록. '나이' 때문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연령제한이 있냐는 질문을 간혹 받는다. 내가 알기로, 정당한 사유 없이(이 일은 꼭! 반드시! 몇 살 이상이나 이하가 해야 한다! 이런 거지. 근데 암만 생각해 봐도 세상에 그런 일 거~~~의 없다.) 나이 제한하는 거 위법이다. 당연히 나이 제한 없다. 뭐, 우리 사장님 입장은 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나이 제한하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지원자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그런데 4, 50대분들, 혹은 30대라도, 이분들이 서류전형 단계를 통과한 기억이 없다. 아마 그분들은 당신의 나이 때문이라 생각하고 계실 게다.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서 그분들을 나이 때문에 불합격시킨 게 아니다. 내 비록 지금 사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나 명색이 여성주의자인데, 적어도 내 권한 아래 놓인 일만이라도 내 가치관 지켜가며 일하려 노력한다.

그럼 그분들은 왜 면접 기회를 잡지 못했을까? 대개는 '핀트'가 안 맞아서다. 본인의 경험과 경력이 나열되어 있기는 하지만 정작 우리 회사에서 건질 만한 내용은 없는 경우. 그럴 경우 '경력'이 아니라 '신입'이라는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데 '신입'으로서의 자질은 또 보이지 않을 경우. 회사에 도움 되지 않는 경력으로 경력 대접을 해 달라는 건 누가 봐도 말이 안 되잖아. 한데 그걸 간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심지어 '내가 친히 임하여 너희 회사를 잘 이끌어 주겠노라' 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쓴 지원자까지 있을 지경. 감히 말씀 드리건대, 본인이 해 온 일과 비슷한 업무거든 경력을 최대한 부각시킨 성실한 직무기술서로, 새로운 업무라면 '신입사원답게' 서류를 갖춰서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몫의 밥벌이를 하려는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역시 나도 나이를 먹었나...)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2/04/30 15:26 2012/04/30 15:26
, , , , ,
Response
No Trackback , 15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39

내 친구들은 결혼식에 잘 안 간다. 나는 청첩장 주면 웬만하면 간다. 사진은 안 찍고 신부랑 인사만 하고 바로 밥 먹으러 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친구들이 결혼식에 안 가는 이유는 글쎄, 안 물어봤지만 결혼제도와 결혼식에 대한 반감도 있을 테고(내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대부분 여성주의자다.) 돌려받을 기약 없는 축의금 헌납에 대한 반감도 있을 테다. 이게 참으로 당연한 것이, 결혼식에 가도 좋을 만한 '친한 친구'는 정작 결혼에 뜻이 없고, 결혼소식을 알리는 사람은 대개 어중간한 관계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축의'하기엔 좀 찝찝하다. 그럼 나는 왜 가느냐. 일단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는 친구들과 좀 다르다. '사기업'에 다녔고, 현재도 다니고 있으며,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등을 화제에 올리는 사람들과 취미생활도 하는 나로선 결혼식 생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것도 아닌 게, 예전에는 저런 결혼식 왜 하나, 왜 가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내 인생도 아닌데, 일껏 오라고 챙겨 줬는데 기대에 부응해 주자 하는 생각이다. 축의금만 전달할 수도 있지만 뭐, 난 남들이 싫어한다는 결혼식 뷔페도 좋아한다, 흠흠; 이왕 선택한 결혼, 잘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물론 있고.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돌려받을 길 없는 축의금 총액을 생각해 보면 가끔 아깝기도 하다. 그거 회수하자고 맘에 없는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쩝.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결혼만이 인생지대사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을 제외하고는) 결혼이나 아이만이 타인에게 크게 축하 받을 가치가 있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따분하고 재미없다. (한편으로는 외려 결혼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으니까 고작 결혼 '따위'로 사네 못 사네 지지네 볶네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일생일대의 이벤트이자 큰 돈 들어가는 일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여행'이, '취업'이, '내 집 마련'이 일생일대의 사건일 수 있다. 결혼하지 않은, 할 생각도 없는 누군가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가끔, 결혼할 생각이 없어 뵈는 (뭐,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상관은 없다만) 친구들에게 일 삼아 축의금을 낸다. 오늘은 한 명이 최근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대서 약간의 축의금을 넣었다. 그리고 비혼여성들의 이런 축의금 품앗이가 더 널리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너 이번에 회사 정리하고 유학 간다면서? 큰 결심했네. 잘 다녀와'라던가, '강아지 입양한다구? 오랫동안 노래 부르더니 잘됐다 야. 진짜 축하한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던가, '그 업소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게냐'라던가... 뭐 이런 말들과 함께 쓱 건네는 축의금 봉투,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얼마나 즐거운가.

요즘에는 '내 집'으로 이사하면 '청첩장'을 돌려 볼까 하는 상상을 한다. 나의 '내 집 마련'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자 새로운 출발이며 앞으로 더 잘 살겠다는 다짐이니까. (야, 집이랑 결혼하냐?) 집에 다 불러들이기엔 집도 좁고 너무 번거로울 테니까 예식장이나 뷔페식당 하나 잡아서 밥들 한 끼 먹이고, 축의금도 물론 받고! 본식에서는 집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었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동영상도 상영하고 축가랑 축하 댄스도 받고... 응?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2/04/24 13:36 2012/04/24 13:36
, ,
Response
No Trackback , 8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38

내 평생 그를 오프라인에서 본 것은 딱 한 번뿐이다. 육성으로 말을 섞은 것도 단 한 번뿐. 처음이자 마지막 한 번. 몇 번은 더 있을 줄 알았던 한 번.

그가 하늘로 돌아간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리고 방금 그의 1주기에 맞춰 리뷰집과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늘 온라인에서 만났던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직도 그가 살았던 아파트 앞을 지나노라면 나도 모르게 "앗, 만두 언니네다" 하게 된다. 그러다가 뒤늦게 '아, 언니는 이제 없지' 하는 생각에 풀이 죽는다.

알라딘 물만두. 그에게 나는 수많은 지인 중 하나였을지 모르나, 나에게 그는 무슨 일만 생기면, 아프기만 하면 달려가서 쫑알대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마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모두에게 자신을 특별하고 애틋한 사람으로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희귀한 병 때문이 아니라 모두에게 살갑고 따뜻한 그의 심성 때문이었다.

어느 볕 좋은 날 후다닥 납치해서 피크닉을 가고야 말겠다는 치카 언니와 나, 그분의 깜찍한 소망은 이번 생에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다음 생에는 우리에게 더 좋은 날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비록 개인적으로는 내게 다음 생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속내를 비치면 그는 아마도 아니다, 이번 생도 충분히 좋았다, 고 말할 테지만.

보고 싶어요, 언니.

* 이후 덧붙임
언젠가 언니는, 몸을 움직이기가 더 힘들어져 책마저 읽을 수 없는 날이 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더랬다. 그때 나는 언니에게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여 그런 날이 오게 되면 열심히 책을 읽어 녹음해 보내주겠노라, 했었다(이 또한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랬던 언니가 마지막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신체는 손가락 여섯 개, 였다 한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1/12/01 17:26 2011/12/01 17:26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36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 11 : Next »

블로그 이미지

투덜투덜

- etcetera

Archives

Authors

  1. etcetera

Calendar

«   201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1279989
Today:
1003
Yesterday:
1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