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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왜’냐고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왜냐는 물음이 용납되지 않아, 저는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느 순간부터 저는 말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앎과 삶의 불일치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있으면서 ‘감히’ 여성주의자입네 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문을 틔웠던 여성주의로 인해 되레 말을 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제 입을 반쯤 틔운 건 하나의 글이었습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여가부와 일베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는 글이었죠. (이후 '공통점'을 추가해 새 글까지 썼네요. 법원판결도 여성가족부 탓이군요. 보시다시피 사법, 입법, 행정부를 쥐락펴락 하는 여성가족부입니다, 녜;)

공통점

1.남녀갈등을 조장한다.
ex)여가부:군가산점,성매매특례법 등
일베:김치X, 보X아치

2.둘다 似而非(사이비)다.
ex)일베는 보수가 아닌데 보수라 주장(실제로는 친일종북)하고
여가부는 페미니즘이 아닌데 페미니즘이라 우긴다.(실제로는 여성우월주의) (원래 페미니즘은 남성의 인권을 떨어뜨리고 여성인권을 올리는게 아니라,여성인권을 남성수준으로 신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국,북유럽등의 페미니스트가 우리나라에 오면 욕을 할것이다.)

3.일반 사람들에게 욕 먹는다. 특히 여자에게 더 욕 먹는다.

4.둘다 선행보다 악행이 많다.
일베에서도 선행을 어느 정도로는 하지만,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수간).
역시 여가부에서도 성폭력예방, 호주제(이건 선행)이지만, 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 셧다운제, 아청법).

차이점

1. 여가부는 정부 산하지만, 일베는 국정원 산하 무료알바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편견과 오만에 가득 찬 이 글이 ‘유머’ 게시판에 올라가 있고, 수십 명이 그 논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 이 글은 풍자와 비하에 관한 것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풍자에 대해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때 풍자소설을 가장 사랑했던 제 생각에, 권력을 비트는 것은 풍자입니다.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것은 폭력입니다. 전자는, 약자들과 함께 보고 웃을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마음에는 안 들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권력이 있으니까 그깟 풍자 따위,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괜찮습니다. 좀 더 대범한 치라면 함께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요. 좀 더 꼰대 같은 이라면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보복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건, 잔인한 행위입니다. 장애나 인종, 성정체성 등에 대한 비틀기가 ‘풍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비하이고 차별, 폭력이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거나 관철할 힘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한 가지 속성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권력자인 동시에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한 가지 정체성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한국사회에서 그 오묘한 결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집단이 (특히 보수 쪽의) 여성 정치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권력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이기에 ‘OO년’이라는 막말을 듣거나, 누드 합성사진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현재 여성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풍자의 대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현재의 여성가족부. 네, 저도 참 별로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더 더 우월하게 하려고 여성가족부를 존속시키고 있는 걸까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여성들만 그걸 모르고 있어서 놔두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여성우월 사회라고 할 만한 권력이란 게 대체 여성의 어디에 있는 건지요. 불혹의 나이에 집도 절도 직장도 없어서, 생존을 위해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충고나 받는 제게 있습니까? 아이는 어린이집과 보모에게 맡기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주말에는 밀린 살림과 아이 보기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이는, 제 언니에게 있습니까? 살림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상대적으로 살림할 시간을 보장해 주는, 그렇기에 '최고의 신붓감’ 소리를 듣는 제 교사 사촌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박근혜에게 있습니까? 그것이 박근혜가 ‘여성’이라서 획득한 것입니까? 주위 어떤 사례, 어떤 통계에서도 여성우월 사회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징집이나 군 가산점제 얘기하고 싶은 분들은 이 글 읽고 다시 오세요. 여성징집을 제일 반대하는 부처가 어디인지도 좀 파악하시고.)

이쯤에서 저는 또 궁금해집니다. 다른 행정부처 다 놔두고 왜 하필, ‘여성가족부 괴담’만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는 걸까요? 노동자를 위한 정부기관이라 하는, 그러나 정작 사용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용노동부가 회식비를 얼마를 썼니 마니에 대한 루머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보건사회복지부와 일베의 공통점 따윈 상상해 본 적도 없으시겠지요. 바로 그 사실이, 여성이 여전한 사회적 약자임을 증명하는 거 아닐까요. (심지어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가족청소년부’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여성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가장 ‘만만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 지위에 변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소수집단과 비교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요.

저 ‘유머’의 당사자가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결국 저 ‘유머’를 만든 이의 여성에 대한 관점은 ‘일베’ 사용자들의 여성혐오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욕설의 수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은 ‘내가 일베란 말이냐! 민영화나 먹어랏!’으로 수렴될 테죠.

...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굳었던 입이 쉽게 열릴 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다어제, 소위 ‘김치녀 대자보’를 접했습니다. 사실 그리 ‘세련된’ 혹은 ‘친절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의 글이 먹히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메시지를 구구절절 집어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나 세련되지 않았기에 더 진정성 있어 보이는 그 대자보를 보고, 미안했습니다. 20년 전 우리는 ‘여성의 현실이 이래.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원해’라고만 했으면 됐는데, 한바탕 페미니즘의 유행이 쓸고 간 이 사회의 여성들은 이제 여성차별에 더해 여성혐오와도 싸워야 하니까요. 선배 여성(주의자)으로서 이런 사회를 물려주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제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개념녀도, 김치녀도, 그 어떤 기준에도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사세요”인 것도 미안합니다. 좀 더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런데 오늘, “대자보는 이런거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며, 또 다른 ‘김치녀 대자보’를 지칭하는 글을 접했습니다. 역시 '유머' 게시판에 있는 해당 글에는 이 문구에 빨간 네모가 쳐져 있더군요. (어이쿠, 그새 '민영화' 많이 먹고 사라졌네요.)

김치녀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이 각박한 세상입니다
평범한 여성이 이 사회에서 안녕하려면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많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기에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합니다.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자신의 생활 수준보다 높은 소비를 해야 하기에 명품 백을 들고 스타벅스에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씩 김치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군요. 대자보는 그런 거 쓰라고 있는 게 아니군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대자보는 어떤 데 쓰라고 있는 것인가요? 알려 주세요. 아, 그런데 그 전에 누가 당신에게, 저 여성의 입을 막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사실 개념녀가 될 수도, 김치녀가 될 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을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온 저는 눈물이 나더군요. 저희 세대 역시 주류에서 배척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주장 앞에는 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을 붙여야 했으니까요. 더 더 오래 전부터, 여성은 성녀이자 마녀여야 했으니까요. 이름만 다를 뿐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와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구나 싶어 몹시 서글펐습니다.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성이 되지 않는 것'뿐인데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얘기죠. 자기부정의 끝은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물론 선배 여성으로서 안타까운 점은 분명 있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려는 것도 나쁘지만, 모든 원인을 사회에만 전가하는 것도 건강한 사고방식은 아니니까요. 평범한 여성이 되지 않기를 선택하고, 조금 덜 안녕하기를 선택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겁니다. 너무 두려워 마세요. “평범한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안녕”하길 택하지 않고서야 비로소 행복해진, 제 얘기입니다.

다시 돌아와, 누가 글쓴이에게 저 여성을 비웃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을까요?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저 여성도 그럴 텐데. 네네, ‘무지몽매한’ 여성을 가르치는 건 예로부터 천부남권(天賦男權)이었죠. 여성은 늘 남성의 소유물이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이고,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하는 열등한 존재니까요. 어디 암탉 따위가 말이죠. 그러니 이렇게 ‘준엄히 꾸짖어’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죠.

... 설득에 지치고 게으른 저는 그저,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쓴이님, 그리고 오늘도 다른 여성을 가르치느라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실 남성 여러분, 그런 사명감 따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무거운 짐일랑 내려놓으시고, 공감을 할 수 없다면 그저 존중해 주세요. 죽을 수도, 미칠 수도 없는 그들의 고민을 존중마저 하기 어렵다면 그저, 무시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왜 이것을 하지 않아?’라고 남을 다그치지 마시고, 가르치려 하지도 마시고, 당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잘 살 테니까요. 그렇게 놔둬서야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고요? 그런 우국충정은 다른 ‘거대한’ 주제에 쏟으셔도, 사회는 충분히 잘 돌아갑니다. 걱정 마세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두 개나 가져와서 썼으니 응당 그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이 좋았겠으나, 커뮤니티 활동은 당최 적성에 안 맞는지라 제 공간에 올린 것이니 너무 불쾌해 하진 마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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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7 14:57 2014/01/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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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나한테 왜 이래

오랜만에 컴퓨터를 밀고 블로그에 들어왔다. 더 미루면 정말 까먹을 것 같아서. 10년 전 터키 여행기도 그렇게 날려먹은 게 생각나서. 그런데... 분명 9월에, 다음 포스트(여행기)를 써서 USB 메모리에 저장해 두었는데 지금 보니 없다... 기운이 빠져 그 얘길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다음 얘기도 할 기운이 없다.


잡담 2. 올 겨울 최대의 수확 (부제: 생강차의 비밀)

2~3년 전에 생강을 설탕에 재 두었다. 그냥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뭔가 생강의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 같아 올 겨울엔 큰 냄비에 생강청과 물을 넣고 팔팔 끓인 후 마셨다.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것보다야 낫지만 여전히 성에 안 찬다. 그러다 한살림에 장 보러 갔다 생강차 파는 것을 보고 성분을 확인. (참고로 한살림 생강차는 별로 달지 않고 생강의 화~ 한 맛이 잘 느껴진다는 평이 있다.) 응? 생강가루가 좀 들어갔네? 집에 돌아와 속는 셈 치고 마침 시골에서 얻어온 생강가루를 몇 번 탈탈 털어 넣었다. 그래, 이 맛이야!


잡담 3. 아이 갓 럭키

1월 7일. 스타벅스 '럭키 백' 파는 날. (럭키 백이란, 지난 시즌에 팔다 팔다 못 판 텀블러나 머그 같은 것들을 세트로 구성해서 무료음료권과 함께 파는 것. 사기 전엔 구성품을 확인할 수 없고, 대략 10만 원 안팎의 커피 관련 용품들이 들어 있다.) 재작년엔 살까 말까 고민하다 넘겼다. 작년엔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인가 여유롭게 갔다가 당일 매진 되었다는 얘길 듣고 헉; 올해도 어김 없이 날아온 예고 메일을 보고 사러 갈까 말까 고민하다 사 보기로 결정. 스테인리스 텀블러도 두 개나 있고, 플라스틱 텀블러도 있고 머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서! 심지어 백수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45,000원을 쓰겠노라 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섯 시가 좀 넘었다.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하다 7시 정각에 집 근처 매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장사진이;;; 헐;;; 배급량은 13개라는데 줄 선 사람은 그보다 많다. 내 앞에서 끊길 게 확실. 헐레벌떡 8시부터 문을 여는 근처 다른 매장으로 갔다. 문도 안 열린 가게 앞에 다섯 명이 줄을 서 있다. 앞에 선 언니에게  "럭키 백 줄 서신 거죠?" 했더니, "네. 그런데... 다섯 개밖에 없대요." 쿠당. 이쯤 되면 오기인지 성질인지가 생긴다. 우쒸, 차 가지고 다니면서 이 지역 매장을 다 훑어버리겠어!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근처에 매장이 어디 있더라... 땡땡 오피스텔 지하에 하나 있고 저쪽 지하철역 근처에도 새로 하나 생겼다고 하고, 아 거긴 주차하기가 좀 거시기한데... 하다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매장에서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감사를;) 근처 매장이 이런 상황이면 다른 매장도 십중팔구 마찬가지일 거야, 당장 쓸 컵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밑창 다 떨어진 운동화도 못 바꾸고 있으면서 이게 지금 뭐 하는 짓? ... 그리하여 찬바람에 정신 든 쥔장은 손 호호 불면서 곱게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는 얘기.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사 마실까 하다 집에서 냉동실 묵은(;) 원두 꺼내 드립해 마셨다는 얘기. 그래도 성과라면, 작은 행운을 잡으면 늘 '이게 내 행운의 최대치가 아닐까'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 럭키 백을 놓침으로써 뭔가 더 큰 행운이 나를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괜찮아. 내 럭키 백은 아직 개봉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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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0:49 2014/01/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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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모르겠고, 이 글을 보니 생각 난 얘기 하나.

자랐던 고장에는 4층 규모의 제법 큰 서점이 있었다. 지금의 교보문고처럼, 원한다면 책 한 권을 서서 다 읽을 수도 있는. 틈 나면 거기 가서 노는 게 일이었던 이 고딩은 어느 날 뭐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책장을 훑다 웬 문고판 시리즈 앞에 당도하게 된다.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무늬가 들어간 표지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의 문고판은 중학교 때 이미 많이 읽었더랬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니, 인간의 굴레니, 제인 에어니... 뭐 그런 것들이겠거니.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고전들보다 더 구미가 당겼다. 오호라, 이런 책을 왜 이제껏 몰랐을꼬. 그렇게 새로운 종류의 전래동화를 기대하며 펼쳐 들었다가 5분도 못 되어 화들짝 덮었던 그 책의 이름은 "맥스웰의 도깨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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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22:59 2013/10/2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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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스 카드 잔액이 0원이 되었다. 휴게소에서만 충전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은행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고 해서 ATM기에 갔다. 처음(그러니까 며칠 전)에는 해당시간이 아니라고 나를 밀어내더니, 오늘(금요일)은 통신이상이라고 내 돈을 안 받아준다. 별수 없이 창구로 가서 내 카드를 보여주었다. 이참에 그냥 자동충전을 신청하자 싶어 자동충전을 설정해 주시되, 새로 카드를 발급 받지 않고 지금 보유한 카드와 연계가 가능하면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내가 갖고 있던 카드에도 분명 자동충전이 가능한 카드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새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한다면 굳이 자동충전 카드를 쓸 생각은 없었다. 괜히 지구에 쓰잘 데 없는 플라스틱을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으니까.

어리바리한 직원은(입사 1년이 안 돼 보이는 이 직원은, 이상하게 내가 이 은행에 갈 때마다 내게 배정이 되는데, 만족스럽게 일을 처리한 적이 없다) 버벅대다 몇 가지 바보스런 질문(차가 1종이냐 2종이냐-면허 얘기 아님-고 묻질 않나, 기껏 경차라고 얘기해 줬더니 '승합차'라고 하질 않나-승합차는 봉고차예요-)을 던진 후 아무렇지 않게 새 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으이구... 기존 카드에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냐 하니 그제야 여기 저기 클릭해 본다. 에효,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쩔 것인가. 됐다고, 놔두라 하니 꼭 이 카드를 쓰셔야 하는 이유가 있냔다.

"쓰레기 생기니까 그러죠."
"아, 제가 대신 버려 드릴까요?"

헐... "쓰레기가 생긴다는 말이 제 손으로 버리기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한 마디 남기고 카드를 다시 받아왔다.

저렇게 일 못하는 사람도 정규직에 나보다 월급 많이 받고(지금은 누구든 나보다 월급 많이 받는 사람; 나는 백수이므로;) 일하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그분에게 투덜거렸다. 한편으론, 하루에도 무수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주제에 특정 상황에만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살짝 반성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이나마 신경 쓰니 그나마 지구의 쓰레기가 주는 거라는 생각도. 근데 그러고 보니 오천 원이나 주고 샀는데 카드값은 환불도 안 해준다. 우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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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0:30 2013/10/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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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던 아버지는 밥을 할 줄 안다. 어릴 적 주말이면 잘게 썬 삼겹살과 콩나물, 김치를 넣어 볶은 밥을 특식이라며 내어놓는 것도 좋아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삼겹살 못 먹는 나는 질색팔색 했지만. 그러나 그 외에는 손 하나 까딱할 줄 모르는, 별 놀랍지도 않은 그 시절 아저씨였다. (지금 세상에서는 까무러칠 일이지만) 어린 내게 늘 담배 심부름을,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재떨이 대령을,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서 방에 있는 내게 물 심부름을 시키는. 그래도 엄마 편찮으셨을 땐 (내가 밥 할 만큼 큰 이후에도) 더러 밥을 안치기도 한 걸 보면, 영 몹쓸(!) 가부장은 아니었지 싶다.

당신 밥상에 숟가락 하나 안 놓던 아버지가 바뀐 건 퇴직 이후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자식들 다 키워놓고 상대적으로 활동이 많아진 엄마는 끼니 때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별수 없이 아버지는 당신 진지를 스스로 차려 잡수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오실 때까지 굶어버리거나, 끼니 때 꼭 맞춰 집에 돌아오라고 윽박지르지 않은 걸로 봐선 역시 영 몹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전화하면 가끔 혼자 식사 중이라며 툴툴대시지만, 정작 당신도 어머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실 때면 일주일 넘게도 혼자 삼시 세 끼를 해 드시는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런 양반이 아니었는데;

그런 아버지도 집에 다른 사람, 아니 내가 있으면 달라진다. 밥 차리기는커녕 식탁에 앉아 밥 차려라, 숟가락 놔라, 무슨 무슨 반찬 꺼내라... 잔소리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설거지는 무슨, 당신 식사 끝내자마자 빈 그릇 그대로 두고 상에서 일어나신다. 이건 딱 내가 어릴 때 날마다 보았던 광경이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는 그 행위를 통해 여전히 당신이 '집안의 가장'임을 주지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고 짠해 군말 않고 치워 드린다.

(그러나 당신 닮아 성질 고약한 딸내미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국 뜨고 있는데 빈 그릇 하나 가져오라 해서 조용히 "한 번에 한 가지만 시키셔 --;" 하고, 제상에 올린 음식들 쉬니까 갈무리 좀 해 놓으라고, 그런 건 '여자가' 미리 미리 알아서 해 놔야지 뭐 하냐시기에 심드렁하게 "내 살림인가, 아부지 살림이지" 해 버렸다.)

역시 음식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추석. 그리고 이것은 당신 빈 밥그릇 안 치워도 좋으니 건강만 하게 해 주세요, 할 날이 머잖은 '여성주의자 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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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1:06 2013/09/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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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으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지는 것처럼, 곧 백수를 앞두고 살 게 많아졌다. 주로 신고 다니는 여름 샌들과 운동화, 플랫슈즈는 모두 찢어지고 비가 샌지 오래 되었고, 잡곡은 한 번 먹을 분량밖에 안 남았고, 식용유는 어젯밤이 마지막이었고, 간만에 달걀말이 찍어 먹으려고 보니 케첩도 눈곱만큼 남았고... 뭐 그렇다. 기백만 원이 예약된 치과치료는 제외하고. 여행의 여파로 통장은 마이너스를 찍었는데, 왜 하필 이런 때 이렇게 갑자기 살 게 많아진 걸까.

그러다 알았다. 갑자기 살 게 많아진 게 아니라, 단지 사야 할 것들을 '의식'하기 시작한 거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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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2 13:53 2013/09/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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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내게, 고행이다.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가보다 무엇을 더 참을 수 없는지가 훨씬 중요해서 그렇다. 나는 보스를 품을 그릇이 안 되고, 보스는 나를 품길 드디어 포기하였다. 돌아서면 그니 욕하기 바빴는데 결국 똑같은 수준이었구나. 깨달음은 늘 뒤에 오지만 돌이킬 생각은 없다. 퇴사를 서로 합의한 후부터 비로소 숨이 다시 쉬어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나 이후를 위해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무식, 부정의, 몰염치, 가난, 소음 따위의 단어가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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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7 14:01 2013/07/2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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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에 대해 흔히 하는 착각. 그래서 흔히 하는 충고. "그 정도 업무능력에, 성격만 좀 좋으면 진짜 좋을 텐데..." 그야말로 뭘 모르는 소리. 성격 고치기 싫어서 일 잘하려고 죽도록 노력한 거다. 일 못하면서 성격 나쁜 사람은 쓸 데가 없지만 일 잘하면서 성격 나쁜 사람은 싫어도 쓸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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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2 15:18 2013/07/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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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여행 블로그에, 현지인들의 사진을 마구 마구 올려 놓고, 그 사진 주인공들에게 허락 받고 찍은 거냐 묻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아니, 허락 안 받았어. 웃기시네. 넌 사진 찍을 때마다 그 사람한테 다 허락 받고 찍니?" 하는 사람에게 진심 놀라는 중. 초상권 운운 이전에 타인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무식한 여행자(대체 그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 걸까)의 강짜인가, 아니면 허락 받지 않고 사진을 찍고, 그걸 개인 매체에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앨리스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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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4:58 2013/07/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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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결혼한 연예인이 혼인신고를 마치고 결혼식을 하기 전에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게 신혼여행이냐 밀월여행이냐, 혼인신고 했으니 밀월여행 아니고 신혼여행이다, 신혼이든 밀월이든 뭔 상관? 오지랖 쩐다 등등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여기서라도 하고 싶은 말 좀 해야겠다.

"허니문(honeymoon)"을 한자로 하면 "밀월(蜜月)".
honey=꿀=밀(蜜), moon=달=월(月) 되시겠다.

그러니까 "밀월여행"을 무슨 "비밀여행" 쯤으로들 생각하나 본데, 사실 신혼여행=밀월여행이라는;;;

* 덧붙임
역시 예전 싱모모의 판단은 정확했다. 나는 그릇된 정보의 유통을 참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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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3/07/03 10:47 2013/07/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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