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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의 <행복한 왕자>는 계몽사 위인전집처럼 양면 하드커버에 내지는 아마도 2도 인쇄. 물론 어린이용 큰 글자. 그러나 형광 연두인지 형광 주황인지로 색을 입힌 삽화는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을 것이다. 집에 읽을 책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엔 그거라도 감사할 따름. 볼 때마다 울게 돼서 자주 읽고 싶진 않았지만. 쩝. 왕자를 녹인 납덩이와 제비가 함께 있는 이미지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그건 그 책의 삽화였을지?

뭐뭐 아무튼.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집을 고르게 한 건 어릴 때 읽은 작품들의 원작을 찾아내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 단편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텀블러 증정행사.

두 편의 단편집(<행복한 왕자>와 <석류나무 집>)을 붙여 펴낸 이 책은 작가가 "왕자와 공주는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세상의 동화들에게 "웃기시네!" 하고 비웃을 목적으로 펴낸 것만 같다. <행복한 왕자>가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한 개도 안 행복해 했던 왕자라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 넘어가자. 사랑하는 소녀와 춤추기 위해 장미꽃이 필요하다는 애를 위해 한겨울에 심장에 피 철철 흘려가며 꽃 피워줬더니만 그 은공도 모르고 장미를 홀라당 버려버리는 남자애(<나이팅게일과 장미꽃>)에다가, '친구'라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놓고 온갖 방법으로 부려먹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끔찍한 인간(<헌신적인 친구>), 공주가 자길 사랑하는 줄만 알고 신나게 춤췄지만 비웃음 끝에 마음이 찢어져버린 난장이(이 단어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만; 쩝;)까지(<공주의 생일>) 이건 뭐 하나 웃으며 덮을 만한 작품이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별에서 온 아이>는 이런 얘기다.

별에서 온 것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애를 나무꾼이 주워다 키웠는데 얘는 생긴 건 예뻤지만 성격은 안 좋아서 거지 엄마가 찾아와도 외면했다가 그 벌로 흉칙하게 몸이 변했는데 그 때문에 깨우침을 얻어 엄마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우여곡절 끝에 왕비인 엄마를 만나 용서를 받고 그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그들은 아이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아이를 궁전으로 데리고 가서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왕관을 씌우고 손에는 홀을 들려 주었다. 아이는 강가에 있는 도시의 주인이 되어 그곳을 다스렸다. 아이는 사람들에게 자비심과 공평함을 보여주었고, 사악한 마술사를 내쫓았으며, 나무꾼 부부에게는 수없이 많은 선물을 보내고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경의를 표했다. 또한 그는 새나 짐승에게 결코 잔인하게 대하지 않았고, 가난한 자에게는 빵을,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주었다. 평화가 자리 잡았고 땅은 비옥해졌다(226쪽).

원래 동화는 여기서 끝나야 마땅하다. 그러나 와일드는 여기에 굳이 한 문단을 덧댄다.

하지만 아이는 그리 오랫동안 그 도시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데다 너무 힘든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삼 년이 지나 아이는 죽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이어 다시 사악한 왕이 도시를 다스렸다(227쪽).

어쩌면 와일드는 "웃기고 자빠졌네"를 동화가 아니라 우리 사는 현실에 하려고 이 작품들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19세기나 지금이나, 세상은 이런 것.

"전하, 전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의 호사스러움 덕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시옵니까? 전하의 허영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으며, 전하의 부도덕함 때문에 우리가 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옵니다. 가혹한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봉사할 주인이 없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옵니다. 설마 까마귀가 우리를 먹여 살리겠사옵니까? 전하는 이런 일에 어떤 해결책이라도 가지고 계신 것이옵니까? 아니면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가서 '그대는 훨씬 더 많이 사야 한다' 하고 말하고,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는 '그대는 이 값에 팔아야 한다' 하고 말씀하실 것이옵니까?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그러니 궁전으로 돌아가셔서 전하의 화려한 옷을 입으시옵소서. 저희가 고생하는 것이 대체 전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옵니까?(118~119쪽)"

2002년인가 2006년인가, 그 이전까지 월드컵 공인구-를 비롯한 유명짜 한 축구공-들은 제3세계 어린이들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하루종일 눈 빠지게 일해도 우유 한 통 살 수 있는 돈을 쥐었다나 못 쥐었다나.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아디다○는 바느질이 아니라 특수접착 방식으로 축구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위와 같다. 그나마 있었던 알량한 벌이가 끊겨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이 오히려 더 늘었다는 거다.

이쯤 되니 이 책은 동화라기보다 논픽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젠장젠장젠장. (아니면 어릴 때 읽은 책은 당시의 추억으로만 가지고 있는 게 최선이라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까?) ...... <행복한 왕자>는 여전히 나를 울리지만, 이 쓰디쓴 책을 다시 읽는 날이 올지는 모르겠다. 내 눈물은 당분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혹은 같은 시대를 살다 죽어버린 생명들을 위해 흘려야 할 것이므로. 안녕, 오스카.

<별에서 온 아이>
오스카 와일드 지음 / 김전유경 옮김 / 임프린트 펭귄클래식 코리아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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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3 00:13 2009/01/23 00:13

별로 내세울 일은 아니지만 나도 어둠의 경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남들이 으레 하는 것처럼 영화나 MP3를 뒤지는 건 아니다. 목적은 취미생활(일단 껌이라고 하자)과 관련한 DB 구축. 이건 순전히 M모라는 온라인 포럼을 발견한 이후에 시작된 것이다.

껌과 관련한 무슨 동영상인지 음악인지를 찾다가 우연히 들어가 본 온라인 포럼은, 알 수 없는 로마자로 가득했다. 그쪽 언어 중 최소한 영어, 불어, 이태리어, 포르투갈어, 에스파냐어, 독일어는 쓱 보기만 해도 어느 동네 말인지 알 수 있는데, 이 사이트는 아무리 봐도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영어가 아니어도 토렌○와 ○apid○hare 링크는 알아볼 수 있었고, 회원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껌 DB 구축이 시작되었다.

M 포럼에는 별의별 파일정보가 다 올라온다. 심지어 현지에 직접 가지 않는 한 죽었다 깨도 구할 수 없는(아마○에도 안 올라온다) 러시아 껌 제조영상까지 공유된다.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껌 제조나 활용법 동영상, 껌 씹을 때 틀어주는 배경음악은 이미 200G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나 모을 수 있을지, 또 그 중 얼만큼의 파일을 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리고 구차한 건 알지만) 내게도 최소한의 원칙은 있는데, 그렇게 얻은 파일은 아무데나 돌리거나 돈 받고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품을 사지 않은 데 대한 최소한의 예의, 혹은 최소한의 무례이다. 이렇게 얻은 영상을 영어와 인터넷 검색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팔아먹는 사람들은 정말, 정말... 에효.

M 포럼의 버튼과 메뉴는 헝가○ 말이었다. 그들은 검색에 드러나지 않도록(검색어는 대개 자기네 말 아니면 영어니까) 헝가○ 말로 된 사이트에서 헝가○ 말로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불법 공유 사실이 쉽게 드러나 폐쇄되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러나 헝가○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영어 할 줄 아는 사람보다 턱없이 적기 마련이어서, M 포럼에도 점차 영어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에 포럼 운영자는 최소한의 영어만 사용할 것, 링크게재는 숨김 버튼을 이용할 것을 당부했지만, 그런 조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저작권자들이 찾아와 거세게 항의하기도 한다. 가장 최근에 벌어진 논쟁은, 껌 씹을 때 트는 음악 연주자가 촉발한 것이었다. 니들 여기서 이렇게 불법공유해서 내가 잃은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는 항의에 "내 친구가 정품 CD 산 다음에 리핑해서 나한테 준 거야. 난 그걸 올린 거고. 그러니까 이건 도둑질 아니잖아"라는 순진한 발언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다운로드 받는 걸 불법이라고 생각 안 하거든!"이라는 무식한 발언까지(한국사람은 아니었으면 하는 짜근 소망이 있다;), 항의에 대응하는 방식도 가지가지.

하지만 역시 M 포럼 운영자는 남달랐다. 지난 2년 간 한화 150만 원 정도를 '정품' DVD 구입에 써왔다는 그는 껌 토렌○의 주요 제공자다. 시간을 내어 파일을 쪼개 ○apid○hare에 올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것과 불특정 다수에게 대중적으로 퍼뜨리는 게 같을 수 없다며 "사적인 공간에서 한 사람 앞에서 옷 벗는 거랑 길거리에서 벗고 돌아다니는 거랑 같니?" 하는 연주자의 말에 "우리 동네엔 누드비치 있어. 비오면 벗고 춤추는 사람도 있더라. 너도 와볼래?" 하질 않나, "넌 일하면서 돈 받잖아. 그런데 왜 내 일의 결과물은 공짜로 가져?" 하면 "나 4년 동안 돈 거의 못 받고 일했어. 근데 그거 나 돈 벌려고 한 거 아니고 내가 좋아서, 즐기면서 한 거기 때문에 불만 없어"라고 대응한다. 귀엽기는. 허나 그런 저런 궤변을 떠나 그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과 같은 논리였다.

"DVD를 아마○에서 15달러 안팎이면 산다고? 그렇다 쳐. 해외 배송료 어쩔 건데? DVD 하나당 배송료가 기본 13달러야. 미국 애들은 세일도 많고 무료배송 받는 법도 있지? 해외는 짤없어.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많아서 이집트 같은 데는 운송료만 네 배 가까이 들기도 한단다. 그거 주고 DVD 사보겠니? (그러나 토렌○ 프로그램에 표시된 국기 중 성조기가 가장 많다는 점, 대용량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3세계 국가가 거의 없다는 점은 크나큰 아이러니다) 온라인으로 정식으로 다운 받을 수도 있다고? 그거 한 번 해봤는데 리핑 수준 한심하더라. 싱크도 안 맞질 않나, 튀질 않나... 그리고 재생횟수랑 재생 컴퓨터 제한은 왜 해놓은 건데? 하드 날아가면 말짱 꽝이잖아? 그러면서 가격은 DVD 사는 거랑 똑같아요. 그런데 누가 그거 다운 받겠니? 그리고 있잖아, 미국의 10달러가 인도에서의 10달러랑 같니? 누구는 그게 한 시간 시급이지만 누구는 며칠을 애면글면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라고. 그런 사람들한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10달러밖에 안 되니까 사서 봐'라고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니?"

뭐 어쨌거나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 )( '')
(이런 어설픈 급마무리라니;;; 아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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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5 13:16 2009/01/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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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굴러들어온 아르바이트는, 내가 자신 있어 하는 입력작업이었다. 수첩을 보고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전화번호를 엑셀에 입력하는 일로, 건당 몇 십 원을 받기로 했던 것 같다.

땡땡고등학교(땡땡은 익명성 때문이 아니라 학교 이름이 진짜 생각 안 나서다; 전북 땡땡지역-이건 기억 나지만 안 쓰는 거다-이었는데;) 동문수첩은 현 거주지인가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 장(章, chapter)의 맨 앞에는 해당 지역 대표자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맨 앞에 나온 사람은 당연히 그 뒤를 따르는 리스트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중복을 어찌한담. 그렇다고 그들을 일일이 외워 건너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몇 번은 일일이 찾아 고쳤지만 중복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쭉쭉 입력했다. Ctrl+드래그로 복사를, Alt+엔터로 줄 바꿈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알바 중개인인 지인에게 배웠다. 그래도 프로그램 사용이 익숙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치고 또 다시 치고. 그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근데 그건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거였을까. 아무튼,

마침내 입력이 완성되어 결과물을 전해주러 모처로 찾아갔다. 애석하게도 그 지역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허름한 건물에서 한 여성이 나와 디스켓을 받아갔던 기억이 난다. 일 계속해 줄 수 있냐는 말에 감사한 마음으로 끄덕끄덕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여성은 생각보다 신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주겠다던 오만여 원의 아르바이트료는 입금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독촉전화하길 수 차례. 제법 화를 내고서야 아르바이트료는 겨우 입금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더 이상의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10여 년 전에 이미 엑셀을 다루기 시작했구나(현재 프로그램 사용능력과는 별개다) 하는 생각이 스치며 잠시잠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그러다 불현듯, 스치듯 얻은 깨달음. …… 10여 년 전 나는, 남의 개인정보를 입력해 팔아먹는 집단에 일조했었구나. ……

땡땡고등학교 동문들께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 아뢴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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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8 15:05 2009/01/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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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섭에게 바퀴벌레가 있었다면 내겐 '다리마니 벌레(이건 내가 부르는 이름이고, 정식 이름은 '집그리마'라고 한다)'가 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나타나는 이 벌레를, 처음에는 소스라치면서 약으로 잡았다가, 혐오스런 모습(그것도 누구의 눈으로 본 '혐오'란 말인가!) 말고는 별다른 해도 없다기에 웬만하면, 그러니까 내 영역을 많이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보아 넘기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다리마니 벌레란:
세○코 게시판에 가서 찾아보니(질문이 재미없어서인지, 답변이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은 듯하다), 원래 한국에는 없던 벌레로, 전후 미국에서 들여온 짐에 숨어 들어온 것들이 이렇게 번창한 것 같다고 한다. 당시 미국에서 물품을 공수해 올 만한 집이면 당연히 좀 있이 사는 집이었을 테고, '돈벌레'라는 별칭은 그렇게 붙은 게 아닌가 싶다고. 백과사전을 뒤져보면,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따뜻하고 음식찌꺼기(혹은 잔 벌레들)가 있는 집구석으로 모여든다는데, 우리 집에는 사시사철 상주한다.

아무튼, 요 녀석들이 겨울 들어 안 보인다 싶었다. 벌레마저 못 사는 환경이 되었단 말인가 자책(응?)하던 무렵, 침대 옆쪽 벽과 바닥장판 사이로 벌어진 틈에서 나는 그 녀석의 무수한 다리 끝을 보아버렸다. 벌레 한 마리 숨어들기 딱 좋은 공간이 거기 있었는데, 녀석은 거기서 겨울을 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너도 살아야지. 거기서나마 겨울을 나렴. 그렇게 우리의 공식적인 동거가 시작되었다.

외로워서 '그'와의 동거를 결정한 건 아니었다. 내게 외로움은 익숙하고 편한 것이다. 다만 나는 점점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벌레마저 아낄 만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단지 나와 생김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를 뿐, 내게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집 계약서에 내 도장 찍었으니 너희 집은 아니라고 얘기할 권리가 내게 있을까 하는 의문.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왜 살면 살수록 어렵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지.

다리마니 벌레는 보통 내가 없을 때 집안을 누비다가 문을 열고 불을 켜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는데, 이 녀석은 내 눈을 거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늘 그 자리에 딱 그만큼만 다리를 내놓고 있는 녀석이 뭘 먹고 사는지, 밖으로, 그러니까 내 방으로 나오기는 하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도 없고 CCTV도 없으니 궁금함은 궁금함으로 놔둘밖에. 그저 나는 밤마다 슬쩍 한 번 쳐다보고 오늘도 안녕? 뭘 좀 먹긴 했니? 바나나껍질 안 치우고 놔뒀는데 먹은 거야? 아니면 방바닥에 떨어진 살비듬으로 한 끼 때웠니? 혼자서 웅얼웅얼.

여기서 다시 잠깐, 그 녀석이 우렁각시라는 설에 대해: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집안이 조금씩 더 지저분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다른 종류의 우렁각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더라.

그런데 오늘,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와 불을 켜니 아니 이런, 그 녀석이 다른 쪽 벽을 타고 있는 게 아닌가. 다리가 좀 더 늘어진 모습을 보고 장판 사이 거주자가 아닌 걸 알았어야 했는데, 다른 녀석이 있을 리 없다는 막연한 고집(은 역시 위험하다-), 멀리서 입으로 후후 불어도 좀체 움직이려 하지 않는 대담함(그건 다리마니 벌레의 천성이 아니라구!), 심지어 벽을 툭툭 쳐도 끄떡 않는 배짱은 결국 오랜만에 레○드를 손에 들게 하였다. 계약을 어긴 건 너라구. 내가 있을 땐 장판에서 안 나오기로 했잖아. 취익~ 췩~

다리마니 벌레든 바퀴벌레든, 벌레를 죽일 때는 레○드를 익사할 정도로 흠뻑 뿌린다. 바퀴벌레는 얼른 죽여 없애고 싶어서. 다리마니 벌레는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단축시켜 주기 위해서. 물론 죽는 모습을 직면할 수는 없으니 실눈은 필수.

벽지를 흠뻑 적신 레○드를 맞고 땅에 떨어진 녀석을 보고서야 혹시 장판 거주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장판 사이를 힐끗 보니 아뿔싸. 변함없이 아주 조금 드러나 있는 다리들. …… 우리는 여기까지라는 걸,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 동료를 죽였다고 밤에 나를 물어버릴지도 몰라. 혹시 좀 전에 그 녀석이랑 응응해서 알이라도 깐 거 아냐? 그럼 집은 다리마니 벌레들의 천국? 으아악.

취익~ 췩~
그냥 거기서 생을 마감했으면 좋으련만, 장판 사이에 뿌리니 참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것이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 얼른 가렴. 취익~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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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7 21:47 2009/01/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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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가치

구랍(난 이 말이 왠지 있어 보이더라~) 31일이었다. 한해 마지막 날이라 평소 다니던 시간에 학원(20:00~21:40)을 가면 돌아오는 길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른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 낮 열두 시 수업이 있었던 기억이 나서 확인차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 선생님 수업 몇 시에 있나요?"
"원래 몇 시 타임이신데요?"
"여덟 시요."
"네 시, 여섯 시에 수업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열두 시 수업은 없구나 싶어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네 시에 학원에 가보니 어라? 그 시간엔 수업이 없다는 거다. 강의실 가다 마주친, 전에 수업 들었던 선생님이 그러기에 로비로 내려와 시간표와 강의실을 아무리 뒤져봐도 땡땡땡 선생님의 강의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땡땡땡한 경우가 있나. 격분하여 월말이라 강의접수로 바쁜 안내 데스크로 쫓아갔다.
열두 시에 오려고 했는데 수업 없다고 해서 네 시에 왔는데 네 시에 수업이 없다니, 이런 땡땡땡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전화 받은 직원 불러 와라. 직원 못 찾겠으면 매니저 불러와라. 억울해서 그냥은 못 간다. 옥신각신하고 있으려니까 옆자리 직원이 다가온다. 좀 더 높은 급인 모양. 여차저차, 두 번 엿먹인 거나 마찬가지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직원, 얼굴이 빨개져서 이해하겠다, 그럼 자기네가 뭘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냐 한다.

막힌 건 거기서부터였다. 책임자에게 내 울분을 토해낼 생각은 했지만 그걸로 뭔가를 받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럴 땐 대체 어떡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직원을 데려와라,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겠다 해서 잠시 뒤 만나게 된 직원은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다른 달 시간표와 착각했었노라며.

이제 두 얼굴이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고 묻고 있었다. 머릿속을 지나는 생각들. 어차피 여섯 시 수업까지 이 근처에 있어야 하니까 커피나 한 잔 사라고 해? 아니지, 이건 1회분 강의를 못 듣는 셈이니까 1/10 환불을 요구해? 아니 그렇다고 아예 수업을 못 듣게 된 건 아닌데 그건 너무 이상하잖아? 그렇지만 애먼 내 시간과 하루 스케줄이 엉망진창 돼버린 걸. 이건 한 달 수강료 무료로도 보상할 수 없는 거 아냐? 내 월급을 시급으로 쪼개서 놓쳐버린 100분(혹은 200분) 동안 일했더라면 벌 수 있었을 돈을 물어내라고 해? 나 월급 얼마 안 되잖아? 등등등.

결국 나는 직원의 눈을 마주치며, 주의를 주겠다는 말을 믿을 수 없어 직접 얼굴 보고 확인하겠다는 마음에 보고자 했던 것이라며, 앞으로 그런 실수 없길 바란다는 말을 또박또박 일러두었다. 봉변에서 벗어나게 된 두 직원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내 고민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내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가치는 얼마일까. 시간은 어떻게 돈으로 환산되는 것일까. 돈, 으로밖에 환산이 안 되는 걸까. 시간, 으로도 보상이 가능하다면 나는 그 허우대 멀쩡한 직원에게 데이트라도 신청했었어야 하는 걸까. 참 어려운 문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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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5 23:11 2009/01/0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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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국내에선 우에노 치즈코 하면 <내셔널리즘과 젠더> 아니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떠올리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은 우에노 치즈꼬? 그기 머꼬? 할 테지만. 그래서 이 책을 기꺼이 구입하여 읽은 사람은 두 부류일 것이다. 우에노 치즈코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에 내용도 안 보고 냉큼 산 여성주의자(젠장, 나다;),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이라는, 출판사에서(만) 흡족해 할 만한 제목을 보고 망설이다 고른 독신자. 뭐, 짝지와 살고 있는 사람도 일부 있긴 하겠다. 출판사로서는 아마 후자에 방점을 찍고 출간을 결심했을 터이다. 그러니 표지에 '우에노 치즈코(동경대학교 대학원 교수) 지음' 이렇게 박아놓았겠지. 하하.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든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 필자의 의도와는 달리, 이 책은 소수 여성의 미래만 밝혀주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아름답게, 혹은 존엄하게 늙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은 감상은 지은이가 스스로 한 말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나의 아버지는 의사였는데 당신이 이미 손 쓸 수 없는 말기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동요하길 반복했다. 조금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일 것이다.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친구나 지인으로부터 비슷한 경험에 대해 질릴 정도로 많이 들었으나 훌륭한 사람의 훌륭한 죽는 법 같은 것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도 있기야 있을 테지." 하는 느낌뿐이다(115쪽).

그래, 그런 사람들도 있기야 있기야 있을 테지. 그러나 이 책처럼 훌륭한 싱글의 훌륭한 늙어 죽기 같은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느낌뿐. 먼저 '화려한 싱글'인 내 경우를 보자. '화려한'이라는 수식어에서부터 쓴웃음이 난다. 나는 고학력 독신자(소위 '결혼적령기'도 한참 전에 넘겼다)이지만 '골드미스'와는 너무나 먼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벌이가 적어 당장의 주거문제조차(주거문제씩이나!) 해결할 수 없고, 벌이가 는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한마디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혼자 늙어가다 거동이 불편해지면 남의 도움도 받을 만큼 자금을 마련해 놓기에는 미래가 참으로 불투명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꾀죄죄한 싱글'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집 한 채 정도는 갖고 있는 늘그막을 전제하고, 생전에 벌었던 돈은 다 쓰고 가라고 조언하는 게 '자연스럽'다.

수도권 주택공급이 과잉상태에 이르게 된 오늘날, 싱글이라고 해서 대출을 거절당하거나 집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식으로는 은행도 더 이상 영업을 유지해나갈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부양가족이 없는 3, 40대 돈 많은 싱글 남성은 디자이너스 맨션(입주자가 원하는 대로 집 구조를 설계해주는 아파트)의 좋은 고객이다(59쪽).

주택을 스스로의 힘으로 손에 넣지 못한 경우에도 저출산 덕택에 부모의 부동산이 굴러들어올 확률이 높아졌다. 시골에 있는 땅 같은 것 받아봤자 얼마나 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임대를 하거나 처분한다면 그것도 무시 못 할 돈이 된다(60쪽).

늙어 혼자 살 집은 원룸이면 OK라고 하는 꼭지인데, 어떻게든 그 정도 돈은 마련할 수 있을 거라는 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어쩌나. 5, 60 넘어서까지 하루하루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하는 여성, 부모에게 물려받을 것 없는 수준을 넘어 오히려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여성들은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늙어 혼자가 되기 전까지 돈을 모을 수 있는지 언질이라도 주면 좋으련만! 이 저명 사회학자는 비슷한 부류(최소한 경제적 조건)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고 계신 것이 아닌지.

그럼 저학력이지만 소위 중산층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춘 내 어머니가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 어머니는 우선 툭툭 튀어나오는 영어에 깜짝 깜짝 놀라실 것이다. 데이터? 석세스풀 에이징? 싱글의 라이프스타일? 데이케어센터? 커뮤니케이션? 얼마든지 더 찾아낼 수 있다. 결국 어머니는 읽은 둥 마는 둥 구석에 꽂아두거나, 나한테 도로 돌려주시거나(책이라곤 일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읽으신 당신께서 직접 이 책을 서점에 가서 살 일은 결코 없으니까), 짠짠. 그러니 '번역된 원고를 같이 읽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옮긴이의 어머니는 최소한 고졸은 되시겠다. 혹시 아니라면 그동안 시대와 자식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하셨겠군요. 콩그레츄레이션즈~! 이 책의 독자가 되실 수 있겠어요. 우리 어머니 걱정은 마세요. 당신 혼자 먹고 사실 돈은 있거든요.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하기 위해 필요한 걸 딱 두 개로 요약하자면 돈, 그리고 '혼자 늙어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일 텐데, 일단 전자는 해결되었으니 후자는 좀 더 어머니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찾아보도록 할게요. 이런 책이 아니라 (불교)경전에서 더 큰 도움을 받으실 것 같긴 하지만요.

글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생뚱맞은 7장에 대해서도 언급해야겠다. 원서는 6장까지였었나 본데 한국어판을 내면서 한국 사람에게 한국 실정에 맞는 글을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7장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서 가정 내에서 노인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 자녀들도 예전과 달라 더 이상 부모를 모시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정말 맥락 없이 싱글여성들이 아직도 결혼을 꿈꾼다는 얘기가 나왔다가, 실버타운은 할머니들이 더 잘 적응한다더라는 얘기를 거쳐 결국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며느리를 대신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국은 간병이 필요한 고령자는 고령자 중 12% 정도인데, 실제 정부에서 혜택을 줄 수 있는 규모는 3% 정도이기 때문에 나머지 9%는 결국 지금처럼 가족이 책임지거나 홀로 방치되는 상황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보험 수급 규모가 작기 때문에 관련분야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민간기업의 참여가 적어 서비스의 질적인 부분의 개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제공자가 경쟁을 통해 이용자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와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이용자 및 이용자 가족들도 그 전의 복지 차원보다 한층 향상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243-244쪽).

아직은 이렇게 부족하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과 함께하는 장밋빛 미래. 알흠답도다. 그런데 음, 정말 정말 정말?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장기요양보험 시행 3개월을 맞아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는 요양사를 정말 '며느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요양'업무가 아니라 '가사'업무를 시키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민간기업의 참여로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이 발생하면서, 본인부담금을 사측이 부담해가면서까지 수급자를 유치하려는 출혈경쟁 또한 지적되었다. 그러나 그 같은 모니터링 결과를 앞에 두고도 정부 관계자는 문제없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태도로 일관해서 참가자들의 공분을 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노인장기요양보험을 두고 한국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노후대책의 결정체인 양,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과연 적당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글쓴이의 이름도 낯설어 책날개를 보니 '실버산업 컨설팅' 회사의 대표라고 한다. 흠,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참여하려는 민간기업 컨설팅도 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아니 출판사는, 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단체활동가나 기자 등등,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다 늙어 죽는 얘기를 써줄 사람 찾기가 그렇게 어려워서 기업체 대표에게 글을 맡긴 것인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7장이다.

뭐 어쨌거나, 대부분의 여성이 결국 혼자가 되어 늙을 거라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통계적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 떠들어온 것처럼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있는, 고학력에 노후가 두려운 여성만 이 책을 기꺼이 사서 읽길 권한다. 돈은 있으니 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에이, 돈 버렸네' 하고 말 수 있을 거고, 책이 마음에 든다면 친구 만들기, 노후를 보낼 궁리하기 등등을 계획하거나 실천해 옮겨볼 수 있을 것이다. 아참참, '옮긴이는 젊은(혹은 어린) 남성이랍니다'는 티를 팍팍 풍기는 문체와 '횟수'와 '회수', '이러할진대'와 '이러할 진데'도 구분 못한 교정교열을 감당할 수 있다면 말이다.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
우에노 치즈코 지음 / 나일등 옮김 / 이완정 감수 / 이덴슬리벨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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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04 14:36 2009/01/04 14:36

요이~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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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6 19:07 2008/12/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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