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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나한테 왜 이래

오랜만에 컴퓨터를 밀고 블로그에 들어왔다. 더 미루면 정말 까먹을 것 같아서. 10년 전 터키 여행기도 그렇게 날려먹은 게 생각나서. 그런데... 분명 9월에, 다음 포스트(여행기)를 써서 USB 메모리에 저장해 두었는데 지금 보니 없다... 기운이 빠져 그 얘길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다음 얘기도 할 기운이 없다.


잡담 2. 올 겨울 최대의 수확 (부제: 생강차의 비밀)

2~3년 전에 생강을 설탕에 재 두었다. 그냥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뭔가 생강의 깊은 맛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 같아 올 겨울엔 큰 냄비에 생강청과 물을 넣고 팔팔 끓인 후 마셨다.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것보다야 낫지만 여전히 성에 안 찬다. 그러다 한살림에 장 보러 갔다 생강차 파는 것을 보고 성분을 확인. (참고로 한살림 생강차는 별로 달지 않고 생강의 화~ 한 맛이 잘 느껴진다는 평이 있다.) 응? 생강가루가 좀 들어갔네? 집에 돌아와 속는 셈 치고 마침 시골에서 얻어온 생강가루를 몇 번 탈탈 털어 넣었다. 그래, 이 맛이야!


잡담 3. 아이 갓 럭키

1월 7일. 스타벅스 '럭키 백' 파는 날. (럭키 백이란, 지난 시즌에 팔다 팔다 못 판 텀블러나 머그 같은 것들을 세트로 구성해서 무료음료권과 함께 파는 것. 사기 전엔 구성품을 확인할 수 없고, 대략 10만 원 안팎의 커피 관련 용품들이 들어 있다.) 재작년엔 살까 말까 고민하다 넘겼다. 작년엔 다음 날인가 다다음 날인가 여유롭게 갔다가 당일 매진 되었다는 얘길 듣고 헉; 올해도 어김 없이 날아온 예고 메일을 보고 사러 갈까 말까 고민하다 사 보기로 결정. 스테인리스 텀블러도 두 개나 있고, 플라스틱 텀블러도 있고 머그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면서! 심지어 백수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45,000원을 쓰겠노라 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여섯 시가 좀 넘었다.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하다 7시 정각에 집 근처 매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장사진이;;; 헐;;; 배급량은 13개라는데 줄 선 사람은 그보다 많다. 내 앞에서 끊길 게 확실. 헐레벌떡 8시부터 문을 여는 근처 다른 매장으로 갔다. 문도 안 열린 가게 앞에 다섯 명이 줄을 서 있다. 앞에 선 언니에게  "럭키 백 줄 서신 거죠?" 했더니, "네. 그런데... 다섯 개밖에 없대요." 쿠당. 이쯤 되면 오기인지 성질인지가 생긴다. 우쒸, 차 가지고 다니면서 이 지역 매장을 다 훑어버리겠어! 주차장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근처에 매장이 어디 있더라... 땡땡 오피스텔 지하에 하나 있고 저쪽 지하철역 근처에도 새로 하나 생겼다고 하고, 아 거긴 주차하기가 좀 거시기한데... 하다가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매장에서 떨어져 있는 주차장에 감사를;) 근처 매장이 이런 상황이면 다른 매장도 십중팔구 마찬가지일 거야, 당장 쓸 컵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밑창 다 떨어진 운동화도 못 바꾸고 있으면서 이게 지금 뭐 하는 짓? ... 그리하여 찬바람에 정신 든 쥔장은 손 호호 불면서 곱게 집으로 다시 올라왔다는 얘기. 아메리카노라도 한 잔 사 마실까 하다 집에서 냉동실 묵은(;) 원두 꺼내 드립해 마셨다는 얘기. 그래도 성과라면, 작은 행운을 잡으면 늘 '이게 내 행운의 최대치가 아닐까'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오늘 럭키 백을 놓침으로써 뭔가 더 큰 행운이 나를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 괜찮아. 내 럭키 백은 아직 개봉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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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7 10:49 2014/01/0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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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모르겠고, 이 글을 보니 생각 난 얘기 하나.

자랐던 고장에는 4층 규모의 제법 큰 서점이 있었다. 지금의 교보문고처럼, 원한다면 책 한 권을 서서 다 읽을 수도 있는. 틈 나면 거기 가서 노는 게 일이었던 이 고딩은 어느 날 뭐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 책장을 훑다 웬 문고판 시리즈 앞에 당도하게 된다. 하얀색 바탕에 파란색 무늬가 들어간 표지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식의 문고판은 중학교 때 이미 많이 읽었더랬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니, 인간의 굴레니, 제인 에어니... 뭐 그런 것들이겠거니.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 고전들보다 더 구미가 당겼다. 오호라, 이런 책을 왜 이제껏 몰랐을꼬. 그렇게 새로운 종류의 전래동화를 기대하며 펼쳐 들었다가 5분도 못 되어 화들짝 덮었던 그 책의 이름은 "맥스웰의 도깨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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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4 22:59 2013/10/2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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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스 카드 잔액이 0원이 되었다. 휴게소에서만 충전할 수 있는 줄 알았더니, 은행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고 해서 ATM기에 갔다. 처음(그러니까 며칠 전)에는 해당시간이 아니라고 나를 밀어내더니, 오늘(금요일)은 통신이상이라고 내 돈을 안 받아준다. 별수 없이 창구로 가서 내 카드를 보여주었다. 이참에 그냥 자동충전을 신청하자 싶어 자동충전을 설정해 주시되, 새로 카드를 발급 받지 않고 지금 보유한 카드와 연계가 가능하면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내가 갖고 있던 카드에도 분명 자동충전이 가능한 카드라고 쓰여 있었으니까. 새 카드를 발급 받아야 한다면 굳이 자동충전 카드를 쓸 생각은 없었다. 괜히 지구에 쓰잘 데 없는 플라스틱을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으니까.

어리바리한 직원은(입사 1년이 안 돼 보이는 이 직원은, 이상하게 내가 이 은행에 갈 때마다 내게 배정이 되는데, 만족스럽게 일을 처리한 적이 없다) 버벅대다 몇 가지 바보스런 질문(차가 1종이냐 2종이냐-면허 얘기 아님-고 묻질 않나, 기껏 경차라고 얘기해 줬더니 '승합차'라고 하질 않나-승합차는 봉고차예요-)을 던진 후 아무렇지 않게 새 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으이구... 기존 카드에 연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냐 하니 그제야 여기 저기 클릭해 본다. 에효,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쩔 것인가. 됐다고, 놔두라 하니 꼭 이 카드를 쓰셔야 하는 이유가 있냔다.

"쓰레기 생기니까 그러죠."
"아, 제가 대신 버려 드릴까요?"

헐... "쓰레기가 생긴다는 말이 제 손으로 버리기 싫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한 마디 남기고 카드를 다시 받아왔다.

저렇게 일 못하는 사람도 정규직에 나보다 월급 많이 받고(지금은 누구든 나보다 월급 많이 받는 사람; 나는 백수이므로;) 일하는데 나는 이게 뭐냐고 그분에게 투덜거렸다. 한편으론, 하루에도 무수한 쓰레기를 생산하는 주제에 특정 상황에만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닌가 살짝 반성도 했지만. 또 한편으론, 이나마 신경 쓰니 그나마 지구의 쓰레기가 주는 거라는 생각도. 근데 그러고 보니 오천 원이나 주고 샀는데 카드값은 환불도 안 해준다. 우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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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1 10:30 2013/10/2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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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던 아버지는 밥을 할 줄 안다. 어릴 적 주말이면 잘게 썬 삼겹살과 콩나물, 김치를 넣어 볶은 밥을 특식이라며 내어놓는 것도 좋아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삼겹살 못 먹는 나는 질색팔색 했지만. 그러나 그 외에는 손 하나 까딱할 줄 모르는, 별 놀랍지도 않은 그 시절 아저씨였다. (지금 세상에서는 까무러칠 일이지만) 어린 내게 늘 담배 심부름을,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재떨이 대령을,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서 방에 있는 내게 물 심부름을 시키는. 그래도 엄마 편찮으셨을 땐 (내가 밥 할 만큼 큰 이후에도) 더러 밥을 안치기도 한 걸 보면, 영 몹쓸(!) 가부장은 아니었지 싶다.

당신 밥상에 숟가락 하나 안 놓던 아버지가 바뀐 건 퇴직 이후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자식들 다 키워놓고 상대적으로 활동이 많아진 엄마는 끼니 때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별수 없이 아버지는 당신 진지를 스스로 차려 잡수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오실 때까지 굶어버리거나, 끼니 때 꼭 맞춰 집에 돌아오라고 윽박지르지 않은 걸로 봐선 역시 영 몹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전화하면 가끔 혼자 식사 중이라며 툴툴대시지만, 정작 당신도 어머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실 때면 일주일 넘게도 혼자 삼시 세 끼를 해 드시는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런 양반이 아니었는데;

그런 아버지도 집에 다른 사람, 아니 내가 있으면 달라진다. 밥 차리기는커녕 식탁에 앉아 밥 차려라, 숟가락 놔라, 무슨 무슨 반찬 꺼내라... 잔소리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설거지는 무슨, 당신 식사 끝내자마자 빈 그릇 그대로 두고 상에서 일어나신다. 이건 딱 내가 어릴 때 날마다 보았던 광경이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는 그 행위를 통해 여전히 당신이 '집안의 가장'임을 주지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고 짠해 군말 않고 치워 드린다.

(그러나 당신 닮아 성질 고약한 딸내미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국 뜨고 있는데 빈 그릇 하나 가져오라 해서 조용히 "한 번에 한 가지만 시키셔 --;" 하고, 제상에 올린 음식들 쉬니까 갈무리 좀 해 놓으라고, 그런 건 '여자가' 미리 미리 알아서 해 놔야지 뭐 하냐시기에 심드렁하게 "내 살림인가, 아부지 살림이지" 해 버렸다.)

역시 음식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추석. 그리고 이것은 당신 빈 밥그릇 안 치워도 좋으니 건강만 하게 해 주세요, 할 날이 머잖은 '여성주의자 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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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1:06 2013/09/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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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 페루
* 지역: 완차코(Trujillo)
* 숙소이름: NAYLAMP
* 위치: 완차코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대로변에 있음
* 방 종류: 싱글
* 가격: 35솔
* 아침포함 여부: 불포함 (별도판매, 6솔~)
* 부엌사용: 미확인
* 와이파이: 가능 (1층 입구와 가까운 쪽 방이어서였는지 방에서도 됐음)
* 장점
  - 론리에 나옴. 대로변에 있어 찾기도 쉬움
  - 방안에 가만 있어도 파도소리 엄청 잘 들림
  - 수압 약간 낮으나 따뜻한 물 잘 나오는 편
* 단점
  - 1층은 방에 볕 안 듦. 2층 방값은 더 비쌈
* 기타
  - 이틀 묵으면서 6솔짜리 아침(버섯 오믈렛+토스트) 한 번 사먹음. 오믈렛은 짜고 토스트는 탔지만 시장이 반찬.

트루히요의 숙소는 대체로 가격에 비해 질이 떨어지고 도심이라 시끄럽다는 평이라 대개 완차코에 숙소를 잡는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완차코는 서핑해안이라 서핑교습을 해 주는 게스트하우스도 좀 있습니다. 관광지라 물가는 대체로 비싼 편이지만 더 싼 (도미토리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습니다. 제가 묵었던 데는 도미토리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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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13:10 2013/09/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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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차코(Huanchaco) 찾아 삼만리

동이 틀까 말까 한 아침 일곱 시 반. 트루히요에 도착했다. 웬 블로거의 여행기를 보니 아침에 도착해서 바로 완차코(Huanchaco) 해안 구경을 하고 찬찬(Chan Chan) 일일투어를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그 일정에 따르기로 한다. 숙소는 완차코에 잡아야지.

터미널 맞은편에, 한국 거랑 비슷하게 생긴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Linea 터미널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본 Linea 터미널>

한국의 마을버스 내지는 봉고차 크기의 버스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안내원(나 어릴 때는 대부분 '안내양'이었는데 여기는 대개 젊은 '안내군'들이다)들이 제각기 목적지를 외친다. (물론 못 알아들었다. 한국 마트나 시장에서 호객하는 소리도 잘 못 알아듣는 판에;) 그 많은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완차꼬?" 했지만 다들 안 간단다. 한 20분 그러고 있자 과연 여기가 버스정류장이 맞는지, 완차코 가는 버스가 여기 서기는 하는지, 아니 대체 완차코 가는 버스가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워졌다. 그러나 이른 아침,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지라 물어볼 데도 없고, 바쁜 버스 안내원들을 붙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까 '바쁘다'는 의미는 이렇다. 봉고차 버스의 안내원은 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문을 열고 내린다. 물론 여전히 달리고 있는 차에서. 열심히 모객을 한 다음 출발하는 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승객에게 빨리 빨리, 를 외치며 타고 내리는 걸 돕는다. 순전히 차를 더 일찍 출발하게 하기 위해서. 마을버스 크기의 버스는 앞문이고 뒷문이고 문을 닫지 않는다. 승객으로 만원이 되었을 때조차.)

버스만 믿고 온 터라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일단 벤치에 앉아 정신을 좀 수습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길 5분? 웬 중년여성이 정류장으로 온다. 짐을 보아하니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모양이다. 손짓 발짓 섞어 완차코 가는 버스가 여기 서냐 하니 그렇단다. 아이고 감사 감사. 그런데 얼마예요? 하면서 손으로 돈 모양을 그렸더니 이 아주머니 손사래를 친다. 응? 버스비 얼마냐는 거였는데 돈 좀 달라는 소리로 알아들으셨나 보다. 다시 한 번 물었더니 이번엔 통했다. 운 씬꾸엔따(1.5솔). 한국 돈으로 700원쯤 되려나?

그러고 있으려니 빨갛고 노란 페인트칠이 되어 있는 버스가 한 대가 온다. 드디어 완차코 가는 버스. 이 버스가 그 버스라고 알려주신 아주머니도 함께 탔다. 나중에 보니 버스에 대문짝만 하게 Huanchaco라 쓰여 있다. (론리에도 버스안내가 되어 있더라. 췌.)

완차코 가는 버스
<완차코행 버스>

삼사십 분 열심히 달리다 보니 바다가 보인다. 좀 아까의 아주머니가 내리면서 "난 내린단다. 넌 좀 더 가야해." 해 주신다. 고맙습니다. 그때부터 긴장하고 밖을 바라봤지만 완차코가 어디인지는 오리무중. 버스가 설 때마다 여기서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내리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정류장에서 기사와 안내원이 이구동성으로 여기니까 내리라고 얘기해 주었다. 우왕, 고마워요. 버스가 떠나는데 기사와 안내원 모두 손을 흔든다. 무뚝뚝한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마주 인사하며 활짝 웃어 주었다.

그리고 완차코.
내려서 본 풍광은 이러했다.

완차코 해변
<완차코 해안>

완차코 해변은 현지인들도 많이 놀러오는 곳이라 일과시간에는 사람이 없을 때가 없는데 이렇게 이른 아침에 가면 태평양과 독대할 수 있다. 이런 곳인 줄은 몰랐는데, 여기 참, 좋다. 그런데 사진으로 봐선 여느 바다랑 다를 게 없네;

해변을 쭉 걸어 올라가 숙소를 잡았다. 론리에 소개된 NAYLAMP다. 1인실에서 샤워도 하고 속옷도 빨았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포스트도 남겼다. 허기지고 체력도 달려 일일투어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밥을 먹고, 트루히요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세비체(Ceviche)와 잉카콜라

빅벤(Big Ben)이라는 식당은 세비체(Ceviche)로 유명하다고, 론리님께서 말씀하셨다. 세비체는 익히지 않은 생선살을 라임즙에 담뿍 절인 것을 기본으로, 다른 것을 위에 얹거나 섞거나 하는 페루 음식이다. 그런데 나는 회를 못 먹는다. 날것의 느물느물한 감촉을 견디지 못해서다. 그리고 신 것도 못 먹는다. 남들이 별로 안 시다고 하는 과일도 못 먹을 정도다. 그래서 가기 전부터 먹을 수 있을지 적이 걱정되었다. 그래도 페루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인데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는가. 단백질(생선살)은 산(酸)과 만나면 응고되니까, 감촉이 일반 회랑 좀 다를 수도 있다는 데 희망을 가졌다.

가격대는 좀 되지만, 이왕 먹어볼 거면 제대로 된 데서 제대로 된 메뉴를 맛봐야 한다는 생각에 빅벤으로. (참고로 빅벤에서는 점심식사만 가능함. 열한 시 반에 열고 다섯 시 반에 닫음)

빅벤에서 바라본 완차코 해변
<빅벤에서 바라본 완차코 해변>

마실 것은 잉카콜라. 페루인들이 코카콜라보다 더 많이 마시는 음료라고 하는데, 코카콜라사에 인수되었다나. 익숙한 불량식품의 맛이다. 합성착향료와 색소가 듬뿍 들어 있다.

잉카콜라와 볶은 옥수수
<잉카콜라와 볶은 옥수수>

그리고 세비체는 역시, 나를 위한 음식은 아니었다. 생선살은 겉이 아주 약간 응고되었지만 특유의 살성은 여전했고, 그 신맛은 내 이까지 녹여버릴 듯, 좀 있으니 잇몸까지 아렸다. 하루 넘게 굶다시피 했고, 그 가격을 생각하자면 어떻게든 다 먹어치웠어야 했으나 결국 1/3도 못 먹고 내가 졌소를 읊조리고 도망 나왔다. 남은 접시를 보고 좌절할 주방장이나 웨이터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에요, 제 입맛이 문제예요,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스페인어가 안 되니 도망 칠 수밖에. 30분 만에 2만 원을 날렸지만, 계산할 때 기념으로 준 열쇠고리 가격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굶어 쓰러지진 않을 테니 트루히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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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6 12:55 2013/09/1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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