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자취를 했던 아버지는 밥을 할 줄 안다. 어릴 적 주말이면 잘게 썬 삼겹살과 콩나물, 김치를 넣어 볶은 밥을 특식이라며 내어놓는 것도 좋아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삼겹살 못 먹는 나는 질색팔색 했지만. 그러나 그 외에는 손 하나 까딱할 줄 모르는, 별 놀랍지도 않은 그 시절 아저씨였다. (지금 세상에서는 까무러칠 일이지만) 어린 내게 늘 담배 심부름을,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재떨이 대령을, 텔레비전 앞에 있으면서 방에 있는 내게 물 심부름을 시키는. 그래도 엄마 편찮으셨을 땐 (내가 밥 할 만큼 큰 이후에도) 더러 밥을 안치기도 한 걸 보면, 영 몹쓸(!) 가부장은 아니었지 싶다.

당신 밥상에 숟가락 하나 안 놓던 아버지가 바뀐 건 퇴직 이후다. 많은 남자들이 그렇듯. 자식들 다 키워놓고 상대적으로 활동이 많아진 엄마는 끼니 때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고, 별수 없이 아버지는 당신 진지를 스스로 차려 잡수시기 시작했다. 엄마가 오실 때까지 굶어버리거나, 끼니 때 꼭 맞춰 집에 돌아오라고 윽박지르지 않은 걸로 봐선 역시 영 몹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전화하면 가끔 혼자 식사 중이라며 툴툴대시지만, 정작 당신도 어머니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실 때면 일주일 넘게도 혼자 삼시 세 끼를 해 드시는 걸 보고 솔직히 많이 놀랐다. 그런 양반이 아니었는데;

그런 아버지도 집에 다른 사람, 아니 내가 있으면 달라진다. 밥 차리기는커녕 식탁에 앉아 밥 차려라, 숟가락 놔라, 무슨 무슨 반찬 꺼내라... 잔소리가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설거지는 무슨, 당신 식사 끝내자마자 빈 그릇 그대로 두고 상에서 일어나신다. 이건 딱 내가 어릴 때 날마다 보았던 광경이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는 그 행위를 통해 여전히 당신이 '집안의 가장'임을 주지시키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고 짠해 군말 않고 치워 드린다.

(그러나 당신 닮아 성질 고약한 딸내미는 딱 거기까지만이다. 국 뜨고 있는데 빈 그릇 하나 가져오라 해서 조용히 "한 번에 한 가지만 시키셔 --;" 하고, 제상에 올린 음식들 쉬니까 갈무리 좀 해 놓으라고, 그런 건 '여자가' 미리 미리 알아서 해 놔야지 뭐 하냐시기에 심드렁하게 "내 살림인가, 아부지 살림이지" 해 버렸다.)

역시 음식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던 추석. 그리고 이것은 당신 빈 밥그릇 안 치워도 좋으니 건강만 하게 해 주세요, 할 날이 머잖은 '여성주의자 딸'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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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3 11:06 2013/09/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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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등장하는 모든 시간대는 쥔장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실제와 다르게 표기되었음)

이번 내 귀향(거기 고'향' 아니잖아!)은 깔끔하게 2박 3일로 예정되었다. 우리 모녀는 만난지 3일째부터는 언제나 싸움 모드에 돌입하기 때문에 연휴가 더 길어도 그보다 오래 있으면 안 된다. 그래 화요일 새벽 부스스 일어나 고속버스 터미널로 낑차낑차. 원래 밤을 새우고 가려고 했으나 새벽 세 시 경 졸음이 쏟아져 결국 두어 시간 자고 기적처럼 일어나 나온 길이다.

원래 나의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출발 20분쯤 전에 터미널에 도착할 테니 며칠 동안 커피다운 커피를 입에 못 댈 내게 아이스 에스프레소 한 잔 쥐어주고 우아한(퍽도;;;) 서울녀의 모습으로 고속버스를 타는 것.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는 다 좋았다. 내가 탈 게이트에 사람들이 삐져나와 안쪽으로까지 줄을 길게 늘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웬일로 사람들이 저렇게 서 있나, 벌써 차가 들어와 있는 건가, 그렇담 이 무거운 짐을 좀 부려두고 커피를 사러 가도 되겠지 하며 밖으로 나온 순간, 오오,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첫 직장 출근길 지하철 밀도를 맞이하게 되었다. 옴짝달짝할 수 없는 공간에서 이게 대체 무슨 사태인가 파악하길 5분 여.

내가 타야 할 차는 7시 50분 출발. 앗 그런데 그 코너에 서서 확성기로 사람을 모으고 있는 차는 7시 20분. 심지어 내가 알기로는 그 사이에 우등고속도 한 대 더 배치되어 있다. 꽥. 이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거구나. 몇 분 여를 더 있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안으로 들어가 커피나 마셔야겠다 싶어 죄송합니다 잠시만요를 연발하며 한 발짝씩 버스와 멀어지던 그 때, 확성기를 든 분이 소리친다. "7시 50분 버스 타실 분 오세요!" 오호. 안 온 사람이 있나 보네. 다시 몸을 틀어 낑차 낑차 차에 접근해 본다. 아 그러나 내 앞에는 그 말을 듣고 이미 버스 앞에 진 친 사람들이 너댓 명. 꽥. 그러나 나는 혼자. 함께 움직여야 하는 이들보다 더 유리하다. 기회는 있다! 아니나 다를까. 5분 여 그러고 있으니 확성기 아저씨 외치신다. "7시 50분! ㅇㅇ으로 바로 가실 분 한 분!" "저요 저요!" 흠화화홧. "승차권 주시고 비어 있는 자리 가서 앉으세요." 얏호. 내 앞에서 과일박스 머리에 이고 있던 가족 대표들께 심심한 위로를. 혼자 사는 사람한테 이 정도는 양보해 주시라요.

내가 타자 버스는 곧 출발했다. 그 때가 이미 7시 50분. 어쨌든 내 입장에선 제 시각에 타서 출발하긴 한 거네, 흐흐. 그런데 문제는 다음. 웬 말쑥한 청년 하나가 버스 문을 마구 두드린다. 기사님, 확성기 아저씨한테 얘기하라는 손짓을 보내지만 막무가내. 쾅쾅쾅 소리에 기사님이 문을 여니 다짜고짜 고성(괴성?)이 튀어나온다. 우짖는 목소리를 종합해 보니, 이 냥반은 7시 20분 차표를 가지고 '방송해준다'는 소리에 이제나 저제나 이 차 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 출발하는 차를 보니 그게 바로 자기가 타야 할 차였고, 그 때문에 이성을 잃은 거. 최소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렸을 모양새다. 그런 귀에 언제 뜰지 모르는 다음 차 태워주겠다는 얘기가 들릴 리 만무하다. 방송해 준다더니(확성기로 7시 20분 승객 한참 찾던데;;;)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내 자리 내놓으라고 고래 고래 소리 지르는 청년을 가뿐히 무시해 주시고 차를 돌리는 기사님. 오오, 그러나 이건 웬 미저리인가. 터미널을 빠져 나오는데 뒤에서 계속 쾅쾅 치는 소리가 들린다. 버스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너무 빠른 데다 소리도 우렁차서 진심, 누가 차에 매달리는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 결국 차량정체로 터미널 입구에 멈춰선 차를 다시 따라잡은 청년. 이제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자리 좀 마련해 줘 버리라며 기사님에게 부탁할 정도. 그러나 이게 무슨 관광버스도 아니고 운전석 옆에 가이드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가 버스는 결국 택시 한 대를 긁고 확성기 아저씨는 청년과 멱살잡이를 하고 뭐 그랬다는 야그. 그 광기어린 눈빛의 청년은 그 후로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야그. 그 괴성만 아니었으면 내 자리를 내어주려고도 했었다는 야그. 그러니까 공공장소에서 웬만하면 고성은 지르지 말자는 야그.

그러구러 한참을 달리다 서다, 부모님 사시는 지역 인근 톨게이트를 지나 제법 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수군수군 하는 소리가 심상찮다. 귀를 쫑긋하고 들어보니 길을 잘못 든 모양. 왜 길을 잘못 드냐고? 명절 때는 고속버스 수요가 너무 많아서 평소 관광버스를 운전하시는 지입차주들과 계약을 맺고 노선을 알려주고 고속버스처럼 운행을 하게 하기 때문이지. 내가 탄 차 역시 땡땡고속과 운송협정을 맺은 땡땡관광버스. 한마디로 기사님이 늘 다니던 길이 아니라는 얘기다. 뭐 아무튼 길눈 어둡고 별 급할 것도 없는 나만 룰루랄라 하고 있는 와중, 드디어 용감한 승객 한 분이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들고 운전석으로 간다. 용감한 그분 덕에 힘을 얻어 그제야 사람들 목소리가 커진다. 길 잘못 든 거 맞지 않냐며 왜 이 길로 왔냐며. 시골 사람들 특유의 큰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다. 기사님은 알려준 길로 왔을 뿐이라며, 길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앞으로 나와 알려 달라 부탁해 보는데, "이미 잘못 들어와서 우리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오! 오기 전에 얘길 했어야지!(아 이건 사투리 원본으로 들어야 제맛인데)" 하는 아저씨 고함에 웃어버리는 건 나뿐.

이왕 이렇게 된 거 계속 가보겠다며 죄송해 하는 기사님이 안쓰러워 부러 좀 큰 목소리로 "네~ 괜찮습니다~" 해 드린다. 다들 잠깐 잊은 것 같은데, 지금 이 운행을 가장 끝내고 싶은 사람은 저 냥반이라구요.

결국 평소 걸리던 시간에서 두 시간 반이 더 걸려 시골 터미널 도착.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정체와 헤맴이다. 예전에 다른 지역으로 갈 때는 11시간인가 걸린 적도 있었는데 뭐. 그 땐 정말 내가 비행기 타고 캐나다를 가지 싶더라만.

뭐, 당일엔 재미나서 한참 떠들었는데 며칠 지나고 보니 생동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그분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로 보고하기 귀찮아서이기도 하고, 독자제위(응?)께 잘 다녀왔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마지막 날 결국 엄마랑 또 한 판 하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잘 있다가 왔다. 밥도 한 끼에 두 그릇씩 먹고.

그나저나 제 블로그 방문해 주시는 몇 안 되는 서울 독자님들, 집들은 다 무사하신가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서울 거리가 조금은 무서웠던 어젯밤, 두근두근 문 따고 들어가 보니 제 집은 다행히 멀쩡하더라구요. 디자인 서울보다 물 잘 빠지는 서울(권재홍 앵커 이럴 땐 참 마음에 들어요)이 얼른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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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4 10:43 2010/09/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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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천둥 번개가 쳤다던 보름밤, 저 아래 남쪽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총총했다. 달빛에 사람 그림자가 지고, 산이 훤히 보이고, 달빛에 가려 별도 몇 개 보이지 않았다. 달이 그렇게 밝은 것인 줄, 밤이면 나를 보고 짖어대는(요 녀석, 신기하게도 낮에 처음 보고는 안 짖더니만 해 지고 나서는 맹렬히 짖어대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보다는 자주 볼 작은아버지를 보고는 낮이건 밤이건 목이 쉬어라 짖어대는 것인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아마도 개 키워다 파는-지금은 모르겠으나 한때 작은 개농장을 하셨음- 사람의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멍멍이(라 하기엔 벌써 다섯 아들의 어미 ㅠ.ㅠ) 환심 좀 사 보려고 새우 껍데기랑 대가리를 주러 나간 길에 처음 알았다.

아, 보름! 절로 손이 모아진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뭐라고 빌어야 하나.

여성주의자로 살기로 마음 먹었을 때 가졌던 그 첫 마음, 잃지 않게 해주세요. 그 마음 그대로, 모든 차별과 권위에 맞설 수 있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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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11:00 2009/10/0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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