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스마트폰 쓰는 인간이 없어서, 아니다, 아이폰 이전에 주위에 인간 자체가 드물어서 전화 앱 아쉬운 줄 모르고 살길 세 달. 한데 아이패드 연락처 기능을 사용하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이버도 써 보지 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앱을 내려받고 인증절차를 거치면 내 패드 연락처와 연동되어 바이버를 설치한 사람들의 목록을 자동으로 보여준다. 므서븐 거뜰.

아무튼, 안 그래도 빈약한 연락처 수에 어울리는 빈약한 리스트 중에 유독 한 이름이 눈에 띈다.

땡땡이는 10여년 전 내게 100만 원을 받아간 이다. 그 때 월급이 두 달이나 안 나왔다며 돈을 좀 융통해 달라는 얘기를 듣고, 나 역시 크게 여유로웠던 것은 아니나 100만 원 정도는 선뜻 내어줄 수 있는 사이였기에 받을 생각 없이, 그저 주었다.

그 후 아주 가끔 나를 만나면 그는 네 돈 갚아야 하는데 갚아야 하는데, 했고, 나는 되었다, 되었다, 했다.

10년, 은 친했던 사이를 원수로 바꿔놓기도, 그 반대로도 만들 수 있는 시간인지라 우리는 점점 뜸하게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고, 다른 이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안부를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처음으로 당혹스러웠던 건, 몇 년 전 그가 차를 샀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을 때였던가.

이제 다시 그가 한 달에 기본 몇 만 원씩 내야하는 아이폰 사용자라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쓸쓸해진다. 난 그 돈을 정말 '준' 게 맞긴 한데, 이 서운한 마음은 대체 뭐란 말이냐. 또 어쩌면 그에게는 차를 반드시 사야만 했던, 아이폰을 반드시 사야만 했던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의 일이나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일지 모르는데.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저런 사정까지 알 만큼 그와 친한 사이가 아니다. 그러니 사람 맘은 참 내 맘 같지 않구나, 해야 할지, 지가 아쉬우니 이제 다른 맘 드는 거냐고, 완전 찌질하다고 나를 꾸짖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니 그저 이렇게 말할 뿐.

땡땡 씨, 10년은 참 긴 세월이로군요...

* 덧붙임
갈피를 잡지 못해 무작정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이제 알겠다. 내가 아쉬워하는 건 100만 원이 아니라 10년 동안 시나브로 사라져버린 우리의 '관계'였구나. 이렇게 인연 하나를 또 정리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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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1/02/24 21:18 2011/02/2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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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댓 달쯤 전, 하나밖에 없는 친구와 더 이상 친구 하지 않기로 했다. 먼저 연락해 온 그니의 문자에 뚱하게 답한 것을 마지막으로, 그도 눈치가 빤한 사람이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다. 워낙 단짝처럼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연락했던 사이는 아니지만, 한두 달 연락이 없어도 믿거라 했던 신뢰는 이미 없어져버렸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표면적으론 그래, 빈부차 같은 거였다. 국산이라고는 하나 고급 승형차에, 전문직 남편을 둔 '사모님'에, 정기적으로 집에 와서 아이 봐 주시는 분까지 있는 그와, 반지하 전셋집에 사는 나와는 너무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랴. 간극이 점점 벌어지긴 했지만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던 차이였다. 물론 고급차나 50평대 아파트, 애보기 아줌마 등은 새롭게 추가된 옵션이긴 했지만, 잘 사는 친구 덕 좀 보겠다는 생각으로 친구로 지냈던 게 아니니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긴가 민가 했던 다른 이유를 오늘, 몇 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시절 아이들(더 이상 '아이들'이라 할 수는 없다만;;;)을 만나고야 알았다. 결혼해서 '가장'이 되어 자식을 낳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구속'인지, 동거하는 애들은 또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는지, '시부모'한테 잘 '못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문제인지 등등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 그에 동조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건 한없는 지루함. 더 어릴 때였더라면, 헛소리 좀 하지 말라는 둥, 너는 얼마나 배우자 부모님한테 잘하냐는 둥, 와이프가 놀다 밤늦게 들어온다고 싸우다니 한심하다는 둥 침 튀기며 싸웠겠지만 지금은 그냥 지루해서 하품만.

지루함.

너(희)의 인생은 이제 '궤도'에 올라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결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통속소설을 읽는 지루함이 느껴져. 나는 아직도 내 남은 생이 두렵고, 가슴 떨리고 벅찬데, 1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는데, 너(희)의 인생은 쇼윈도를 보듯 너무나 선명해서, 더 이상 궁금하지도, 흥미롭지도 않네. 미안. 이미 빤한 얘기를 반복해서 들려줄 사람보다는 나를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

그래. 예전에 '그분'에게, "내 친구라면 다를 줄 알았어요"라고 했던 말의 의미는 이거였던 것 같아. 다를 줄 알았다는 건, 내 친구니까 좀 없이 살아야 하고, 내 친구니까 당연히 여성주의자여야 하고, 내 친구니까 당연히 뭐뭐 해야 하고... 이게 아니라, 내 친구니까, 남들이 정해 놓은 뻔한 공식에 맞춰 살지는 않을 거라고, 최소한 나를 가슴 뛰게는 할 거라고, 그들의 삶도 늘 생동감 넘칠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비록 이렇게 살고 있으나 너의 '본질'은 다르다는 걸 알지 않냐 했던 옛 친구야, 이제 그만 네 삶이, 네 일상이, 너의 '본질'임을 받아들이렴. 평생 드러나지 않는, 드러낼 수도 없는 '본질'을 어떻게 너의 것이라 주장할 수 있겠니. 내가 사랑했던 건, 대기업 빵빵한 연봉을 마다하고 대개가 빈곤한 프리랜서를 선택했던 그 시절의 너, 그 때의 그 '본질'이었나 봐. 미안. 이리 깊이가 얕으니 내 '본질'도 그리 건실하진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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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10/27 21:38 2009/10/27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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