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주가 되어가는 이번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만났다, 아니고 보았다, 이다. 사람은 가능한 한 피해 다녔으니.

이쪽 사람들 중엔 한국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참 많다. 정말 언젠가 우리네 조상이 지구를 뚫고 양쪽에 정착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그래서 덕분에 아버지 닮은 사람부터 심지어 우리 보스 닮은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을 보았다. 그런데 엄마 닮은 사람이랑 그분 닮은 사람은 절대 눈에 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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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6 22:31 2013/08/1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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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용하는 스파게티 가게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메뉴를 보고 주문하는 건 늘 내 몫. 처음 같이 저녁을 먹었을 때는 피자에서 샐러드까지 다 알아서 주문하길래 별 생각 없었는데 얼마 안 가 그렇게 주문하는 걸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메뉴판을 훑는 건 내 차지가 되었다. 머리에 에어컨 바람이 바로 쏘이는 자리라 겉옷을 벗어 머리에 두르고 긴 소매는 턱밑으로 맨다. 장옷 같다고 하하 웃더니 무슬림 여성 같다고 또 하하 웃는다. 지나가던 손님들도 혹 타국 여인인가 싶어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보는 게 느껴지지만 뭐 어떠랴. 두통보다 낫지.

오늘은 좋아하던 간장 소스 스파게티보다 크랩 스파게티를 더 좋아하는 눈치. 이제 좀 질렸나? 다음엔 간장 소스 빼고 다른 걸 시켜봐야겠다. 그렇지만 카프레제 샐러드는 여전히 잘 먹는다. 아유 이뻐라. 뭐냐. 이 엄마 같은 마음은;;;

홑겹 천으로 에어컨 바람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어 슬슬 머리가 아파온다. 손님들도 다 나가 조용해진 김에 좀 더 있었으면 했지만 내가 머리 아프다니 같이 일어선다. 저녁값을 내겠다는 그를 굳이 말리지 않는다. 다음 번엔 이 집에 쌓은 마일리지로 스파게티 한 그릇은 먹을 수 있겠다.

바로 옆 커피 가게로 자리를 옮겨 변함없이 아메리카노 두 잔 진하게 머그에 주세요를 외치고, 스파게티가 좀 부족했던 김에 브라우니도 하나 추가한다. 아싸, 스탬프 다 찍혔으니 다음엔 공짜로 한 잔 마셔야지. 스탬프 다 찍고 공짜로 마시는 커피는 비싼 걸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만 둘 다 단 걸 좋아하지 않아 늘 아메리카노다. 그래 공짜로 마시면서도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든다.

날도 선선하겠다 아예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수다를 떤다. 보통 떠드는 쪽은 나다. 다사다난했던 한 주를 보냈던 지라 해줄 얘기가 많다. 평일 통화는 짧게 끝내면서 "이번 주에 만나면 자세히 얘기해 줄게요" 하는 통에 밀렸던 얘기가 한가득. 짹짹짹짹.

커피도 다 마시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라 산책하자 먼저 말을 꺼낸다. 근처 공원쯤을 생각했는데 한강공원으로 차를 돌린다. 손을 잡고 터덜터덜 하염없이 걷는다. 중간 중간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손 잡는 것도 팔짱 끼는 것도 무척 어색해하더니 이젠 먼저 손도 내밀어 준다.

걷다 보니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재즈 콘서트가 한창이다.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재즈를 즐기는 그를 몰래 훔쳐본다. 쫑알쫑알 하고픈 순간이 많았지만 혹여 음악 감상에 방해가 될까 반으로 줄인다. 그는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친다. 대충 박수 시늉만 내는 나랑은 천지차이. 음악가에게 이렇게 감사 표하는 버릇이 몸에 밴 듯하다. 무대에서 혹시라도 이이를 보면 참 기분 좋겠구나 싶다.

콘서트가 끝나고 무대정리는 어떻게 할까 둘 다 궁금해 하며 근처를 서성이다 쏘세지 쏘세지를 외친 내가 노점에서 한 꼬치 먹을 수 있게 해준다. 한 입 먹고 내미니 맛보아 준다. 손에 머스터드 소스랑 케첩이 묻어 끈적하지만 계속 내 손을 잡고 있다.

별 일 없이 지나간 일 주일에 단 한 번의 만남.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는 오래 된 연인의 데이트. 그러나 당신 손을 잡고 있는 이 순간이, 내게는 여전히 기적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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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18:27 2010/06/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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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장에서 사고를 쳤다. 사고 치는 게 어제 오늘 일이겠냐마는, 이번 건 좀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내 기준으로 보아 넘길 만한 사고도 있었고,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도 있었다. 그런 사고들이 연이어 뻥뻥. 지난 주부터 오늘까지. 더 정확히는 어제까지. 귀찮고 짜증 나서 일일이 쓰지는 못 하겠다만.

그래서 어제, 심각하게 출근하기가 싫었다. 에이 뭐, 나 좋자고 사는 인생, (하는 사람도 지겹고 나도 듣기 지겨운) 싫은 소리 들을 거 뻔한데 그냥 확 날라 버려? 으아악. 당장 입에 풀칠 할 일이 걱정인 것도 아닌데(왜 난 늘 이런 건방진 자세를 견지하는지, 가끔은 나도 의문이다). 정말 출근하기 싫어서 출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아드레날린 수치가 급상승. 맥주를 작은 잔으로 세 잔 정도 먹은 상태(사실 소주 반 잔씩 섞어서 먹었다, 흠흠;)였으니 망정이지, 더 마신 상태였더라면 자칫 실려 갈 뻔했다.

스무 살 이후로, 아니 사실 그 전부터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부모님이 해결해 줄 거라고, 그들에게 기대도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흔히 하듯 "엄마~" 하면서 전화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대신해서 짐을 떠 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 어이 거기, 누구 없어요?

찾아보면 없겠냐마는, 그래도 오늘 출근해서 그 야단을 다 맞고(그것도 두 명에게!),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지 마음먹은 나는,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살아내었다.

2.
약 3주 전부터 유달리 심해진 윗집 아가 공룡들(넷이나 된다. 이해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끔 이 집 엄마가 "조용히 해!" 하는데- 밤에 가만 있으면 윗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 생활소음에 전혀 무방비인 집에 사는지라 애들 혼내는 소리도 다 들린다- 애들이 까르르르 웃으며 도망갈 땐 정말 내가 다 할 말이 없어진다)이 내는 소음을 참을 수가 없을 때면 가끔 '그분' 생각을 한다. 골격 튼실한 '그분'이 2층 가서 한 번 스윽 쳐다보기만 해도 좋이 한 달은 집에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도 생각해 본 적 없을 테고(물론 내가 부탁하면 그리 해 주기는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불경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다.

대신 오늘 저녁 나는, 2, 30분을 참고 있다가 굳게 마음을 먹고 지퍼백에 햅쌀을 2kg쯤 담아 2층으로 올라가 "뇌물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하고 돌아왔다. 5월 말에 처음 그 집에 가서 "이 건물이 층간소음이 유달리 심하거든요. 밤이랑 주말만 좀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한 뒤로 두 번째 걸음이다. 그땐 정말 어젯밤만큼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뇌물'이라는 말에 한껏 경계를 하던 이 집 아줌마는 당장에 눈치를 채고 제일 작은 아이를 가리키며 "아유. 얘가 너무 시끄럽죠~" 한다. 그래도 집에 뭐 갖고 온 사람이라고 "고맙습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꼬맹이한테 뭐라 하겠나. 보아 하니 경우 없는 부부도 아닌 것 같던데(게다가 누가 찾아왔다며 그 집 아저씨부터 꼬맹이 넷이 눈 똥그랗게 뜨고 현관에 보란 듯이 줄줄이 서 있었단 말이다;;;). 그래 "아니에요. 밤에만 조금 주의해 주셔요 ^^" 하고 왔다. 다시 내려온 후 지금까지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우리집(역시 인간관계는 '뇌물'로 좌지우지 되는 거냐).

3.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산다는 건, 이런 것. 그리하여, 조금은 뿌듯하고, 또 조금은 슬픈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런데 이건, 어른이 되는 거냐, 늙어가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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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23:10 2009/11/0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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