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며칠 전, 클렌징 티슈를 사 오라는 명이 하달되었다.

“알쩜! 인터넷으로 주문해 드릴게.”
“인터넷으로 하지 말고 그냥 가게에서 사 와.”
“왜. 인터넷으로 하면 더 싸고 편한데.”
“이런 대목에 인터넷으로 그런 거 시키는 거 아니야. 그럴 거면 사 오지 마.”

알 수 없는 사람 1
초극강의 가족이기주의자인 저분은 가끔 저런 언사로 나를 놀래킨다.
어딘가에 썼던 얘기인 것 같은데 아무튼, 내가 아주 아주 꼬꼬마였을 때 완행 시외버스 타고 시골에 가던 길이었다. 추석이었나 설이었나, 아무튼.
좌석번호 같은 건 따로 없고 앉은 사람 선 사람이 마구 뒤엉켜 있다가 무조건 자리가 나면 앉는 사람이 장땡인 그런 옛날 버스. 네 시간쯤 가야 했을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 복잡한 와중에 누군가 내렸고 나는 재빨리 자리를 맡고 그녀를 불렀다. “엄마! 여기!”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엄마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내 옆에 서 있던 아기 업은 아줌마에게 자리를 내 주었다. 아줌마, 여기 앉아요.
아마 엄마는, 나나 오빠가 아가였을 때 우리를 업고 시외버스를 탔던 그 때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마 아무도 자리 같은 건 양보해 주지 않았겠지.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환갑이 넘은 연세에도 내 배낭조차 못 들게 할 정도로 자식 새끼 끔찍하게 여기는 그 성정에 비추어 보면 대체 어디에 저런 마음이 숨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도 그때 완전 어렸었다니깐?!

알 수 없는 사람 2
그 댁 담당 택배기사님은 더 바쁘더라도 외진 집에 택배 하나 더 배달하고 수수료 받는 걸 선호할까, 아니면 어차피 대목이니 하나쯤 덜 배달하고 10분이라도 일찍 퇴근하는 걸 선호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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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7/01/30 19:41 2017/01/3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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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나. 한 20년 됐나보다. 나는 그 때 아마도 첫사랑을 하고 있었거나 그 사랑을 막 시작하려거나 하던 참이었을 것이다. 그런 내게, 남색 재킷+플레어 치마 교복에 그냥 패딩 점퍼(그것도 흰색 빨간색 회색이 마구 뒤섞인!!!)나 입으라는 건 너무한 일이었다. 나는 꿋꿋하게 재킷만 입고 등하교를 하며 코트 하나만 사 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지만. 대체 그 땐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떼를 썼을까. 지금은 있는 코트도 먼지적체용으로 방치하고 있으면서. 10년 동안 오리털 패딩 하나로 겨울을 났으면서. 하지만 그 때 내 머릿속의 코트는 뭐랄까, 고상하고 우아한 여고생의 이미지와 '우리 집 좀 살아요' 이미지를 동시에 뿜어내는, 아주 멋드러진 아이템이었다.

그제 어제처럼 갑자기 추워진 날, 당연한 일이겠지만 엄마는 부득불 패딩 점퍼를 입혀 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 역시 부득불 입기를 거부하고 쟁쟁거리다(코트 사 줘! 코트 사 줘! 코트 하나만 사 달란 말이야!) 결국 블라우스에 재킷만 입고 등교를 했다. 물론 현관문을 꽝 닫고 나오는 건 필수 옵션. 덕분에 그날 내내 추위에 떨었지만, 그깟 코트 하나 안 사주는 엄마를 생각하면 그깟 추위쯤이야 열로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친구들한테 자랑도 했지 아마. 엄마가 코트 안 사준대서 반항 차원에서 그냥 나왔어. 으쓱 으쓱~

저녁 야자 직전이던가. 엄마가 불쑥 교실로 찾아왔다. 그길로 아무 말 없이 띵띵 부어 있던 나를 번화가 숙녀복 매장으로 데리고 갔다. 그제야 내 얼굴이 좀 펴졌을까. 까만색 트렌치코트 풍 반코트와 칼라가 넓적한 진보라 플레어 반코트가 최종 선정 대상이었다. 까만 코트는 15만 원, 진보라는 16만 원. 그래, 귀여운 진보라가 좋겠어. 그게 내 생애 첫 번째 코트였다.

엄마는 돈을 내지 않았다. 대신 점원이 몇 줄 적어놓은 그 집 공책을 확인하고 뭐라 뭐라 말하고 썼던 것 같다. 신용카드 쓰는 사람이 거의 없던 시절, 엄마는 16만 원짜리 코트를 외상으로 샀고, 한 달에 4만 원씩 그걸 갚아 나가기로 한 거였다. 그리고 잔소리 대마왕이자 오바 대여왕인 엄마로서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날 아침의 반항에 대해 단 한 번도 꾸짖지 않았다.

그 옷을 입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은 얼마나 따뜻했던지. 또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이것 봐! 이젠 나도 '코트'를 입는다구! (역시나 지금 생각하면 어림없는 일이다. 코트 한 벌 입는다고 겨울 추위가 가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스스로 가계를 꾸려 나가기 전에는, 그 16만 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그것도 20년 전이다), 엄마가 그 외상을 갚아 주기 위해 어떻게 살림을 꾸렸을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16만 원이 적힌 장부에 사인하던 엄마의 마음은 어땠던 걸까. 나를 나무라지 않기로 한 그 마음은 또.

눈가와 이마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혀 가는 지금 저 코트를 입으면 아마 때 아닌 귀염을 떠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워낙 험하게 입어 놔서 이제는 때깔도 좋지 않은 저 코트를 입을 수나 있을지. 그러나 나는 저 녀석을 아직, 버릴 수 없다. 엄마는 이미 그 때 일을 기억도 못 하겠지만, 지금 내가 딱히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이나 애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직 그 때의 철딱서니 없던 나를 귀엽게 보아줄 만큼 성숙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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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11/19 22:16 2009/11/1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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