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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6 2009년 12월 16일 12시 30분 by etcetera

지금도 며느리들이 한마음으로 진저리 칠 정도로 모질었던 사람

똑같이 세배를 하면, 손자에겐 오천 원을, 손녀에겐 천 원을 내어주던 사람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마흔 줄 자식에게도, 그 자식의 자식새끼들이 보고 있건 말건 상욕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

고의는 아니었겠으나 오늘처럼 추운 날, 밭둑을 개비하라며 남편을 들로 내보냈다가, 결국 사인(死因)이 되어버린 폐렴을 얻게 한 사람

명절이라고 자식 손주들이 찾아가면 옆에는 늘 둘째 아들의 딸을 재우고는 새벽 세 시면 어김 없이 며느리와 수다 떠는 통에 매번 손녀를 깨워버리던 사람

겨울에 맨발로 방안을 얼쩡거리면 '다비' 신고 있으라 당부하던 사람

그예 정신을 놓아버려 누구든 둘째 아들인 줄로만 안다더니, 추석인 줄은 알았던지 이제는 다 큰 손녀에게 맥주 한 박스 내다 먹으라던 사람

늘 남편에게 묻어가기만 했지, 정작 본인은 환갑도 칠순도 팔순잔치도 변변히 치러본 적 없던 사람

그래도 손주 새끼들 왔다고 활짝 웃기도, 간다고 글썽글썽하기도 잘했던 사람

서울에 있는 대학 갔다고, 우리 손녀 서울대 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던 사람

먼 데서 온 막내 딸내미가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 분이라도 발라줄라 치면 쑥스러워 거울도 바로 못 보던 사람

전화 좀 드리라는 아버지의 등쌀에 못 이겨 손녀가 아주 가끔 전화하면 워매, 하고 반가워하며 손녀는 당최 알지도 못하는 동네 할머니들의 근황을 전해 주던 사람

그 손녀가 딱 한 번 용돈이라고 찔러 드렸을 때, 빳빳한 새돈이라고 또 함빡 웃었던 사람

누가 뭐라 해도, 그래도 결국 그 이름(良心)처럼 좋고 어진 마음 가졌을 거라고 믿고 싶은 사람



그 사람... 할머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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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12/16 16:27 2009/12/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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