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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09 집의 힘 by etcetera (2)

집의 힘

졸지에 한 달 안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최소 1년 정도는 더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주 중반 집주인이 전화하더니(그것도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있는데!) 자기 딸 유학자금 만들어 줘야 한다며 방을 내놓겠단다. 작년에 이미 자기 딸 결혼자금조로 1천을 불렀다가(그런 의미에서 이 집 딸내미들은 정말 미스터리다. 계속 부모랑 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결혼하는데 땡전 한 푼 없이 하나? 유학 가는데 땡전 한 푼 없이 부모한테 손 벌리나? 그게 그렇게들 당연한가? 부모가 원래 재산이라도 좀 있으면 몰라. 그래도 '집주인'이라는 부모가 몇 천만 원도 없이 세입자가 봉인 양, 그 보증금이 당연히 자기네 원 재산인 양 하는데 그걸 보는 마음이 그저 좋을까?) 나한테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이제는 아예 당연히 나가겠거니 생각하고 말을 붙인다.

내가 지금 집에 좀 싸게 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잘 쳐줘도 지금 가격의 천만 원 이상의 가격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 2천을 더 올려주고 이 끔찍한 층간소음에 계속 시달리느니 같은 돈을 주고 좀 더 조용한 데 살겠다는 생각으로 앞뒤 잴 겨를도 없이 그러마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방은 내놓은 그날 오후 나갔다. 어떤 사람이 세금 체납해서 구청에서 세 번째 압류를 당한(가장 최근은 1월 것으로 아직 안 풀렸지 싶다. 전세금 올려 받아서 세금 메우는 거 아닌가 몰라) 집을 덜컥 계약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됐기도 하고 그렇다.

하여, 지난 주말부터 당장에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15년 된 이 꼬진 집이 그 가격에 하루 만에 나갔다는 얘기에, 전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줄은 알고 있었다. 역시나, 가격에 맞추기는커녕 매물 자체가 흔치 않다. 어느 정도냐면, 집 하나에 부동산 중개인이 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이 따라 붙을 지경. 그 작은 집에 중개인 세 명과 내가 우르르 들어가서 집 구경을 했다는 거 아뉨믹과;;;

아무튼 지난 주말과 오늘 퇴근 후 계속 집을 보고 있지만, '볼 수 있는 집'이 없는 까닭에 실제로 구경이라도 해 본 집은 딱 세 채에 불과하다. 그 중 하나는 보고 나오는데 집주인이 "그 집 진작에 나갔는데요~" 하면서 오더라 -_-;;;

이삿날은 다가오고, 충분히 짜증이 날 법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여기저기서 끌어 모으면 지금 집 보증금 + 2천 정도야 더 마련할 수 있다는 게 작은 위안이랄까. 그렇지만 늘, 집은, 이사하고픈 집은, 내가 가진 것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그러고 보면 이것도 참 미스터리다. 손에 쥔 돈이 3천이었을 때는 4천짜리 집은 참 많았고, 좋았다. 4천을 쥐었을 때는 5천짜리 집은 참 흔하고 삐까뻔쩍하더라). 그러니까 요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2년 전 같으면 나는 벌써 그분한테 짜증 백만 번, 엄마한테 성질 백만 번, 스스로한테 화 백만 번은 부렸을 상황이라는 거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실실 쪼개고 다니는 걸까. 아 그러나 내가 왜 아직 '멀쩡히' 다니는지는 이 글의 세 번째 미스터리가 아니다.

지난 늦봄, 나는 사연 자체가 복잡하지는 않으나 설명하자면 좀 귀찮은 과정을 거쳐 아파트 분양대열에 동참하였다. '싸게' 나온 서울시내 아파트이긴 하지만 현재 내 소득과 미래 추산 소득에 비추어 보면 어마어마한 가격의 집이다. 일단 저질러 놓고, 은행에서 빌려 중도금을 넣으면서, 이 집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이리 저리 고민했다. 혼자 살기는 좀 부담스러운 크기니 팔고 작은 집을 한 채 살까, 전세를 내주면서 일단 쥐고 있을까, 미친 척하고 들어가 살아버릴까... 하다가 나는 최근 마지막 옵션을 선택했다. 아무리 양심을 버리고 생각해 봐도 프리미엄 받고 팔아 버리는 투자 혹은 투기대열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았고, 내 집 놔두고 정작 나는 전셋집을 전전하고 싶지도 않았다. 집에 매인 몸이 되어 몇 십 년 동안 몹시 애써 벌어야 하긴 하겠지만, 은행에 월세 내고 갚다 보면 내 집 될 날 있겠지. 다행히 애도 없고, 부모 봉양 의무도 없잖은가(자립(?)하여 잘 사시는 것도 모자라 몇 년에 한 번 엄청 급할 때면 돈도 꿔 주시는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최소한 얼토당토않은 시간에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면서 얼토당토않은 액수의 돈을 내놓으랄 사람은 없을 거 아냐.

1년 반만 대충, 어디든 끼어 살면, 서울 시내 어딘가에 내 이름으로 된 집이 하나 생긴다. 1년 반, 여차하면 짐은 몽땅 그분 사무실 창고에 욱여넣고 나는 고시원에 들어가도 된다. 몇 천 전세가 아니면 어떠랴. 나, 조만간 '집' 생긴다니깐?!

아직 다 지어지지 않은 집 한 채에도 벌써 기대는 마음이 생기는데 실제로 지어지면 얼마나 더 마음이 놓일까(물론 은행에 상납하는 월세 생각은 일단 워워~). 이래서 사람들이 내 집 내 집 하다 보다 했더니 중개인이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잘했어요. 차라리 그렇게 저질러 놔야 돈도 더 빨리 모여요. 그러고 보면 이사 때마다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은 "이 쥐꼬리만 한 돈 가지고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하는, 불확실한 미래, 였나 보다. 잘자라, 내 집. 조만간 내 또 한 번 층수 세어보러 가마. 히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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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2/09 00:09 2010/02/09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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