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굴러들어온 아르바이트는, 내가 자신 있어 하는 입력작업이었다. 수첩을 보고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전화번호를 엑셀에 입력하는 일로, 건당 몇 십 원을 받기로 했던 것 같다.

땡땡고등학교(땡땡은 익명성 때문이 아니라 학교 이름이 진짜 생각 안 나서다; 전북 땡땡지역-이건 기억 나지만 안 쓰는 거다-이었는데;) 동문수첩은 현 거주지인가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 장(章, chapter)의 맨 앞에는 해당 지역 대표자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맨 앞에 나온 사람은 당연히 그 뒤를 따르는 리스트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중복을 어찌한담. 그렇다고 그들을 일일이 외워 건너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몇 번은 일일이 찾아 고쳤지만 중복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쭉쭉 입력했다. Ctrl+드래그로 복사를, Alt+엔터로 줄 바꿈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알바 중개인인 지인에게 배웠다. 그래도 프로그램 사용이 익숙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치고 또 다시 치고. 그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근데 그건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거였을까. 아무튼,

마침내 입력이 완성되어 결과물을 전해주러 모처로 찾아갔다. 애석하게도 그 지역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허름한 건물에서 한 여성이 나와 디스켓을 받아갔던 기억이 난다. 일 계속해 줄 수 있냐는 말에 감사한 마음으로 끄덕끄덕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여성은 생각보다 신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주겠다던 오만여 원의 아르바이트료는 입금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독촉전화하길 수 차례. 제법 화를 내고서야 아르바이트료는 겨우 입금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더 이상의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10여 년 전에 이미 엑셀을 다루기 시작했구나(현재 프로그램 사용능력과는 별개다) 하는 생각이 스치며 잠시잠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그러다 불현듯, 스치듯 얻은 깨달음. …… 10여 년 전 나는, 남의 개인정보를 입력해 팔아먹는 집단에 일조했었구나. ……

땡땡고등학교 동문들께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 아뢴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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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01/08 15:05 2009/01/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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