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모 대학에서 학생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이 환경미화 노동자에게 폭언한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ㅇㅇ대 패륜녀"라니 "ㅇㅇ녀"라는 말은 참 쉽게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예전에 마이클럽에서 "항문남"을 공론화 시키려 애쓸 때는 그렇게도 어려웠다던데.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상황에서 내 관심은 '딸 뻘' 되는 사람이 '어머니 뻘' 되는 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다는 데 있지 않다. 딸이고 어머니고 간에, 그 위치나 나이가 서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인간이 면대 면으로 폭언을 하는 건 나쁘다. 몹시 나쁘다. 그걸 뭐 하러 재삼 확인하나.

그보다 나는 이런 게 궁금하다. 대체 다 먹지도 않은 우유를, 내용물은 세면대나 변기에 버리고 남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에 화장실에 그냥 내버려두고 간 인간은 누구인가. 내가 이걸 여기 버리는 행위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노동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은커녕, '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그렇게 버렸던 사람, 그야말로 이 사건의 원흉 아닌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않았던, '누군가 치워주겠지'하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당신 말이다. 길거리건 화장실이건 교실이건 어디건, 쓰레기통이 아닌 모든 곳에 쓰레기를 그냥 두거나 투척한 당신, 그리고 이를 말리지 않고 심지어 가끔 동참한 내가 이 사건의 발단이다.

잘 상상은 안 되지만 그래, 그 누군가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치자. 어쩔 수 없이 먹다 남은 우유를 두고 간 거라고. 그럼 사건 당사자인 그 학생에게 우유 좀 치우라고 '명'할 수 있게 해준 건 누구인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라'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건, 본인이 그 사람보다 지위가 높다고 여길 때, 듣는 이는 마땅히 그 지위와 명령에 따를 위치에 있다고 여길 때나 가능한 일이다. 부하직원에게 "이것도 좀 치워요"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안 이상하게 들리잖아(내게는 여전히 이상하게 들린다만;;;). 그런데 이 학생은 미화 노동자에게 "치워요"라고 말했다. 아랫사람에게 하듯이. 그게 이 사건의 또 다른 발단이었다. 그런데 아마도 그건 그에게 너무나 '당연'했을 것이다. 그래 어쩌면 그 학생은 그분이 사과를 받으러 오셨을 때 '진심으로' 당황했을 수도 있다. 부하직원에게 "이것 좀 치워요" 했는데 그 부하직원이 말 안 듣고 사과 받아야겠다고 오면 어이없어 하는 상급자가 대부분일 거 아닌가. 자, 어머니뻘 되는 미화원 노동자에게 "치워요"라고 말하는 건 '패륜'이다. 그런데 거기서 '어머니뻘'을 뺀다면? 글쎄, 가슴에 손을 얹고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동안 미화 노동자를 과연 나와 다른 인격체로 존중하고 있었는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수많은 위계질서에 나 편한 만큼 가세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톺아볼 일이다.

당신, 이 글을 읽기가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길 바란다.

이런 얘기는 어떤가. 작년에 지하철에서 본 광경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학력과 교양을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중년 여성이 손에는 영어 원서를 들고 아들과 도란도란 대화하고 있었다. 열 살도 안 됐음직한 아이는 대학에 관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왈, "대학은 옵션이야. 니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대학에 가면 되고 구두닦이 같은 게 되고 싶으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 없어." 사람 얼마 없는 지하철에서 듣다 뿜을 뻔했다. 아주머니, 그게 '옵션'인가요? 협박이지. 아이는 그 상황에서 대학을 결코 '선택지'로 여기지 않는다. 어머니가 선택한 단어와 뉘앙스에서 아이는 재빨리 간파하는 것이다. 대학은 꼭 가야 하는 거구나.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다면 구두수선을 업으로 하거나 환경미화를 업으로 하는 분들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더 나아가 나보다 '낮은' 사람이라는, 그러니까 업신여기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온 건가? 대학에 목숨 거는 수많은 부모와 아이들은 여기서 자유로운가? 누군가에게 '명'할 수 있는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애면글면 살고 있는 당신과 나는 또한 자유로운가?

한편 대학 당국에서는 CCTV를 분석해 해당 학생의 신원을 파악하고 징계할 예정이라고 한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 또한 비겁하다. 학교님, 당신은 자유로우신가요?

해당 노동자는 파견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라고 한다. 기사에 등장한 '파견'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만 내게는 욕설보다 그 글자가 더 커 보였다. 많은 학교들이 환경미화업을 파견업체로 하청을 준다. IMF 이후 직고용 노동자에서 파견 노동자로 지위가 달라지면서 미화원들의 노동조건도 덩달아 열악해졌다. 그나마 있던 '교직원' 딱지 떼 버린 게 바로 학교고, 그들이 일하는 만큼 대우해 주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대내외적 지위를 더욱 떨어뜨린 게 바로 학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하려고 만드는 노조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도 학교다(해당 학교에 미화 노동자조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런 사건은 해당 노동자가 노조원이었다면 노조에서 학생집단에, 학교에 문제제기할 수 있는 사안 아닌가. 그럼 해당 학생 '한 명'을 찾아내 징계하는 것보다는 '발전적인' 대안이 오고가지 않았을까).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 힘없는 한낱 개인으로 취급해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은 게 누군데 이제와 웬 명예 타령인가. 당신들의 명예는 학생을 징계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고, 집단활동을 보장하고, 교내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함으로써 회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신. 그리고 나.

이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소위 '패륜(이것도 참 내가 안 좋아하는 단어이긴 하다)' 범죄 내지 행위가 한 번 벌어지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달려들어 그 특정인에게 엄청난 폭력과 폭언을 퍼붓는다. 그럼으로써 얻는 것은 따지고 보면 '나는 아니다' 내지는 '나는 책임이 없다'라는 얄팍한 위안. 그래 더 세게 퍼부을수록 자신에게는 더욱 강력한 면죄부가 주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엄청난 폭력을 휘두른다. 내 눈에는 뭐랄까, 집단적 공포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돌팔매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렇게 휘둘러대야만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다! "나는 무죄요!"

그렇지만 말초적 분노에 휩싸여 특정 개인을 매도한 후 잊어버리는 전철은 이제 그만 밟았으면 좋겠다. 사건을 둘러싼 여러 정황들을 숙고하지 않은 채,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은 채 내뱉는 분노에 겨운 말들은 잠깐의 자기위안 내지 배설일 뿐이다. 근데 그거 알아? 그렇게 싼 X은 결국 본인이 먹게 된다는 거. 세상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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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5/18 16:27 2010/05/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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