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에서 유명을 달리한 46인의 신상정보(사진, 출신학교, 자녀수 등)를 가지고 어플을 만들어 판매한 사람과 애플을 유족들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에 이 프로그램이 앱스토어에 나왔다며 개탄하는 보도를 본 바 있어 단상을 기록해 둔다.

(당시 보도)
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 ··· 5c7%25c3

이에 '국가적 슬픔을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여기:

하지만 개발자인 박 모 씨는 천안함 사태를 잊지 말자는 순수한 뜻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수익금도 기부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박 모 씨, 프로그램 개발자]
"유가족들한테도 진짜 저는 정말 선의의 목적으로 했다가 그분들에게 누만 되고...미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 이거 지금..."


자막만으로는 잘 안 와 닿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 사람의 영상이랑 소리를 같이 접했을 때 뭐랄까, 이이의 '진심'을 느꼈다. 이 사람은 정말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러니 저 개발자는 지금 얼마나 '미칠' 노릇일까.

몇 년 전, 아마 2005년일 거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땡스투' 제도(책을 구입하기 전 해당 책에 관한 리뷰 등에 '땡스투'를 하면 해당 리뷰 작성자와 구매자에게 판매가격의 1%를 적립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한지 몇 달 후 누가 내게 땡스투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알라딘의 많은 시스템이 그렇듯 어느 날 갑자기. 하도 기가 막혀서 한나절 동안 당신네 서점이 대체 무슨 권리로 내가 무슨 책을 샀는지 남한테(그 사람이 내게 땡스투를 했건 안 했건,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남'이라는 거지) 무차별적으로 알려 주느냐, 이 시스템을 계속 운영하겠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땡스투 다 물러 주겠으니 내 내역은 다 삭제해라 난리를 쳤더니만 정말 딱 한나절 만에 원상복구 되었다. 그 때 썼던 글을 다 삭제해 버려서 물증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런데 당시 담당자('마을지기'라고 하는 분)의 답변이 또한 흥미로웠다. 시스템을 가동하기 전, 사내에 나와 같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서로 관심 있는 책을 공유함으로써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나아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에 시행하게 되었던 것이란다. 나는, 이들의 '선의' 또한 믿는다(여기서 또 재미있었던 건, 적잖은 사람들이 '그깟 내역 좀 공개하면 어때?'라고 생각했었다는 거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 슨상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거겠지. "여러 나라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담당하는 여러 당국이 해야 할 진짜 일은,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작업이 아니라, 열광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귀중한 자산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라고).

그러니까 이게 다, 우리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건너편에서 망원경 들이대고 우리집 들여다보는 것만 '프라이버시 침해'인 줄 아는, 자기가 지금 떠들고 있는 얘기가 타인에 관한 정보유출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아무데나 자기 전화번호 남길 때는 언제고 언제부턴가 계속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며 울상 짓는, 남의 사진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찍어다 자기 미니홈피에 올리는, 그런 '무식'이 결국 이런 일들의 배경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자명예훼손보다는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고인에게는 적용이 안 되나? 아님 이건 민사소송밖에 안 되나?)의 문제로 이 사건에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물론 더 '쎄게' 먹히는 건 사자명예훼손이겠다만). 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저급하기 짝이 없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수성(이게 만약 '국가적 슬픔'이 아니라 다른 사안이었다면 이토록 공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게 바로 이 사회의 감수성 수준이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만한 일이니까.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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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6/22 17:04 2010/06/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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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에 의해 타고 들어간 링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투표안내문이 '세대주' 앞으로 오는 데 대한 개선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투표안내문을 받은 이래로 계속 나홀로 세대를 구성했었기에 투표안내문이 세대주에게만 온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건 나의 불찰(?)이다. 아무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중앙선관위원회가 공직선거법에 의거하여 투표안내문을 각 세대주에게 발송하는 것이 여성 및 젊은 세대의 투표참여와 관련하여 차별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선거에 대한 공평한 정보접근을 위해 투표안내문 발송용봉투에 투표권자(당 세대 선거인) 전원의 이름을 표기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에 관한 선관위의 답변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 투표안내문을 세대주에게 발송하도록 규정한 것은 일반적으로 세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대주에게 투표안내문 등 선거정보를 보내더라도 세대주와 세대원들이 선거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건, 이 짧고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제안과 답변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내 살펴야 할지 나도 참 대책이 안 선다.


1.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이름의 직무유기

쉬운 것부터 가자. 아직도 공문에 이렇게 무식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도다. "일반적으로 세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세대주와 세대원들이 선거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현실"이라니, "일반"적이지 않은 집은 대체 어쩔 거야. 세대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세대주가 혼자 보고 버려도 되나요? 안 보고 그냥 버려도 되지 않나요? 세대주가 나쁘거나 게을러서, 혹은 참으로 개인주의적이어서 세대원이랑 '정보 공유' 안 하면 또 어쩔 거냐구. 이런 우려는 민우회가 저 제안을 하면서 든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가족들이 전반적으로 선거에 대해, 특히 지방선거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선거공보물이 왔더라도 내 앞으로 오지 않는 이상 잘 뜯어보지 않게 되고 아버지가 뜯어본 공보물을 찾아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에 참여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선관위가 이런 식으로 뭉뚱그리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 차라리 "올바른 제안이긴 하지만 업무 처리의 효율과 비용의 문제" 내지는 "공직선거법 사안이므로 국회와 협의" 운운했다면 동정이라도 얻었을 거다.

여기서 선관위에 퀴즈. 많이 부실하긴 하지만 가족관계등록법이 왜 개정됐을까? 바로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증명'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녀를 입양한 경우, 재혼해서 새로 가족을 구성한 경우 등등등,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무시한 채 생물학적 부와 모, 그리고 그 둘이 공동으로 낳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정상가족' 틀에 갇히지 않은 '가족(과 이를 구성하는 개인)'은 자신들이 노출하길 바라지 않는 정보가 국가증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국가가 나서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 셈이 되었으니 이렇게 꼴이 우스울 수 없다.

선관위는 '선거'만 관장하느라 몰랐나 본데 이런 사례 좀 보고 배우시라. 당신들의 나라에는 "일반"인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당신들 나라 사람이다. 국회도 알고 한나라당도 아는데(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은 한나라당에서도 냈었다) 왜 당신들만 모르나.


2. "일반"이라는 이름의 정보침해

그런데 이 "일반"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민우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개똥(부), 홍말똥(모), 이소똥(자)로 구성된 '가족'이 있다 치자. 그리고 선관위가 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투표안내문에 세대원의 이름을 다 적는다 치자. 한데 이건 등기도 아니라 아무나 다 볼 수 있는 우편함에 그냥 대충 끼어 있다(부피도 좀 커야 말이지). 그래 옆집 앞집 윗집 사람이 지나가다 봉투에 쓰인 이름을 읽는다(일부러 읽지 않는대도 다가구 우편물은 건물별로 한데 모아두는 데가 많잖은가). 응? 저 집은 식구가 왜 저래? 애가 아빠를 닮았길래 의심도 안 했더니만 알고 보니 여자가 애 데리고 재혼했구먼(현행법에 따르면 투표권이 나오는 나이에는 재혼한 아버지의 성으로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쯧쯧. 이런 집은 어떤가. 홍말똥(모), 이소똥(자). 아니 저 집 남편은 외국 지사 발령 받아 가 있다더니 이혼녀구만? 또 이런 집은? 홍말똥(모), 홍소똥(자). 이그, 저 집은 남편이랑 사별했다더니 알고 보니 '미혼모'구만, 운운하는 얘기가 암암리에 퍼지지 말라는 법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A안, 그리고 조금 더 적은, 그러나 A안으로 혜택을 볼 사람들보다 좀 더 '심각한' 권리 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B안이 있을 때, 어느 단체가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A안을 미는 걸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건 A안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에게 왜 B안을 택하지 않았냐고 따질 게 아니라 내가 B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A안을 시행하기 위해 B 그룹 사람들의 권리를 '현저히' 침해하는 건, 피해야 하는 일이다. '운동'하는 단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을 민우회는 왜 '저질렀'을까? 혹시 이로 인해 얻는 '이득' 내지 '구제'가 '침해'보다 크다고 생각했다면, 그러니까 "비(非)세대주 투표의  정보접근에 대한 차별 개선 및 투표참여율 제고"가 원치 않는 정보 노출로 인해 받게 될 피해(여기도 '가족관계등록법 퀴즈' 내 드릴까요?)를 상쇄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강행'했다면(사실 민우회가 저 제안서를 보내기 며칠 전에 얘기를 들었다. 회원으로서 지금 쓰고 있는 내용을 근거 삼아 반대했다. 그런데 결국 제안서가 발송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반드시 자초지종을 물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굉장히 실망스러울 거다.


3. 젠더 감수성 vs 정보 감수성

그렇다면 "일반"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글쎄, 이런 가정은 어떤가. 주민등록번호만 뺀다면, 옆집 사람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주소랑 이름 줄인데 뭐 어떤가. '왠지' 께름칙하다면 왜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만 쏙 뺀 주민등록등본'과 민우회에서 제안한 '전 세대원 이름 병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마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 눈엔 별 차이 없어 뵈는데(뭐, 투표권 없는 사람은 빠지기는 하겠네), 어떤가?

정보가 각각의 자리에 '있는 것'과 그것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은 천양지차다. 전교조는 왜 NEIS 도입을 반대했을까? 인권단체들은 왜 구 여권 발급 운동을 벌이면서까지 전자여권을 반대했을까? 왜 시민단체들은 민간 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보유한 의료기록에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할까? 각각의 사안에는 각각의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안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집적'에 대한 우려다.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한데 묶는 게 보기에도 좋고 제어하기도 편하겠지만 관리 대상에게 정보의 집적은 잠재적인, 혹은 실질적인 위협이다. 모으기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안전해지는 게 바로 개인정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그거슨 진리' (세대원들 이름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것이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정녕 '민우회'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운동과 불화'하겠다). 하여 나는 한국여성민우회도 연명했던 "NEIS 문제의 올바른 해결과 정보인권 수호를 촉구하는 전국 1,089개 민주시민사회인권단체 기자회견문"에 나오는 문구를 그대로 돌려주고자 한다. "작금의 문제를 '정보인권'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를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매사 정보 감수성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여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건대 젠더 감수성과 정보 감수성, 둘은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관계가 아니며 두 가지 모두 운동과 활동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젠더 감수성과 정보 감수성이 충돌하지 않게 하면서 이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훌륭한 아무개 회원의 제안대로 봉투 겉면에 세대 내 모든 유권자에게 보낸 것임을 명확히 하거나 수신인을 "유권자(이름이랑 헷갈리면 '일동'이라고 하든가, 아무튼 방법은 찾아보면 있을 거다)"라고 하는 게 아닐까. 어떻든지 간에, 투표권을 가진 세대원 이름을 모두 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요는, 저런 중선관위가 선거를 관장하는 나라에 사는 것은 이미 충분히 부끄러우니 단체 회원인 것까지 부끄럽게 하지는 말아 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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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6/07 21:31 2010/06/07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