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무지 바쁘다. 그냥 바쁘기만 한 게 아니라 말 안 듣고 일 못하게 하는 사람들까지 있어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무지 바쁘다. 어제도 그렇게 한참 바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웬 쇼핑몰인데 땡땡땡 고객님 맞으시냐며, 몇 천 원짜리 쿠폰을 발급했으니(시제가 '과거'라는 데 유의할 것) 계정에 접속해 확인해 보란다(이런 걸 왜 전화로 알려주지?). 건성으로 네네 하고 있는데 본인 확인을 위해 전화번호 확인을 해 달라네? 지금 자기가 걸고 있는 전화번호가 내 번호가 맞냔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어디시라구요?" "인터넷 쇼핑몰 땡땡땡입니다~" 어쩌구 하면서 같은 얘기를 반복. 그래 따져 물었다. 쿠폰을 발급했다면서 본인 확인 절차가 왜 필요한 거냐고. 쿠폰이 나왔으면 내가 내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확인하면 그만 아니냐고. 그랬더니 뭐라더라,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했을 때 본인이 아닐 경우 상품이 잘못 배송될 수 있고 어쩌고?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가 안 돼서 뭐라고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을 못 하겠다;;; 물건 배송과 관련해서는 제가 주문하고 제가 인터넷에서 알아서 하면 되는 일 아니냐, 오류가 나도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질 부분이니 신경 끄시라 했더니만 계속 오배송이 어쩌구 오류가 어쩌구... 그래서 나도 끈질기게 쿠폰 발급과 본인 확인의 상관관계를 물었더니 이젠 또 그 둘을 별도로 생각하란다(별도로 생각하라면서 대체 '본인 확인'은 왜 해 달라는 거냐구. 더 웃긴 건, 이미 그 사람은 내 전화번호와 이름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호가 내 번호 맞다'는 한 마디를 애타게 기다린 건 뭔가 있다는 거다). 5분 여 그런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당신이 나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다른 분들과 통화하시는 게 낫겠다는 말씀을 건넸다. 아니 그랬더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 자기가 정리를 해 주겠단다. 그러니까 쿠폰과 본인 확인은 관계가 없고... 아니 그러지 마시고 그냥 끊으시자 했더니 묻는다. 그럼 본인 확인을 거부하시는 거냐고. 그렇다 얘기하고 겨우 끊을 수 있었다.

전화를 끊고 바로 땡땡땡 쇼핑몰에 접속했다. 쿠폰은 무슨; 눈을 뒤집어 봐도 없다. 바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웬만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일은 드물지만, 바쁠 때 전화해서 내 시간 엄청 빼앗은 데 대한 보복성 전화다. 한참 기다려(그거 다 발신자 부담이다 --;) 드디어 상담원 연결. 쿠폰을 발급'했다'고 하는데 계정에 그런 쿠폰은 있지도 않다, 당신네 쇼핑몰에서 건 전화가 맞기는 하냐(전화 전 주소지와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니 거기가 맞는 것 같긴 했다), 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전화를 왜 한 거냐. 그랬더니? 역시나 보험 관련 정보제공 동의 전화였던 거다. 쿠폰은 아마 정보수신 동의를 하면 주는 거겠지(근데 왜 이미 발급한 것처럼 말하냐고!). 마케팅도 좋지만 이런 식으로 '사기'에 가까운 전화를 돌리게 하면 당신네 쇼핑몰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엄청난 속도로 퍼부은(이라고는 하지만 속도만 빨랐지 욕 한 마디도 안 했고 반말도 안 했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이런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안다) 후 전화를 끊었다. 어쨌든 앞으로 그 쇼핑몰에서 내게 판촉전화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내가 그 쇼핑몰을 이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흥.

내가 본인 확인을 해 주었으면 바로 빠른 목소리로 보험 얘기를 다다다 읊은 후 "동의하시죠?"라고 했을지('동의하십니까?'가 아니라 '동의하시죠?'인 데도 유의할 것. 물론 이 경우에도 나는 '아니요'라고 말한다. 상대가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똑같이 물어도 '아니요'라고 꿋꿋하게 말한다), 아니면 '본인 확인' 절차만으로 뭔가를 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요새 이런 전화가 가끔 올 때마다 사람들이 걱정된다. 건성으로 네네 했다가 나중에 자기 이름까지 댄 스팸전화 온다고 화낼까 봐.

하지만 더 걱정스럽고 불쾌한 건 인터넷 쇼핑몰이다. 어제 전화했던 쇼핑몰 같은 경우엔 오래 전에 가입했던 데라, 내가 가입했던 시절에는 개인정보 제공 동의 같은 게 없었을 거다. 그러니까 일부러 내게 전화를 해서 동의를 받으려 했던 거고. 어쨌거나 본인 동의 없이는 타 업체에 정보를 제공할 수 없으니까 이 사례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요새는 웬 쇼핑몰 하나 가입하려면 무슨 제휴 사이트가 그렇게도 많은지, '원스톱'이라는, 말 그대로 '미명' 아래 온갖 군데에 내 개인정보를 다 퍼주게 만들어 놓았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하지 않으면 회원가입 자체를 막아버려서 울며 겨자 먹기로 체크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놓고 나중에 사용자가 항의하면 '자발적'으로 해놓고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

인터넷 쇼핑몰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쇼핑몰 가입 시 개인정보 공유 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회원 가입이 안 되게 돼 있다”며 “제휴관계가 많은 규모 큰 기업일수록 개인정보가 새어나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입자가 개인정보 공유를 동의한 만큼 제휴업체에 제공된 개인정보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정말 재수 없지만, 일련의 규제 장치가 생기기 전에는 이용자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혜택제공을 가장한 판촉 전화가 오면 꼼꼼히 따져 묻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 시 조건을 주의 깊게 읽어야 한다. 온갖 업무와 개인적인 일을 대부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쥔장이지만, 역시 오프라인이 최고인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드는 요즘이다.

* 덧붙임 하나*
본문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팁. 인터넷 서비스 가입했다고 인터넷 전화를 들여놓으라거나 바꾸라거나 하는 전화가 종종 온다. 아무 상관 없는 업체면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을 경우에는 아무리 됐다고 사양해도 지칠 줄 모르고 전화를 한다. 이름까지 대면서. 그럴 때는 "이런 전화 한 번만 더 하시면 쓰고 있는 인터넷까지 끊겠습니다. 상부에 꼭 그렇게 전해 주세요" 하면 해방 될 수 있다.

* 덧붙임 둘 *
사실 텔레마케터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깟 정보제공쯤 동의해 줘 버리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건 아니다. 본인들이라고 그 일이 마냥 좋을까. 게다가 나보다 더 험한 이용자를 맞닥뜨리면 안팎에서 온갖 욕을 다 들어야 할 텐데. 하지만 아주 아주 짧은 영업(텔레마케팅 포함) 경험으로 봐도, 아닌 건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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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16:14 2010/08/1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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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에서 유명을 달리한 46인의 신상정보(사진, 출신학교, 자녀수 등)를 가지고 어플을 만들어 판매한 사람과 애플을 유족들이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전에 이 프로그램이 앱스토어에 나왔다며 개탄하는 보도를 본 바 있어 단상을 기록해 둔다.

(당시 보도)
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 ··· 5c7%25c3

이에 '국가적 슬픔을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바로 여기:

하지만 개발자인 박 모 씨는 천안함 사태를 잊지 말자는 순수한 뜻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수익금도 기부하려 했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박 모 씨, 프로그램 개발자]
"유가족들한테도 진짜 저는 정말 선의의 목적으로 했다가 그분들에게 누만 되고...미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될지 이거 지금..."


자막만으로는 잘 안 와 닿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 사람의 영상이랑 소리를 같이 접했을 때 뭐랄까, 이이의 '진심'을 느꼈다. 이 사람은 정말 '선의'를 가지고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거다. 그러니 저 개발자는 지금 얼마나 '미칠' 노릇일까.

몇 년 전, 아마 2005년일 거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땡스투' 제도(책을 구입하기 전 해당 책에 관한 리뷰 등에 '땡스투'를 하면 해당 리뷰 작성자와 구매자에게 판매가격의 1%를 적립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한지 몇 달 후 누가 내게 땡스투를 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알라딘의 많은 시스템이 그렇듯 어느 날 갑자기. 하도 기가 막혀서 한나절 동안 당신네 서점이 대체 무슨 권리로 내가 무슨 책을 샀는지 남한테(그 사람이 내게 땡스투를 했건 안 했건,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남'이라는 거지) 무차별적으로 알려 주느냐, 이 시스템을 계속 운영하겠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땡스투 다 물러 주겠으니 내 내역은 다 삭제해라 난리를 쳤더니만 정말 딱 한나절 만에 원상복구 되었다. 그 때 썼던 글을 다 삭제해 버려서 물증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 그런데 당시 담당자('마을지기'라고 하는 분)의 답변이 또한 흥미로웠다. 시스템을 가동하기 전, 사내에 나와 같은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서로 관심 있는 책을 공유함으로써 온라인 상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나아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에 시행하게 되었던 것이란다. 나는, 이들의 '선의' 또한 믿는다(여기서 또 재미있었던 건, 적잖은 사람들이 '그깟 내역 좀 공개하면 어때?'라고 생각했었다는 거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 슨상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거겠지. "여러 나라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를 담당하는 여러 당국이 해야 할 진짜 일은, 프라이버시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작업이 아니라, 열광적으로 프라이버시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귀중한 자산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하는 작업이다"라고).

그러니까 이게 다, 우리가 '무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건너편에서 망원경 들이대고 우리집 들여다보는 것만 '프라이버시 침해'인 줄 아는, 자기가 지금 떠들고 있는 얘기가 타인에 관한 정보유출인지 아닌지조차 모르는, 아무데나 자기 전화번호 남길 때는 언제고 언제부턴가 계속 이상한 전화가 걸려온다며 울상 짓는, 남의 사진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찍어다 자기 미니홈피에 올리는, 그런 '무식'이 결국 이런 일들의 배경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자명예훼손보다는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고인에게는 적용이 안 되나? 아님 이건 민사소송밖에 안 되나?)의 문제로 이 사건에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물론 더 '쎄게' 먹히는 건 사자명예훼손이겠다만). 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저급하기 짝이 없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감수성(이게 만약 '국가적 슬픔'이 아니라 다른 사안이었다면 이토록 공분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그게 바로 이 사회의 감수성 수준이다)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만한 일이니까. 절레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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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2 17:04 2010/06/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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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의에 의해 타고 들어간 링크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투표안내문이 '세대주' 앞으로 오는 데 대한 개선을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투표안내문을 받은 이래로 계속 나홀로 세대를 구성했었기에 투표안내문이 세대주에게만 온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건 나의 불찰(?)이다. 아무튼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중앙선관위원회가 공직선거법에 의거하여 투표안내문을 각 세대주에게 발송하는 것이 여성 및 젊은 세대의 투표참여와 관련하여 차별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에 선거에 대한 공평한 정보접근을 위해 투표안내문 발송용봉투에 투표권자(당 세대 선거인) 전원의 이름을 표기할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아래는 이에 관한 선관위의 답변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 투표안내문을 세대주에게 발송하도록 규정한 것은 일반적으로 세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대주에게 투표안내문 등 선거정보를 보내더라도 세대주와 세대원들이 선거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인 현실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 사건이 흥미로운 건, 이 짧고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제안과 답변에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뜯어내 살펴야 할지 나도 참 대책이 안 선다.


1.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는 이름의 직무유기

쉬운 것부터 가자. 아직도 공문에 이렇게 무식한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랍도다. "일반적으로 세대는 가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니, "세대주와 세대원들이 선거정보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현실"이라니, "일반"적이지 않은 집은 대체 어쩔 거야. 세대가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으면 세대주가 혼자 보고 버려도 되나요? 안 보고 그냥 버려도 되지 않나요? 세대주가 나쁘거나 게을러서, 혹은 참으로 개인주의적이어서 세대원이랑 '정보 공유' 안 하면 또 어쩔 거냐구. 이런 우려는 민우회가 저 제안을 하면서 든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가족들이 전반적으로 선거에 대해, 특히 지방선거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선거공보물이 왔더라도 내 앞으로 오지 않는 이상 잘 뜯어보지 않게 되고 아버지가 뜯어본 공보물을 찾아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한 사람이라도 더 투표에 참여시켜야 할 의무가 있는 선관위가 이런 식으로 뭉뚱그리는 건 직무유기 아닌가? 차라리 "올바른 제안이긴 하지만 업무 처리의 효율과 비용의 문제" 내지는 "공직선거법 사안이므로 국회와 협의" 운운했다면 동정이라도 얻었을 거다.

여기서 선관위에 퀴즈. 많이 부실하긴 하지만 가족관계등록법이 왜 개정됐을까? 바로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증명'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자녀를 입양한 경우, 재혼해서 새로 가족을 구성한 경우 등등등,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를 무시한 채 생물학적 부와 모, 그리고 그 둘이 공동으로 낳은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정상가족' 틀에 갇히지 않은 '가족(과 이를 구성하는 개인)'은 자신들이 노출하길 바라지 않는 정보가 국가증명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는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국가가 나서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 셈이 되었으니 이렇게 꼴이 우스울 수 없다.

선관위는 '선거'만 관장하느라 몰랐나 본데 이런 사례 좀 보고 배우시라. 당신들의 나라에는 "일반"인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당신들 나라 사람이다. 국회도 알고 한나라당도 아는데(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은 한나라당에서도 냈었다) 왜 당신들만 모르나.


2. "일반"이라는 이름의 정보침해

그런데 이 "일반"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민우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김개똥(부), 홍말똥(모), 이소똥(자)로 구성된 '가족'이 있다 치자. 그리고 선관위가 단체의 제안을 받아들여 투표안내문에 세대원의 이름을 다 적는다 치자. 한데 이건 등기도 아니라 아무나 다 볼 수 있는 우편함에 그냥 대충 끼어 있다(부피도 좀 커야 말이지). 그래 옆집 앞집 윗집 사람이 지나가다 봉투에 쓰인 이름을 읽는다(일부러 읽지 않는대도 다가구 우편물은 건물별로 한데 모아두는 데가 많잖은가). 응? 저 집은 식구가 왜 저래? 애가 아빠를 닮았길래 의심도 안 했더니만 알고 보니 여자가 애 데리고 재혼했구먼(현행법에 따르면 투표권이 나오는 나이에는 재혼한 아버지의 성으로 바꾸고 싶어도 못 바꾼다!), 쯧쯧. 이런 집은 어떤가. 홍말똥(모), 이소똥(자). 아니 저 집 남편은 외국 지사 발령 받아 가 있다더니 이혼녀구만? 또 이런 집은? 홍말똥(모), 홍소똥(자). 이그, 저 집은 남편이랑 사별했다더니 알고 보니 '미혼모'구만, 운운하는 얘기가 암암리에 퍼지지 말라는 법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구제할 수 있는 A안, 그리고 조금 더 적은, 그러나 A안으로 혜택을 볼 사람들보다 좀 더 '심각한' 권리 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B안이 있을 때, 어느 단체가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A안을 미는 걸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건 A안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에게 왜 B안을 택하지 않았냐고 따질 게 아니라 내가 B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A안을 시행하기 위해 B 그룹 사람들의 권리를 '현저히' 침해하는 건, 피해야 하는 일이다. '운동'하는 단체라면 마땅히 경계해야 할 일을 민우회는 왜 '저질렀'을까? 혹시 이로 인해 얻는 '이득' 내지 '구제'가 '침해'보다 크다고 생각했다면, 그러니까 "비(非)세대주 투표의  정보접근에 대한 차별 개선 및 투표참여율 제고"가 원치 않는 정보 노출로 인해 받게 될 피해(여기도 '가족관계등록법 퀴즈' 내 드릴까요?)를 상쇄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강행'했다면(사실 민우회가 저 제안서를 보내기 며칠 전에 얘기를 들었다. 회원으로서 지금 쓰고 있는 내용을 근거 삼아 반대했다. 그런데 결국 제안서가 발송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반드시 자초지종을 물어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다) 굉장히 실망스러울 거다.


3. 젠더 감수성 vs 정보 감수성

그렇다면 "일반" 세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안심'해도 좋은 것일까. 글쎄, 이런 가정은 어떤가. 주민등록번호만 뺀다면, 옆집 사람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주소랑 이름 줄인데 뭐 어떤가. '왠지' 께름칙하다면 왜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주민등록번호만 쏙 뺀 주민등록등본'과 민우회에서 제안한 '전 세대원 이름 병기'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마저 생각해 보기 바란다. 내 눈엔 별 차이 없어 뵈는데(뭐, 투표권 없는 사람은 빠지기는 하겠네), 어떤가?

정보가 각각의 자리에 '있는 것'과 그것을 '모아서 보여주는 것'은 천양지차다. 전교조는 왜 NEIS 도입을 반대했을까? 인권단체들은 왜 구 여권 발급 운동을 벌이면서까지 전자여권을 반대했을까? 왜 시민단체들은 민간 보험사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보유한 의료기록에 접근하는 걸 막으려고 할까? 각각의 사안에는 각각의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안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집적'에 대한 우려다.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한데 묶는 게 보기에도 좋고 제어하기도 편하겠지만 관리 대상에게 정보의 집적은 잠재적인, 혹은 실질적인 위협이다. 모으기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안전해지는 게 바로 개인정보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그거슨 진리' (세대원들 이름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것이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정녕 '민우회'가 그렇게 얘기한다면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운동과 불화'하겠다). 하여 나는 한국여성민우회도 연명했던 "NEIS 문제의 올바른 해결과 정보인권 수호를 촉구하는 전국 1,089개 민주시민사회인권단체 기자회견문"에 나오는 문구를 그대로 돌려주고자 한다. "작금의 문제를 '정보인권'의 관점에서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를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매사 정보 감수성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높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 여성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건대 젠더 감수성과 정보 감수성, 둘은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관계가 아니며 두 가지 모두 운동과 활동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젠더 감수성과 정보 감수성이 충돌하지 않게 하면서 이 사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훌륭한 아무개 회원의 제안대로 봉투 겉면에 세대 내 모든 유권자에게 보낸 것임을 명확히 하거나 수신인을 "유권자(이름이랑 헷갈리면 '일동'이라고 하든가, 아무튼 방법은 찾아보면 있을 거다)"라고 하는 게 아닐까. 어떻든지 간에, 투표권을 가진 세대원 이름을 모두 쓰는 것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요는, 저런 중선관위가 선거를 관장하는 나라에 사는 것은 이미 충분히 부끄러우니 단체 회원인 것까지 부끄럽게 하지는 말아 달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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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21:31 2010/06/07 21:31

연말 연시가 되면 심심파적 삼아 인터넷 공짜 사주나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생년월일시를 넣으면 프로그램이 알아서 내용을 출력해 주는 식인가 본데, 이용자들로서도 별다른 비용이 안 들어가니 여기 저기 재미로 보고 가는가 보다.

나 역시 몇 년 전 다른 블로그의 링크를 타고 들어가 공짜 사주를 본 적이 있다. 물론 기억 나는 내용은 하나도 없지만. 그런데 이게 재미있다. 생년월일시만 입력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이름과 이메일주소까지 적게 되어 있는 것이다. 메일주소가 왜 필요하지?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려고? 글쎄다.

아무래도 꺼림칙해서 평소에 전혀 사용하지 않는 프리ㅇ 메일주소를 넣었다(그렇다, 나는 아직까지 '가짜' 메일주소를 써 넣을 만큼 강심장은 아닌 것이다. 메일주소를 써 넣으면 어떻게 되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기도 했고). 필요에 의해 아이디를 만들기는 했으나 메일 기능은 사용한 적이 "거의" 없고, 심지어 다른 사이트 이메일 주소 입력 양식에 한 번도 써넣어 본 적 없는 메일이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둔다.

그 이후로 하루 서너 통의 스팸메일이 쏟아져 들어오는 건, 그러니까 내가 개인용도로 쓰는 야ㅇ 메일에 필적하는 양의 스팸이 수신되는 건, 프리ㅇ의 스팸필터 기능이 타 포털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아이디를 하나 만들면 다른 곳에도 똑같은 아이디를 사용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메일주소를 지들 맘대로 뿌렸을 거라는 가정도 가능하기는 하다. 평생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네이ㅇ 이메일에 벌써 스팸이 들어왔다는 게 그 증거일 터. 그러나 역시 필요에 의해 한두 달 전 휴면을 해지한 후 지금까지 받은 네이ㅇ 스팸메일이 두세 개였다는 걸 생각하면(물론 아이디는 프리ㅇ과 네이ㅇ 모두 같다), 같은 아이디를 응용한 스팸발송이라 하더라도 이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주 볼 때 입력한 이메일주소는 어떤 경로로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사용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알 도리가 없다(그 사이트가 어디였는지도 생각 안 나는 마당에;;;). 사후 관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고.

어차피 안 쓰는 메일이니 가끔 들어가 전체선택을 클릭하고 스팸신고를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이게 하루 평균 서너 통이나 되니 몇 주에 한 번씩 삭제하는 것도 일 아닌 일이 되어 버렸다. 오늘도 모처럼 스팸메일을 삭제하고 있자니 갑자기 짜증이 물밀듯 밀려오는 거다. 속도가 빠르지도 않아서 "스팸신고" 누르고 한참 있어야 "처리 되었습니다"는 메시지가 뜨는 것도 짜증나고.

거기에, 대부분 발기부전 치료제 광고인 스팸 리스트를 보다 보니 거기에 의심, 혹은 깨달음이 하나 더 얹힌다. 얘네는 공짜로 내 이메일주소뿐 아니라 생년월일에 성별까지 앉은 자리에서 받아 먹었겠구나. 맞춤형 개인정보라고 몇 원이라도 더 받고 팔았겠네. 젠장 젠장 젠장.

물증? 물론 없다. 인터넷 사주 사이트가 이메일 무단/자동수집 프로그램의 희생양일 수 있음을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심증만으로도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읽고 발끈한 인터넷 공짜 사주 사이트가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승소 판결을 받아내지 않는 한, 이 '의심'이 단순한 '의심'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 인터넷 공짜 사주 너무 좋아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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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5:39 2009/11/1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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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굴러들어온 아르바이트는, 내가 자신 있어 하는 입력작업이었다. 수첩을 보고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전화번호를 엑셀에 입력하는 일로, 건당 몇 십 원을 받기로 했던 것 같다.

땡땡고등학교(땡땡은 익명성 때문이 아니라 학교 이름이 진짜 생각 안 나서다; 전북 땡땡지역-이건 기억 나지만 안 쓰는 거다-이었는데;) 동문수첩은 현 거주지인가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고, 각 장(章, chapter)의 맨 앞에는 해당 지역 대표자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맨 앞에 나온 사람은 당연히 그 뒤를 따르는 리스트에도 수록되어 있었다. 이 중복을 어찌한담. 그렇다고 그들을 일일이 외워 건너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몇 번은 일일이 찾아 고쳤지만 중복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쭉쭉 입력했다. Ctrl+드래그로 복사를, Alt+엔터로 줄 바꿈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때, 알바 중개인인 지인에게 배웠다. 그래도 프로그램 사용이 익숙지 않아 몇 번을 다시 치고 또 다시 치고. 그때도 그랬지만,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근데 그건 대체 어디다 쓰려는 거였을까. 아무튼,

마침내 입력이 완성되어 결과물을 전해주러 모처로 찾아갔다. 애석하게도 그 지역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허름한 건물에서 한 여성이 나와 디스켓을 받아갔던 기억이 난다. 일 계속해 줄 수 있냐는 말에 감사한 마음으로 끄덕끄덕 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여성은 생각보다 신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주겠다던 오만여 원의 아르바이트료는 입금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독촉전화하길 수 차례. 제법 화를 내고서야 아르바이트료는 겨우 입금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더 이상의 의뢰는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10여 년 전에 이미 엑셀을 다루기 시작했구나(현재 프로그램 사용능력과는 별개다) 하는 생각이 스치며 잠시잠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그러다 불현듯, 스치듯 얻은 깨달음. …… 10여 년 전 나는, 남의 개인정보를 입력해 팔아먹는 집단에 일조했었구나. ……

땡땡고등학교 동문들께 삼가 죄송하다는 말씀 아뢴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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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01/08 15:05 2009/01/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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