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이사 오고 일 주일이나 지났을까. 밤 열두 시를 좀 넘은 시각,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댕 딩동댕~ 참고로 이 집의 초인종 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커서, 자다가도 벌떡 깰 수준이다. 물론 나 같은 인간은 더 작아도 벌떡 깨긴 한다만. 아무튼, 그 시각에 집으로 쳐들어 올 인간은 당연히 없어서 동네 아이들이 장난치나(밤 열두 시에?) 싶다가 어쨌든 "누구세요?"를 한 번 해 주었다. 그런데 묵묵부답. 현관문에 따로 렌즈가 달려 있는 게 아니어서 확인할 수도 없고, 말도 않는데 문 열어주면 나만 손해지 싶어서 그냥 두었다. 전에 살던 사람의 지인이 밤에 술이라도 마시고 찾아왔다가 웬 처자 목소리가 들리니 당황한 거겠거니. 어쨌거나 내가 안 자고 있었던 걸 다행으로 알아라. 쩝쩝.

그리고 또 몇 주일 후. 이번엔 밤 한 시가 넘어서였다. 솔미도 솔미도~ 지난 번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에는 대꾸도 안 했다. 이번에도 내가 안 자고 있었던 걸 다행으로 알아라. 근데 정말 당신 누구요? 이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또 있었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씩이나 오밤중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다 보니 점점 초인종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뭔가 그럴듯한 유추가 있을까 싶어 그분한테 얘기도 해 보았지만 그분에게도 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리고 또 잊어버리고 살기를 몇 달째. 그리고 드디어 어젯밤이었다. 솔미도 솔미도~ 잠이 깨었다. 이런 xxx! 주인집 아저씨가 미쳤다고 이 시간에 내려왔을 리는 없어서 무시하기로 했다. 잠이 깼는데 이불까지 걷어 버리면 정말 다시 잠들기 어려워지니까. 그런데 얼레? 응답이 없으니 이 인간(인간일까?) 한 번 더 누른다. 솔미도~ 솔미도~

버럭 성질이 나서 방문을 열고 현관에 나가 외쳤다. "누구세욧!"

헐,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다. 그러나 현관문틈으로 비치는 복도 감지등 불빛은, 분명히 거기 누군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현관 걸고리를 잠그고(이게 녹이 많이 슬어 평소에는 안 잠근다) 나서는 "신고합니다!" 일갈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젠장, 잠은 다 잤네. 멀뚱 멀뚱 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을까. 솔미도~ 솔미도~ 그 때가 세 시가 넘어 네 시 가까운 시각이었을 거다. 이게 정말 xxx!!!

경찰에 신고를 한대도 이 인간인지 귀신인지가 그 때까지 현관 앞에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 그렇다고 내가 문을 열어 이 인간인지 귀신인지를 억류했다 경찰에 넘기는 것도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짧은 순간 그런 판단을 한 후, 하던 대로 무시했다. 그렇게 밤은 갔고, 예민한 나는 잠을 무지 설쳤고, 그 짓을 벌인 인간인지 귀신인지의 정체는 여전히 우리무중이다. 그래서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보았는데, 혹시 보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있을까 싶어 올려본다.

1. 전에 살던 사람의 지인이 (술 퍼마시고) 찾아왔다.
   (가능한 반론) 이 집에 이사온 게 벌써 6개월 전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남의 집을 헷갈리나? 헤어진 애인도 아니고, 전에 살던 사람이랑 6개월 동안 연락 한 번 안 해서 이사 간 줄도 모르나?

2. 동네 사람이 술 퍼마시고 자기네 집인 줄 알고 찾아왔다.
   (반) 술 먹은 인간들은 대개 시끄럽다. 목소리도 행동도. 게다가 집을 잘못 찾을 만큼 술이 떡이 된 인간이 '문 열어' 한 마디도 안 하고, 계단 난간에도 한 번 안 부딪히고 가만히 있다는 건, 내 오랜 술 뒤치다꺼리 역사로 보았을 때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3. 동네 어린이(어른일 수도?)의 장난이다.
   (반) 이 동네는 밤 열두 시 넘으면 어른도 잔다.

4. 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간 보는 도둑이다.
   (반) 낮도 아니고, 대부분 사람들이 집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밤 시간에, 자던 사람마저 깨우는 이런 도둑이 있을까 싶긴 하다. 게다가 한 번으로 모자라 한 번 더 깨워? 도리도리.

5. 귀신이다.
   (반) 그런가? 우리 집이 좀 음습해서 귀신이 좋아하게는 생겼다. 그런데 귀신이 현관문도 통과를 못해서 초인종을 누른다? 귀신이라면 귀신 스테레오타입에 좀 맞게 행동해랏!

6. 쥔장의 스토커다.
   (반) 스토커라기엔 너무 드문드문 찾아온다.

7. 그분이 놀래주려고 왔다.
   (반) 그분은 요새 차도 없고 체력도 달린다. 더군다나 그 나이 먹고, 아니 그 나이 먹기 전에도 이런 장난을 칠 분이 아니다.

쓰다 보니 점점 더 궁금하네. 그렇다고 CCTV를 달 수도 없고, 쿨럭; 아직 그 정도 돈 쓸 만큼 궁금하지는 않은 게지. 그나저나 아~함 졸려.

* 덧붙임 *
이 글은 절대, 일을 작파하고라도 새 글을 올리라고 강요한 ㅇㅇ님의 요청으로 작성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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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0/09/10 10:47 2010/09/1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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