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는 당최 무슨 내용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순전히 '네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선택한 책. 내가 다녀온, 여전히 좋아하는 터키에도 독재정권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 시절, '우리(터키)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심지어 배포되지도 못했던) 팸플릿 때문에 옥고를 치른 후 네 달 하고도 열흘 동안(그것도 추운 계절에!) '부르사'라는 곳으로 유배살이를 했던 네신의 기록. 그 열악한 상황을 특유의 필치로 맛깔나게 써내려갔다. 지은이는 이 책을 '회고록'이라 하고 옮긴이는 이 책을 '자전소설'이라 부르는데, 뭐라 부르든지 간에 참 재미있고 따뜻하고 뭉클하고 슬프다. 아마도 네신 당신 스스로 의도한 것일 테지만, 당신은 정말 정말 고생이 많았을 텐데 나는 재미있게만 읽어서 미안해요.

덧. 간만에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이북.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푸른숲 펴냄 /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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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1 18:03 2011/03/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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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질문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에도, 답할 수 없는 것들에도 아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왜냐고 묻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는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을 덜하게 되는 과정이, 속칭 '어른이 되는'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여전히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왜'냐고 묻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나는 여전히 아이인지도. 그리고 더 이상 '성장'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아이'일 것이다. 그런 '아이'의 눈으로 보아 더욱 즐거웠던 책, <제이넵의 비밀편지>.

<생사불명 야샤르>가 어른 버전 네신표 소설이었다면, <제이넵의 비밀편지>는 아이 버전 네신표 소설이다. 제이넵과 아흐멧, 가상의 두 아이가 주고받는 편지에는, 어릴 때 내가 궁금해 했던, 그러니까 납득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1등만 했어'라고 말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 '애국'하기 위해 저개발 지역으로 가 봉사하라는 연설을 할 때는 언제고 자신의 아들이 그 '오지'로 발령났다며 화내는 저명 언론인, 자신의 아이는 모두 대단한 천재라며 자랑을 일삼는 부모, 늘 사장 욕을 하면서도 사장 아들과의 혼사를 성사시키려는 노동자, 학예회에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쓴 어른들의 연극을 강요하는 선생님...

아이를 가장한 어른의 시선으로 쓴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것이 아이들의 '진짜' 생각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자. 여기 나오는 어른들과, 어릴 적 그 어른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부조리함은 이 아이들이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한편으로 재미있는 건, 그러니까 이 책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건, 이 아이들은 절대 어른들을 직접적으로 비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에게 벌어진 에피소드를 진지하게 주고받을 뿐이다. 그 안에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어른들이고).

하지만 이 책이 무조건 시니컬하고 또 무조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어른'이기에 느끼는 것일 텐데, 이제 나는 어른이 '완벽한 사람'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에게 연민 비슷한 감정도 가지게 된다. 이건 내가 어릴 때는 몰랐을 감정.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 작가의 이 책을 일독한 후 결국 내게 남은 기운은 '따뜻함'이다(하긴, 나는 모든 풍자문학의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 감히 권하건대, 아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어른들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이 책을, 어른인 당신도, 아이인 당신도, 부디 한 번씩 읽어보시기 바란다. 초판이 출간된 지 4,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작가의 말과 옮긴이의 글도 빼먹지 말고!

* 덧붙임 *
퀴즈. 아래 인용문에서 역주(譯註)를 표시하시오.

"메틴, 낭비하지 말랬지? 한 방울 두 방울 모여 호수가 되는거야 우리나라 속담 ‘티끌 모아 태산’에 해당되는 터키의 속담. 매일 이렇게 한 장만 낭비해도 1년이면 공책 몇 권을 낭비하게 되는 줄 아니? 아깝지도 않니?"

종이 버전은 이렇지 않을 것 같은데, 이북으로 읽을 때는 처음 한두 개, 끝의 한두 개 빼고는('제대로' 처리된 역주는 본문보다 더 작은 크기에 갈색으로 표시되었다) 모두 본문과 동일한 색깔과 크기로 처리된 이 역주가 책 읽기에 몰입하는 데 몹시 방해된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역주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아니니까), 나처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독자에게는 충분히 거슬리는 수준. 그러니 '사서' 읽으려는 분들은 이를 감안하시라. 이북 시장,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아직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

<제이넵의 비밀편지>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푸른숲 펴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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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7 10:05 2011/03/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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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즈 네신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생사불명 야샤르>가 나왔을 때였다. 야샤르는 참 좋아서 잘 안 쓰는 독후감까지 썼었는데, 그 후 이 작가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는 싶었지만 마땅찮던 차 별 기대 없이 펼쳐본 책이 바로 이 <개가 남긴 한마디>이다. 별 기대 없이 오프라인 서점에서 읽다가 아쉬움에 쩝쩝 덮어두고 나왔던 이 책을 어느 고마운 분께서 사주셨고, 덕분에 감사히 일독한 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창고에 모셔둔 참.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이지만,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어젯밤 둘러본 땡땡성당 전자책도서관과 아이패드 때문이다. 입사담당자에게 어필하는 자기소개서 쓰는 방법이니, 네이티브처럼 영어 말하는 법이니 하는 실용서가 신간의 절대다수인 여느 도서관과 달리 이 도서관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았는지 제법 많은 '푸른숲'의 책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아직 전자책 도서관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이라 보유권수가 1권뿐이라도 대부분 대출이 가능한 상황. 얏호 하며 리스트를 살피다 다시금 내 눈에 띈 게 바로 이 책이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당장 대출. 당장 이독.

풍자소설에 열광하는 내게 이 책은 적당한 재미와 적당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처음 읽었을 땐 대체 이게 어떤 상황을 비꼰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도 한 번 더 읽으면서 분명해졌고, 출판사가 왜 이 책의 독자를 하필(?) '청소년'으로 상정했는지도 헤아리게 되었다.

나는 바담풍이라 해도 너는 바람풍이라 하라는 부모(유독 '인간'의 부모만 그러하다!)의 이야기, 국세청으로 환생한 도둑고양이 이야기, 뇌물 받는 관리들의 이야기(세어보진 않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주제는 왕과 관리를 비롯한 공공기관, 그리고 아이 키우는 부모가 아닌가 싶다)에 깔깔대다 보면 조금은 가슴이 뻐근해지는데, 그건 아마 우리들 중 누구도 작가가 비판하는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 아니 심지어 당신도 나도 때로는 이 체제유지의 공모자이기 때문일 테지.

뭐 어쨌든, 산책하는 마음으로 스윽 읽기 좋은 책.

아참, 내용 말고 형식, 그러니까 이북에 대해서라면, 며칠 전 혹평한 책보다는 훨씬 낫다. 띄어쓰기가 간혹 이상하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 종이책에 수록되었던 그림까지 함께 넣어 읽는 재미를 높였다. 그림은 무조건 새 페이지에서 시작하도록 되어 있어서 가끔 문단 중간 글이 끊기고 아래쪽이 텅텅 비어서 깜짝 놀라게는 되지만, 이건 만드는 쪽에서 페이지를 일일이 지정할 수 없는 epub 포맷 자체의 특성 때문인 것 같다. 그 외 불규칙한 행간은 앱(북땡땡)의 오류인 듯하고. 역시 모든 이북이 내 참을성을 시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가 남긴 한마디>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이종균 그림 / 푸른숲 펴냄 /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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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5 23:14 2011/02/2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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