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라는 질문은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에도, 답할 수 없는 것들에도 아이들은 무차별적으로 왜냐고 묻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 더 이상 '왜'라고 묻지 않는다. 어쩌면 '왜'라는 질문을 덜하게 되는 과정이, 속칭 '어른이 되는'인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여전히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왜'냐고 묻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어쩌면 나는 여전히 아이인지도. 그리고 더 이상 '성장'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죽는 그날까지 '아이'일 것이다. 그런 '아이'의 눈으로 보아 더욱 즐거웠던 책, <제이넵의 비밀편지>.

<생사불명 야샤르>가 어른 버전 네신표 소설이었다면, <제이넵의 비밀편지>는 아이 버전 네신표 소설이다. 제이넵과 아흐멧, 가상의 두 아이가 주고받는 편지에는, 어릴 때 내가 궁금해 했던, 그러니까 납득할 수 없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1등만 했어'라고 말하는 세상의 '모든' 아빠, '애국'하기 위해 저개발 지역으로 가 봉사하라는 연설을 할 때는 언제고 자신의 아들이 그 '오지'로 발령났다며 화내는 저명 언론인, 자신의 아이는 모두 대단한 천재라며 자랑을 일삼는 부모, 늘 사장 욕을 하면서도 사장 아들과의 혼사를 성사시키려는 노동자, 학예회에서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쓴 어른들의 연극을 강요하는 선생님...

아이를 가장한 어른의 시선으로 쓴 작품이라는 이유로 이것이 아이들의 '진짜' 생각이 아니라는 생각은 버리자. 여기 나오는 어른들과, 어릴 적 그 어른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부조리함은 이 아이들이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한편으로 재미있는 건, 그러니까 이 책을 더욱 세련되게 만드는 건, 이 아이들은 절대 어른들을 직접적으로 비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자신에게 벌어진 에피소드를 진지하게 주고받을 뿐이다. 그 안에서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어른들이고).

하지만 이 책이 무조건 시니컬하고 또 무조건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어른'이기에 느끼는 것일 텐데, 이제 나는 어른이 '완벽한 사람'과 같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에게 연민 비슷한 감정도 가지게 된다. 이건 내가 어릴 때는 몰랐을 감정. 실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어른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이 작가의 이 책을 일독한 후 결국 내게 남은 기운은 '따뜻함'이다(하긴, 나는 모든 풍자문학의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 감히 권하건대, 아이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어른들에게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이 책을, 어른인 당신도, 아이인 당신도, 부디 한 번씩 읽어보시기 바란다. 초판이 출간된 지 4,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작가의 말과 옮긴이의 글도 빼먹지 말고!

* 덧붙임 *
퀴즈. 아래 인용문에서 역주(譯註)를 표시하시오.

"메틴, 낭비하지 말랬지? 한 방울 두 방울 모여 호수가 되는거야 우리나라 속담 ‘티끌 모아 태산’에 해당되는 터키의 속담. 매일 이렇게 한 장만 낭비해도 1년이면 공책 몇 권을 낭비하게 되는 줄 아니? 아깝지도 않니?"

종이 버전은 이렇지 않을 것 같은데, 이북으로 읽을 때는 처음 한두 개, 끝의 한두 개 빼고는('제대로' 처리된 역주는 본문보다 더 작은 크기에 갈색으로 표시되었다) 모두 본문과 동일한 색깔과 크기로 처리된 이 역주가 책 읽기에 몰입하는 데 몹시 방해된다. 물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사실 역주 개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건 아니니까), 나처럼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독자에게는 충분히 거슬리는 수준. 그러니 '사서' 읽으려는 분들은 이를 감안하시라. 이북 시장,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아직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이겠지만.

<제이넵의 비밀편지>
아지즈 네신 지음 / 이난아 옮김 / 푸른숲 펴냄 / 2007년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1/03/17 10:05 2011/03/17 10:05
, , , , ,
Response
No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27


블로그 이미지

투덜투덜

- etcetera

Archives

Authors

  1. etcetera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246291
Today:
219
Yesterday:
1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