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들은 결혼식에 잘 안 간다. 나는 청첩장 주면 웬만하면 간다. 사진은 안 찍고 신부랑 인사만 하고 바로 밥 먹으러 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친구들이 결혼식에 안 가는 이유는 글쎄, 안 물어봤지만 결혼제도와 결혼식에 대한 반감도 있을 테고(내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안 했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대부분 여성주의자다.) 돌려받을 기약 없는 축의금 헌납에 대한 반감도 있을 테다. 이게 참으로 당연한 것이, 결혼식에 가도 좋을 만한 '친한 친구'는 정작 결혼에 뜻이 없고, 결혼소식을 알리는 사람은 대개 어중간한 관계니까. 기꺼운 마음으로 '축의'하기엔 좀 찝찝하다. 그럼 나는 왜 가느냐. 일단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는 친구들과 좀 다르다. '사기업'에 다녔고, 현재도 다니고 있으며,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등을 화제에 올리는 사람들과 취미생활도 하는 나로선 결혼식 생까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것도 아닌 게, 예전에는 저런 결혼식 왜 하나, 왜 가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내 인생도 아닌데, 일껏 오라고 챙겨 줬는데 기대에 부응해 주자 하는 생각이다. 축의금만 전달할 수도 있지만 뭐, 난 남들이 싫어한다는 결혼식 뷔페도 좋아한다, 흠흠; 이왕 선택한 결혼, 잘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물론 있고.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돌려받을 길 없는 축의금 총액을 생각해 보면 가끔 아깝기도 하다. 그거 회수하자고 맘에 없는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쩝.

그런 저런 생각을 하다 어느 날인가는 드디어 결혼만이 인생지대사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을 제외하고는) 결혼이나 아이만이 타인에게 크게 축하 받을 가치가 있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따분하고 재미없다. (한편으로는 외려 결혼에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있으니까 고작 결혼 '따위'로 사네 못 사네 지지네 볶네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누군가에게는 결혼이 일생일대의 이벤트이자 큰 돈 들어가는 일이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여행'이, '취업'이, '내 집 마련'이 일생일대의 사건일 수 있다. 결혼하지 않은, 할 생각도 없는 누군가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나는 가끔, 결혼할 생각이 없어 뵈는 (뭐,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상관은 없다만) 친구들에게 일 삼아 축의금을 낸다. 오늘은 한 명이 최근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대서 약간의 축의금을 넣었다. 그리고 비혼여성들의 이런 축의금 품앗이가 더 널리 이루어지길 소망해 본다. '너 이번에 회사 정리하고 유학 간다면서? 큰 결심했네. 잘 다녀와'라던가, '강아지 입양한다구? 오랫동안 노래 부르더니 잘됐다 야. 진짜 축하한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던가, '그 업소용 에스프레소 머신이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게냐'라던가... 뭐 이런 말들과 함께 쓱 건네는 축의금 봉투,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얼마나 즐거운가.

요즘에는 '내 집'으로 이사하면 '청첩장'을 돌려 볼까 하는 상상을 한다. 나의 '내 집 마련'은 일생일대의 사건이자 새로운 출발이며 앞으로 더 잘 살겠다는 다짐이니까. (야, 집이랑 결혼하냐?) 집에 다 불러들이기엔 집도 좁고 너무 번거로울 테니까 예식장이나 뷔페식당 하나 잡아서 밥들 한 끼 먹이고, 축의금도 물론 받고! 본식에서는 집을 어떻게 마련하게 되었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동영상도 상영하고 축가랑 축하 댄스도 받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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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2/04/24 13:36 2012/04/2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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