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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6 '차림사' 잡상 by etcetera (15)

1.
예전에 민우회에서 호칭의 성별 불평등을 바로잡아 보자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 가장 '문제적'이라 지적되었던 단어가 '남편' '아내' '올케'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이에 부부간 호칭으로 적당한 말을 공모하였고 '배우자'라는 단어가 자체 선정되었다.

한데 당시 국어학에 나름 일가견 있어 뵈는 어떤 분은 '배우자'는 이름말이므로 이를 부름말로 사용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하는 지적을 하셨더랬다. 당시에는 뭔 소리여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 이후 일상에서 이 문제를 가끔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학부 때 어떤 국문과 교수님은 대체 왜 당신을 '교수님'이라 부르냐며, '교수'는 지칭이요 호칭은 '선생님'이니 '선생님'이라 부르라 열변을 토하시기도 했구나. ('송수화기'를 왜 '수화기'라 부르냐며 분개하셨던 꼬장꼬장한 그분은 안녕하시겠지?)

2.
차림사. 이 말을 처음 들은 건 작년 말 받아본 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에서였다. 미안하지만 솔직히 처음 든 느낌은 별로, 였다. 총회에서 주력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도, 며칠 전 '차림사'를 널리 알리고 써 달라는 홍보문자를 받았을 때도, 그닥 호응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차림사... 왜 마음에 안 들어오지? 나는 이제 여성주의자가 아닌 것인가? 벌써 '꼰대'가 되어버린 건가? 아냐, 나도 식당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분노한다고. 그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시길 원한다고.

차림사. 우선, 호칭(부름말)보다는 지칭(이름말)에 더 어울린다는 데 그 어색함이 있다. 호칭, 즉 부름말이란 상대를 앞에 놓고 대화할 때 이름 대신 쓰는 말이고 지칭이란 제3자에게 그 사람이 누구누구임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잖나. 이를테면 '의사'나 '교사'는 지칭이고 그들을 부르는 말은 '선생님'이듯이. 직업을 칭하는 말에 주로(?) '사'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아무리 입에서 굴려 봐도 직접 부르기보다는 일컫기 좋은 말이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의사님, 왼쪽 어깨가 아픕니다'라거나 '간호사님, 이 주사는 얼마나 아픈가요?'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암만 상상해 봐도 '차림사님, 여기 좀 치워 주시겠어요?'는 입에 붙을 것 같지 않다.

'차림'이라는 순우리말과 '-사(士)'라는 한자의 조합도 어색함을 더한다. '심적(心的)으로'는 이상하지 않은데 '마음적(-的)으로'라는 말은 이상한 것처럼. 오히려 글자수는 더 길지만 '가정관리사'나 '궁중요리사'는 괜찮은 것처럼.

개인적으로는 (다른 건 '안 개인적'이겠냐마는;) 요즘 새로 생기는 웬만한 직업에 모두 '-사(士)'가 붙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사전에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직업'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안내하고는 있지만, 이 '일부 명사'가 원래 다 좀 '있어 보이는' 직업 아니던가(사전도 '변호사/세무사/회계사' 이렇게 예를 들고 있다). 그러던 것이 너도 나도 '있어 보이려고' 갖다 붙이다가, 이제는 '그냥 저냥' 쓰이게 된 것 아닌가? 그리하여 '의원(醫員)'이 '의사'가 되고 '간호원'이 '간호사'가 되고 '운전수'가 '운전사'가 되고. 해당 직업들을 비하할 의도는 당연히 없으나, '나의 직업'을 사회적으로/이름으로 인정받는 방법이 끝에 '-사'를 붙이는 것밖에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있다. 아무 직업에나 '사'자를 붙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 존재를 긍정하는 방법이 모두 '선비(士')가 되는, 너도 나도 족보 사서 '양반'이 되는 것뿐이었을까 하는 거다. 예서 뻥튀기를 좀 더 하자면 '끼어들기'와 '새판짜기' 중 '끼어들기'를 선택한 것 같고, '끼어들기' 전략이 늘 그렇듯, 뭔가 다른 여지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

3.
한데 또 생각해 보면 공히 호칭과 지칭으로 쓰이는 직업/직함도 있다. 변호사, 기자, 의원, 부장, 과장 등등. 대개 남들 앞에서 명함 정도 들이밀어도 될 만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은 점점 지칭으로도 호칭으로도 쓰이는 것 같다. (근거는 없다. 사전조사 전혀 없이 이 글 쓰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그리고 운전기사를 부를 때 '기사님'이라고도 하는 걸 보면 호칭과 지칭의 경계가 점차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러고 보면, 똑같이 '사'자 돌림인데 (대부분 남성인) 운전사를 '기사님'이라 부르는 건 자연스럽고 (대부분 여성인) 식당 여성노동자를 '차림사님'이라 부르는 건 어색할 것 같다는 생각은 내가 반성하고 고쳐야 할 지점일지도. 그리고 이 모든 잡상은 어쩌면 단순히 새로 생긴 단어에 대한 낯섦일지도. 그렇게 부르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일단 힘을 실어주며 함께 가는 것이 좋을지도.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차림사님'을 '차림사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부르고 싶어질까?

아마도 나는 식당에 가면, 그냥 여지껏 해온 것처럼 식당의 분위기와 구조, 음식의 평균가와 친숙도와 종업원의 수와 기타등등에 따라 1)벨을 누르거나 2)메뉴판이나 손을 머리 위로 조용히 들거나 3)'저희요~' 하거나 4)주방이나 카운터에 찾아가 원하는 바를 얘기하거나 5)필요한 물건을 직접 공수할 것이다. 그리고 눈 마주치며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할 것이며, '잘 먹었습니다' 꾸벅 인사할 것이다. 아직은(?) '차림사님~'보다는 지금이 좋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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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2/06/26 17:30 2012/06/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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