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Results for '송충이'


1 POSTS

  1. 2013/06/10 송충이를 애도함 by etcetera (7)
출발한 지 5분이 되지 않아 발견된, 눈썹(아 그러니까 눈썹, 이라 함은 아래 사진 우측 하단에 보이는, 차량용 눈썹, 되시겠다)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녀석. 웃기다가 안쓰럽다가 무섭다가. 차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되니까 일단 창문은 꼭 닫고 말을 건다. 꼭 붙잡고 있어. 10분만 더 가면 설 거야. 섣불리 움직였다간 차도로 떨어져. 그럼... 알지?

하지만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던 거지. 녀석은 눈썹을 벗어나 보닛을 낑낑 기어 올라와 마침내 앞유리에 붙었다. 신묘한 빨판 덕분에 용케 유리에 붙어 있는 털북숭이는 물론, 징그러웠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생긴 건 네 탓이 아니지. 아니 '탓'이라니, 송충이 세계에선(그런데 저게 송충이가 맞긴 한 걸까) 네가 엄청난 미인에 모험가일 수도.

워셔액과 와이퍼로 저 녀석을 치워 버릴까, 세 번 정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처치'하기에 녀석은 너무 컸다. 저렇게 큰 생물을 내 손으로 없애 버리면 두고 두고 생각이 날 것이다. 아 그러니까 움직이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 줘. 이제 5분만 가면 된다고. 그럼 어떻게든 널 막대기에 옮겨서 녹지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해 줄게.

하지만 녀석은 앞유리는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 모양이다. 낑낑대더니 계속 올라간다. 야야야! 그만 가. 올라가면 안 된다고! 녀석은 어느새 지붕으로 사라졌다. 야!!! 안 돼!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드디어 목적지 도착.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붕과 뒷유리를 살폈다. 주차 관리해 주시는 분이 왜 그러냐 물으신다. 아 예. 송충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거든요. 별 시덥잖은 사람 다 본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날아갔겠지 뭐. 예...

계속 봤더라면 귀여울 수도 있었던, 주황색 발이 요새 유행하는 신발만큼 예뻤(!)던 털북숭이. 마지막 순간 고통은 적었길.

차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송충이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6/10 15:24 2013/06/10 15:24
Response
No Trackback , 7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