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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08 사랑한다, 론리 플래닛 by etcetera (10)
대충 인터넷을 뒤져 대충 경로를 정하고 인-아웃 도시를 결정해서 항공권 예매를 한 다음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마존에서 론리 플래닛 킨들 버전을 구입한 것이다. 나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 세 나라에 묵게 될 것이다. 한 나라를 돌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일여행 일국가 원칙을 고수했던 나이지만(이라고 얘기하면 뭔가 여행 좀 다녀 본 사람 같...은가? 흠흠;), 마추픽추만으로 만족하려던 나를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이 붙들었고, 볼리비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는 칠레에서 오는 편이 더 쉬워서 본의 아니게 3국을 거치게 되었다. 체류기간은 쓰인 순서대로 될 확률이 높고, 어쩌면 산티아고에서는 와인 한 잔 맛 보고 후다닥 비행기를 타게 될 지도. 이스터섬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나절 정도 하고 정보를 찾아 보았으나 그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만큼 매력적이진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게만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마추픽추에 가겠다는 내가 멀쩡해 보이진 않을 테니까.

론리 플래닛의 이북 버전은 아직 적응하기 어렵다. 그러나 애초에 다른 여행서를 살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고, 다행히 내겐 론리 플래닛을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독해능력이 있다. 킨들 앱에는 영영사전도 딸려 있고. 아무튼 킨들 버전 론리 플래닛에 대한 얘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기억해 두고 싶은 내용이 있어 기록해 두려고 한다.

마추픽추에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등등을 취합해 보면 1)현지 여행사를 통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것(선택에 따라 당일여행이 될 수도, 1박 2일이 될 수도 있다), 2)직접 기차표와 입장권을 예매해서 가는 것, 3)현지 여행사를 통해 잉카 트레일(Inca Trail)을 따라 걷는 것, 4)경비절감을 위해 기차를 타지 않고 우회하는 것 정도로 정리된다. (이건 가이드나 자료를 봐도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던 내가 결국 사태를 파악한 후 자의적으로 한 분류라서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보통 1)이나 2)를 선택하고, 3)은 돈은 돈대로 쓰고 시간과 체력소비도 크고(기분 내기는 물론 최고겠지만), 4)는 돈은 엄청 아낄 수 있지만 신체 건강한 20대가 아니면 몸살 나기 딱 좋은 선택지다. 어쨌든 이 옵션들 중 론리 플래닛이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것은 3)이다.

잉카 트레일이 무엇인고 하니, 보통은 기차와 버스 등으로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길을, 옛날 잉카인들처럼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다. 적어도 너댓새는 걸리고, 중간에 호스텔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오로지 캠핑뿐. 따라서 현지 여행사(허가 받은 여행사만이 잉카 트레일을 조직할 수 있다)에 신청하면 그룹을 지어(돈 일이백 정도? 들이면 나만을 위한 프라이빗 투어도 가능은 하단다) 텐트 짊어지고 가는 사람, 음식 준비해줄 사람 등이 여행자와 동행한다고 한다. 인기가 많아 성수기 때는 당연히 몇 달 전, 비수기라도 몇 주 전에는 신청해야 갈 수 있다고 한다. '신청'과 '가능'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입장가능 인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제한'에는 여행객뿐 아니라 가이드나 스태프도 포함된다. 어쨌든 오르는 길에 보이는 풍광도 멋있고, 무엇보다 옛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이니 마추픽추를 그리던 사람들에게는 꿈의 루트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텐트부터 식기까지 다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니 스태프 수가 만만찮을 터. 어떤 분의 후기를 보니 여행객과 스태프의 수가 거의 반반이었다고 한다 ('거의'라고 하는 건 스태프가 한두 명 더 많았다는 뜻). 여행객들의 개인 짐도 만만찮을 것이다. 침낭 등 캠핑용품을 몇십 킬로그램씩 이고 지고 며칠씩 가는 것이 여행객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래서 개인 짐꾼을 고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모양이다. (개인 짐을 들기 위한 용도로만 짐꾼을 고용할 수 있는지, 공용 짐을 드는 사람들이 무게를 분배해 개인 짐까지 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때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짐꾼이라니, 그룹에 꼭 필요한 짐도 아니고 (그조차마음이 편치 않을 마당에)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나 좋자고 내 짐 갖고 올라가면서 알량한 몇 푼으로 내 짐을 남의 어깨에 짊어 지우다니. 물리적인 짐은 줄 지언정 마음의 짐은 더 무거워질 게 뻔했다. 그렇게까지 해서 잉카 트레일을 타야 하나? 대체 이 짐꾼들은 얼마나 받고 그 일들을 해내는 거지? 엄청난 회의에 빠져 있을 때 딱 등장하는 회색 박스. “PORTER WELFARE(짐꾼들의 복지)”라는 제목이다 (배경색 있는 텍스트라 당연히 눈에 엄청 잘 띈다). 아마도 저작권 위반이겠지만, 비상업적 행위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해당 내용을 초벌번역 수준으로 옮겨 본다.

과거 잉카 트레일의 짐꾼들은 극심한 저임금과 엄청난 짐,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렸다. 비교적 최근의 법률들은 짐꾼들에게 최저임금 S170(역주: 한화로 7만 원 정도)과 양질의 잠자리와 음식, 현장에서 다친 경우 적절한 처치를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트레일의 체크포인트들에서는 짐의 무게를 재도록 한다 (각각의 짐꾼에게는 20kg의 그룹 장비와 5kg의 개인장비가 허용된다).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짐꾼들을 도와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의 짐을 현명하게 고르는 것이다. 양심적인 여행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여행사들만이 잘 정비된 장비와 조직, 가이드를 갖추고 있다. 양질의 잉카 트레일은 최소 미화 500 달러가 들 것이다. 이보다 저렴한 상품은 삭감된 원가를 보전하기 위해 대개 잉카 트레일과 기타 트레킹에서 짐꾼들의 복지를 깎기 마련이다. 본 여행서에서 추천하는 회사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

트레일 과정에서 당신이 더 해줄 수 있는 일:
  • 짐을 너무 많이 챙기지 말 것. 누군가가 여분의 무게를 져야 할 것이고, 그로 인해 짐꾼은 본인의 중요한 짐을 놓고 가야 할 수도 있다.
  • 식사 텐트가 짐꾼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경우, 텐트에 너무 늦게까지 남아 있지 말 것.
  • 음식이 마음에 들었다면 요리사에게 팁을 줄 것. 짐꾼들에게는 늘 팁을 줄 것.
  • 팁은 솔(역주: 페루의 화폐단위)로 개인에게 직접 줄 것. 나눠 가지라는 의미로 여행사나 가이드에게 주지 말 것.
  • 잉카 트레일 때 썼던 장비를 다시 사용할 계획이 없을 경우, 좋은 침낭 같은 장비는 짐꾼들에게 황금과 같다. 여행이 끝나면 따뜻한 재킷, 헤드램프, 작은 도구들(pocket tool) 같은 것들을 주는 것도 사려 깊은 일이 될 것이다.
  •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경우 가이드와 여행사에 얘기하고, iPeru(www.peru.info) 지점이나 온라인에 정식으로 불만을 제기할 것.

가이드와 장비는 매해 점검을 받도록 되어 있으나 무책임하게 운영되는 회사를 정지시키는 데는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트레커들에게 당신의 피드백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짐꾼들의 삶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2011년 Banff Film Festival에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Mi Chacra를 찾아 볼 것.

엄청난 노동착취라 할 만한 일조차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제3세계 사람들의 증언은 늘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윤리적으로 내 짐을 내가 모두 드는 것이 옳겠지만 그것은 곧바로 짐꾼들의 생계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그리고 론리는 어떻게 하면 여행객들의 마음의 짐을 덜고 짐꾼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하고 있었다. 저 구체적인 팁들, 괜히 세계 최대의 여행안내서 출판사가 아닌 거다. 저 박스만으로도 론리 세 권에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살아생전에 저런 마인드로 만들어진 국문 여행서를 볼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저 위에서 말한 2)의 경로로 마추픽추를 방문하게 되겠지만, 마추픽추에서 페루의 짐꾼들을 보게 되더라도 막연히 마음 아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고맙다, 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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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3/07/08 11:56 2013/07/08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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