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얘기해 두어야겠다. 난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눈과 머리에 집어넣기도 바쁜데 언제 사진 찍나 하는 생각. 중요한 건 굳이 사진 안 찍어도 기억에 남는다는 생각. 사진 찍어봐야 나중에 처치곤란이라는 생각. 어차피 사진은 내가 보고 있는 걸 그대로 담아내지도 못한다는 생각. 너도 나도 사진 찍기부터 하는 데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뭐 이런 게 내가 여행사진에 대해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선 여기에 하나를 더 얹었다.

과일이 잔뜩 쌓인 시장풍경 같은 거, 참 찍고 싶었다. 구두 닦는 사람도 찍어보고 싶었고,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도 찍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영 불편했다. 길거리나 사물을 찍는 것도 편치 않았고, 사람이 포함된 모습은 언감생심, 사진기를 꺼낼 수조차 없었다. 뭐랄까, 그들에게는 '일상'일 뿐인데, 고작 스쳐가는 '관광객'인 내가 그들을 '신기한 것/사람/문화'로 대상화한다는 느낌이 자꾸 들었고, 무례한 짓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약 그분에게 보여줘야겠다는 목표도 없었더라면 사진은 이보다도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여행기에 사진은 별로 없다. 얼마 안 되는 사진도 꼭 필요할 때만 넣을 거다. (편집 힘들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사진 별로 없는 여행기라니, 될 법한 소리인가 싶지만, 그림 없는 이야기책도 다 재미있게 읽고 컸다는 데 생각이 미치다 보니 별 문제될 게 없다 싶다. 문제는 내 글이 그 이야기책들만큼 재미나진 않다는 데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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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2 09:58 2013/09/0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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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여행 블로그에, 현지인들의 사진을 마구 마구 올려 놓고, 그 사진 주인공들에게 허락 받고 찍은 거냐 묻는 사람에게 당당하게 "아니, 허락 안 받았어. 웃기시네. 넌 사진 찍을 때마다 그 사람한테 다 허락 받고 찍니?" 하는 사람에게 진심 놀라는 중. 초상권 운운 이전에 타인을 전혀 배려할 줄 모르는 무식한 여행자(대체 그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 걸까)의 강짜인가, 아니면 허락 받지 않고 사진을 찍고, 그걸 개인 매체에 올릴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앨리스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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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1 14:58 2013/07/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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