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은 열심히도 쓰던 일지는 여행 열흘이 넘어가며 초 간단하게 바뀌고 있다. 이날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다.

8/11 안녕 페루 안녕 볼리비아

새벽에 푸노 도착. 우로스 투어. 코파카바나 도착. 물가 싼데 따신 물 잘 안 나오고 와이파이 잘 안 됨. 옆방 소리 다 들리는 방. 전기온수기 쓰다 감전될 뻔. 고산증세에 시달림. 망할 놈의 환율.

그러니 이제 기억을 더듬어 살을 붙여야 한다. 그날 무슨 일들이 있었더라...

그날 밤, Cruz del Sur 터미널에서 L님과 작별했다. L님은 집이 그 근처라며 버스표도 미리 끊어주고(심지어 가장 좋은 자리로 불리는 2층 맨 앞자리), 그 귀하다는 신라면 컵과 소세지 두어 개를 손에 쥐어 주었다. 늘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해서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말 그대로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는; 한국에 돌아오면 맛있는 걸 많이 사주겠다 했는데 여전히 해외를 떠도는 L님;

밤차는 해 뜰 때까지 좀 길게 길게 갔으면 좋겠는데 이번에도 다섯 시간 만에 푸노 도착. 그 유명한 티티카카 호수를 보고, 호수에 갈대를 엮어 섬을 만들어 산다는(실은 ‘살았다는’) 우로스 섬을 탐방한 다음 볼리비아로 넘어갈 참이다. 버스 터미널에서 몇 군데를 돌아 오후에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배낭을 맡겼다. 그런데 앗, 터미널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다. 볼리비아는 공중화장실에서 돈을 받는다고 하던데, 국경지대라 그 문화가 들어온 건지, 물부족 지역(아이러니하게도 티티카카 호수 근방은 물이 부족한 지대라 함)이라 그런지. 그러나 공짜로 화장실 쓰던 사람에게 돈 내고 쓰는 화장실이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 일단 참기로 했다. 밖에 나가면 더 싸거나 공짜인 화장실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 그리고 푸노 구경을 나갔다가... 결국 더 비싼 돈 주고 화장실을 쓰게 되었다는;

우로스 섬 투어는 여행사를 끼나 안 끼나 비슷한 가격이라고 한다. 터미널에 30솔인가를 부르는 삐끼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이들은 우로스 여행부터 볼리비아 티켓까지 세트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음) 굳이 상대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 해안, 아니다 호안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선착장에서 배 티켓과 입장권을 구입하면 된다. 20솔인가 25솔인가 들었던 듯(가계부가 날아가서 확인 불가. 흑)

우로스 섬은, 갈대섬으로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하는 섬이다. 예전에 쫓기던 우로스 족이 티티카카 호수로 들어가 갈대로 섬을 만들고 살았다고 하는데, 우로스 족은 이제 없고, 페루 사람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며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한다고; 그래도 갈대섬 밟는 경험이 흔한 건 아니니까 뭐.

멀리서 본 갈대섬
<멀리서 본 갈대섬>

배에서 내리면 폭신한 땅(?)이 밟히고, 섬의 주인(?)이 나와서 갈대섬의 원리에 대해 (물론 에스파냐어로) 설명해 준다. 뭐 잘 모르겠고, 물에 닿은 갈대가 삭으면 새 갈댓단을 위로 계속 쌓는다는 얘기일 거다(론리인가에 그렇게 나왔다).

갈대섬 바닥과 쥔장의 그림자
<갈대섬 바닥과 쥔장의 그림자>

그러나 이들의 목적은 그 설명에 있지 않다. 관광객용으로 특별 제작한 배, 그러니까 민속배도 아니고 뭣도 아닌, 정체불명의 퓨전 배를 섬 옆에 대더니 체험하고 싶은 사람은 돈을 내고 타란다. 다들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는 와중, 갈대섬 밟는 데 의의를 둔 나와 돈 없다는 브라질 청년만 그 섬에 계속 있겠다는 의사를 표시. 그랬더니 우리에게 슬쩍 다가와 깎아줄 테니 타란다. 못 이기는 척 그러마고 탔더니 다른 섬으로 이동한 후 풀어준다. 보아 하니 카페 섬이다. 뭐 사 먹고 사 입으라 이거지. 산책하고 고양이랑 놀고 다른 사람들이랑 말도 좀 섞고 하다 돌아왔는데, 슬슬 편두통이 찾아왔다. 이것이 고산병 증세로고. 약을 먹었지만 큰 도움은 안 됐다. 그저 시간이 지나 몸이 적응하길 바랄 수밖에.

기원불명 정체불명, 우로스섬의 배
<기원불명 정체불명, 우로스 섬의 관광객용 배>

티티카카 호수의 녹조라테
<티티카카 호수의 녹조라테; 아까 그 파란빛 물과 같은 호수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버스로 국경을 넘는 건 처음 겪는 신기한 일. 우왕좌왕 하다가 도장을 하나 빼먹긴 했지만 어쨌든 볼리비아. 코파카바나다.

밤에 도착한 코파카바나는 그 유명한(?) 이름에 걸맞지 않게 티티카카 호수보다는 흙먼지바람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옛날 ‘신작로’ 같던 거리들. 페루에서 넘어온, 혹은 볼리비아에서 넘어갈 그 많은 버스들이 씽씽 달리면 뒤에는 한참동안 모래먼지가 날렸다. 호숫가 역시, 그렇게 건조할 줄이야.

블로그 몇 군데서 추천해 준 숙소에 들러보았으나 방이 없거나 흥정이 안 되거나 너무 비쌌다. 그래도 다행히 호텔 싱글룸 하나를 얻어 이틀을 묵기로 했다. 방은 나쁘지 않았고, 호텔답게(!) 수건이랑 비누 등도 구비가 되어 있었지만 옆방 소음이 잘 차단되지 않는 건 단점. 그래도 추/비추를 선택하라면 ‘추’ 쪽으로 기울 뻔했으나... 전기온수기 샤워 후 물을 잠그려고 수도꼭지에 손을 댔다 가벼운 감전을 경험한 후 ‘비추’로 바뀌었다. 그것만 빼면 가격도 나쁘지 않았고, 주인도 친절했고, 아침도 주고 좋았는데. 이때 식겁해서 그 다음 날은 머리는 감지 않고 찬물에 샤워만 했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방이 좋거나 싸더라도 전기온수기가 달린 숙소는 잡지 않았다. (볼리비아는 전체 인구의 25% 정도가 극빈층이고, 당연히 온갖 물자가 풍족하지 않고, 당연히 가스 시설 등이 잘 갖춰지지 않아 성능 떨어지는 전기온수기가 비교적 흔한 편이다.) 실제로 전기온수기 감전사례도 있다고 하고.

호숫가에 왔으니 물고기를 먹어야지. 얼마였더라... 아무튼지 간에 아주 싼 가격에 디저트까지 나오는 물고기 정식을 먹고 태양의 섬 투어(정확히는 왕복 뱃삯)를 예약하고 들어와 잠들었다. 국경 넘을 때 환율이 아주 개판이었는데 페루랑 완전 비교되는 물가 때문에 마음이 풀렸다는.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4/08/27 13:11 2014/08/27 13:11
, ,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202

황열 예방접종은 볼리비아 비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발견한 거의 모든 정보가 볼리비아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고, 비자를 받으려면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 없이 그냥 돈만 내고 비자를 받았다고도 하고, 아무튼 볼리비아 비자에 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믿을 만하겠지 싶어 찾아간 주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에 있는 비자 정보는 2010년 게시글이었고, 심지어 주볼리비아대사관에서 작성한 것으로 되어 있는 외교부 게시물에는

ㅇ 외교관 및 관용 여권
금년4월부터 비자면제협정이 발효되어 외교관여권이나 관용여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단기방문시 (90일미만) 별도로 비자를 발급받지 않아도 됩니다.
1년에 최대 체류기간은 90일 초과할 수 없습니다.

ㅇ 관광 비자
한국 일반여권을 소지한분들은 볼리비아 입국시 비자를 발급받으셔야 합니다. 한국이나 해외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 혹은 명예영사관에서 발급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여권소지자의 경우에는 도착비자가 가능합니다, 30일까지 유효한 관광 비자를 공항에서 $51을 납부하시면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동 비자는 연장시 (2회까지 가능, 총 90일) 마다별도 Bs 210 ($30.00)비용을 부담하셔야 합니다.

(참고: 위 인용문을 클릭하면 원문으로 연결됨. URL 너무 길어 못 넣겠음.)

이렇게 되어 있으나 대체 "금년4월"이 언제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2009년인지 2012년인지 알 게 뭐람. 해서 저 글이 게시된 연도를 찾아 한참 헤맨 끝에 2011년이라는 사실 발견. 그럼 어쨌든 저게 가장 최신 정보겠구나.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 받을 때 이제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는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볼리비아 비자, 라는 검색을 넣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를 갖춰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고민 끝에 예방접종을 하기로 결심했다. 첫째, 정작 갔는데 규정이고 나발이고 일단 증명서를 내놔라, 할 경우 골치 아파질 수도 있다. 둘째, 그 경우 현지에서 주사를 맞는다 해도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등으로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리고 백신 부작용이 생겼을 때 현지에서는 대응하기가 어렵다. 셋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비자 여부와 관계없이 남미는 황열 위험지역이고, 위험인자는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황열은 전국 검역소와 국립의료원,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맞을 수 있다. 인천검역소는 너무 먼 것 같아서 일단 국립의료원 시도.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단다) 토요일은 그런 거 안 해주고 무조건 월~금 중 와야 한다는 얘기에, 그렇다면 여기서 좀 더 가까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가자 싶어 병원을 바꿔 예약 시도. 한데 요새 휴가철이라 환자가 많아 예약이 불가하단다. 그런데 뚝딱뚝딱 검색해 보더니 바로 다음날 한 자리 비었다며 바로 올 수 있는지 묻는다. 이거 저거 잴 때가 아니다. 국립의료원에서는 최소 출국 열흘 전에 맞으라 했으니 (항체가 생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열흘) 일단 무조건 예약. 그런데 이게 그냥 맞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반드시 진료를 거쳐야 한다는 게 함정. 특진교수일 경우 당연히 특진료가 추가된다는 게 또 다른 함정.

그래 어제 점심시간을 틈타 빛의 속도로 도착하여 미리 처리해둘 만한 일들(인지 사전 구입.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것으로 27,000원이다. 현금만 받는다. 증명서 발급신청서도 미리 작성해 두면 좋다)을 샤샤샤샥 해치우고 드디어 진료를 받았다. 친절한 특진 선생님. 어디를 가냐, 안데스 산맥 오른쪽으로도 가냐 (안데스 산맥 위치를 몰라 오른쪽으로 가는지 안 가는지 말씀을 못 드렸다; 그래도 '제가 세계지리를 가 맞아서 잘 몰라요' 소리는 꾹 참고 안 했다), 지도를 보여주며 황열 위험지역과 말라리아에 A형간염에... 걸릴 수 있는 온갖 전염병을 다 말씀해 주신다. 엄머, 나 그런 데 가는 거였어? 한데 더 무서운 건, 이 냥반이 뭘 억지로 권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 정도 나이면 A형간염 항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니 니 알아서 해라, 말라리아도 아주 고산지대로 가면 모기가 못 올라오니까 일정 생각해서 니 알아서 해라, 일정 정해지면 동네 의원 가서 처방 받아도 된다, 장티푸스도 위험하긴 하지만 깨끗한 거만 먹고 하면 괜찮을 테니 니 알아서 해라, 뭐 이런 식인 거다. 차라리 겁을 주시라구욧!

결국 말라리아 정도는 맞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되겠냐 여쭸더니 말라리아는 맞는 거 아니고 먹는 거라고;;; 이왕 결정한 거 뭘 다른 병원에 또 가서 처방 받겠냐 싶어서 처방을 요청했다. 그리고 또 설마 하고 (피임약처럼) 날마다 먹는 건가요? 했더니, 그런 약도 있긴 하지만 너무 번거로우니 일주일에 한 알씩 먹는 약을 주시겠다고; 으하하; 말라리아 예방약은 위험지역에 들어가기 1주일 전부터 1주일에 한 개씩, 밥과 함께 내지는 밥 먹은 직후에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내장기관에 부담이 되는 약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위험지역을 빠져나와서는 무조건 4주 동안 추가로 먹어줘야 한단다. 선생님이 4주 + 4주 이러셔서 앞뒤로 똑같이 맞춰 먹는 건 줄 알았더니 앞이 몇 주건 뒤는 4주라고;

조단조단 설명도 잘 해주시는 선생님한테 잘 다녀오라는 인사까지 받고 나와 수납하러 갔더니 오만 원 돈을 달래. 근데 그 내역 대부분이 황열 주사비가 아니었다는 게 진짜 함정이지. 말라리아약이 제일 비쌌고 (한 알에 3,000원 가까이) 그 다음이 진찰료 + 선택진료료(으으... 상급종합병원의 위력;). 정작 주 목적인 황열과 관련해서는... 행위료 1,287원. 끝. 1종 법정전염병이라 그런지, 백신 자체는 무료인가 보다. 얼결에 인지대까지 7만 원이 넘는 돈을 지출하고선 주사 맞으러 슝슝. 아, 주사기 엄청 쪼꼬맣고 귀여웠는데 상당히 아팠;;; 입만 나불대는 쥔장답게 몸은 꼼짝 않고 (의료행위에 방해가 되면 안 되잖아) "어머 선생님, 이거 아프네요!" 징징거렸다. 위쪽 팔뚝에 맞았는데 저녁 동안만 약간의 근육통이 지속되었고, 원래 열감을 달고 사는 편이라 특별히 열이 오르거나 한 건 모르겠다.

이러구러 원무과에 가서 증명서를 받고 (여권원본 또는 사본 필히 지참) 다시 부릉부릉 돌아옴. 참고로 황열 증명은 10년간 유효. 아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접종증명서 사진이 전부 노란색이라서 "황열(Yellow fever)"이라 노란색인 줄 알았더니 그냥... 증명서가 그렇게 생긴 거였다. 혼자서 센스 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 근데 오늘 검색해 보니 검역소에서는 진료비와 주사비가 공짜란다 (인천항에 있는 검역소나 공항에 있는 검역소에 예약하고 가면 됨). 증명서 발급을 위한 인지대만 내면 된단다. 아 왜 늘 필요한 정보는 뒤늦게 발견되는가. 결국 나는 또 돈으로 시간을 산 셈이다. 이렇게 병원 진찰카드만 하나 늘리고.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tcetera

2013/07/11 16:26 2013/07/11 16:26
, , , ,
Response
No Trackback , 17 Comments
RSS :
http://etceteras.pe.kr/rss/response/160


블로그 이미지

투덜투덜

- etcetera

Archives

Authors

  1. etcetera

Calendar

«   2018/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1246303
Today:
231
Yesterday:
1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