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차코 해안에 내리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로 갈대배(totora)이다. 이 지역 사람들(아마도, 남자들)은 아주 아주 옛날부터 갈대를 엮어 1인용 고기잡이 배를 만든다. 론리에 따르면 2,000년 전 모체(Moche) 도자기에도 이 배가 그려져 있다고. 하지만 이 배도 소모품이라 수명은 고작 몇 달이란다.

이렇게 생겼다. 보기가 좋아 페루 관광엽서에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조형물에서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완차코 해안의 갈대배

좀 더 가까이서 본 갈대배

약 2/3 지점에 홈이 하나 있는데 그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게 아니고, 뗏목이나 말처럼 이렇게, 배 위에 탄다. 홈은 아마도 잡은 고기를 놓는 곳이렸다. 석양이 질 무렵 떼를 지어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무리를 운 좋게 볼 수 있었는데, 그들 삶의 고단함과는 상관없이 정말 힘차고 멋있었다.

갈대배 타는 남자 조각

완차코에 온 사람들은 모두 열 지어 선 배 사진을 찍거나, 사진 찍으라고 세워둔 배를 배경으로 찍거나, 배를 타 보는 경험을 하며 논다. 그들 대신에 내가 한 것은 관찰. 배를 새로 만드는 사람은 보지 못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폐선(?!)은 하나 발견했다. 넌, 행복했니? 가만히 말을 걸어본다. 어쨌든 참 환경친화적인 물건이로고. 우리 선조들의 모든 도구가 그랬겠지만.

다 쓰고 버려진 갈대배

그러나 머잖아 쥔장은 해변에서 노닥거리다 망가진 배보다 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였으니...

꽁지에 스티로폼이 들어있는 갈대배

보이는가. 저 꽁무니에 들어간 흰 스티로폼 덩어리가. 중간의 안장에도 들어있다...!

안장에도 들어있는 스티로폼

저 배뿐 아니라 모든 배에 다 들어있다. 아마도 저 흰 덩어리가 마을에 소개된 어느 날, 누군가 선도적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배를 '개량'했을 것이다. 곧이어 모두들 따라했을 테고. 그건 옛날 방식이 아니니 사기 치지 말라고 할 생각도, 눈가리고 아웅 따위 하지 말라고 할 마음도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내게는, ‘완차코의 갈대배’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저 스티로폼이 되어 버렸으니, 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왜 나는 보라는 것만 보지 않고 다른 것도 보려고 하는 인간으로 태어나 버렸단 말인가. 그런데 이 얘길 왜 이렇게 올리기 귀찮은 사진까지 방출하면서 구구절절 쓰냐고? 뻔하지. 혼자 당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도 완차코, 하면 갈대배가 아니라 스티로폼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레드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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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4/01/11 13:38 2014/01/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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