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왜’냐고 묻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왜냐는 물음이 용납되지 않아, 저는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어서, 여성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어느 순간부터 저는 말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앎과 삶의 불일치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있으면서 ‘감히’ 여성주의자입네 해도 되는 걸까,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하여, 제 말문을 틔웠던 여성주의로 인해 되레 말을 잃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 제 입을 반쯤 틔운 건 하나의 글이었습니다.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여가부와 일베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는 글이었죠. (이후 '공통점'을 추가해 새 글까지 썼네요. 법원판결도 여성가족부 탓이군요. 보시다시피 사법, 입법, 행정부를 쥐락펴락 하는 여성가족부입니다, 녜;)

공통점

1.남녀갈등을 조장한다.
ex)여가부:군가산점,성매매특례법 등
일베:김치X, 보X아치

2.둘다 似而非(사이비)다.
ex)일베는 보수가 아닌데 보수라 주장(실제로는 친일종북)하고
여가부는 페미니즘이 아닌데 페미니즘이라 우긴다.(실제로는 여성우월주의) (원래 페미니즘은 남성의 인권을 떨어뜨리고 여성인권을 올리는게 아니라,여성인권을 남성수준으로 신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미국,북유럽등의 페미니스트가 우리나라에 오면 욕을 할것이다.)

3.일반 사람들에게 욕 먹는다. 특히 여자에게 더 욕 먹는다.

4.둘다 선행보다 악행이 많다.
일베에서도 선행을 어느 정도로는 하지만,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수간).
역시 여가부에서도 성폭력예방, 호주제(이건 선행)이지만, 악행을 더 많이 저지른다(ex: 셧다운제, 아청법).

차이점

1. 여가부는 정부 산하지만, 일베는 국정원 산하 무료알바다.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편견과 오만에 가득 찬 이 글이 ‘유머’ 게시판에 올라가 있고, 수십 명이 그 논지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 이 글은 풍자와 비하에 관한 것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풍자에 대해 심오한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때 풍자소설을 가장 사랑했던 제 생각에, 권력을 비트는 것은 풍자입니다.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것은 폭력입니다. 전자는, 약자들과 함께 보고 웃을 수 있습니다. 권력자들의 마음에는 안 들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권력이 있으니까 그깟 풍자 따위, 인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까 괜찮습니다. 좀 더 대범한 치라면 함께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요. 좀 더 꼰대 같은 이라면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보복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나 약자를 비트는 건, 잔인한 행위입니다. 장애나 인종, 성정체성 등에 대한 비틀기가 ‘풍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비하이고 차별, 폭력이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하거나 관철할 힘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한 가지 속성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는 권력자인 동시에 약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한 가지 정체성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한국사회에서 그 오묘한 결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집단이 (특히 보수 쪽의) 여성 정치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권력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이기에 ‘OO년’이라는 막말을 듣거나, 누드 합성사진의 대상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는 결국 현재 여성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풍자의 대상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현재의 여성가족부. 네, 저도 참 별로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른 건 다 제쳐두고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더 더 우월하게 하려고 여성가족부를 존속시키고 있는 걸까요? 이미 여성이 우월한데 여성들만 그걸 모르고 있어서 놔두고 있는 걸까요?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 여성우월 사회라고 할 만한 권력이란 게 대체 여성의 어디에 있는 건지요. 불혹의 나이에 집도 절도 직장도 없어서, 생존을 위해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라는 충고나 받는 제게 있습니까? 아이는 어린이집과 보모에게 맡기고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서 주말에는 밀린 살림과 아이 보기로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가는 게 눈에 보이는, 제 언니에게 있습니까? 살림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 상대적으로 살림할 시간을 보장해 주는, 그렇기에 '최고의 신붓감’ 소리를 듣는 제 교사 사촌에게 있습니까? 아니면, 박근혜에게 있습니까? 그것이 박근혜가 ‘여성’이라서 획득한 것입니까? 주위 어떤 사례, 어떤 통계에서도 여성우월 사회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는데 말이죠. (징집이나 군 가산점제 얘기하고 싶은 분들은 이 글 읽고 다시 오세요. 여성징집을 제일 반대하는 부처가 어디인지도 좀 파악하시고.)

이쯤에서 저는 또 궁금해집니다. 다른 행정부처 다 놔두고 왜 하필, ‘여성가족부 괴담’만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는 걸까요? 노동자를 위한 정부기관이라 하는, 그러나 정작 사용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용노동부가 회식비를 얼마를 썼니 마니에 대한 루머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보건사회복지부와 일베의 공통점 따윈 상상해 본 적도 없으시겠지요. 바로 그 사실이, 여성이 여전한 사회적 약자임을 증명하는 거 아닐까요. (심지어 현재의 여성가족부는 ‘가족청소년부’라는 이름이 더 적합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여성들은 여전히 이 사회에서, 가장 ‘만만한’ 존재입니다. 물론 그 지위에 변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소수집단과 비교하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요.

저 ‘유머’의 당사자가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결국 저 ‘유머’를 만든 이의 여성에 대한 관점은 ‘일베’ 사용자들의 여성혐오와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욕설의 수위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기 어렵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은 ‘내가 일베란 말이냐! 민영화나 먹어랏!’으로 수렴될 테죠.

...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굳었던 입이 쉽게 열릴 리 만무했습니다. 그러다어제, 소위 ‘김치녀 대자보’를 접했습니다. 사실 그리 ‘세련된’ 혹은 ‘친절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유의 글이 먹히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을 해치지 않아요’라는 메시지를 구구절절 집어넣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러나 세련되지 않았기에 더 진정성 있어 보이는 그 대자보를 보고, 미안했습니다. 20년 전 우리는 ‘여성의 현실이 이래.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원해’라고만 했으면 됐는데, 한바탕 페미니즘의 유행이 쓸고 간 이 사회의 여성들은 이제 여성차별에 더해 여성혐오와도 싸워야 하니까요. 선배 여성(주의자)으로서 이런 사회를 물려주어, 정말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제가 고작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개념녀도, 김치녀도, 그 어떤 기준에도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사세요”인 것도 미안합니다. 좀 더 그럴싸하고 멋진 말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그런데 오늘, “대자보는 이런거 쓰라고 있는게 아니”라며, 또 다른 ‘김치녀 대자보’를 지칭하는 글을 접했습니다. 역시 '유머' 게시판에 있는 해당 글에는 이 문구에 빨간 네모가 쳐져 있더군요. (어이쿠, 그새 '민영화' 많이 먹고 사라졌네요.)

김치녀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건 이 각박한 세상입니다
평범한 여성이 이 사회에서 안녕하려면 김치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많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남성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기에 성형을 하고 화장을 합니다. 그런 남자를 만나려면 자신의 생활 수준보다 높은 소비를 해야 하기에 명품 백을 들고 스타벅스에 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 둘씩 김치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군요. 대자보는 그런 거 쓰라고 있는 게 아니군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대자보는 어떤 데 쓰라고 있는 것인가요? 알려 주세요. 아, 그런데 그 전에 누가 당신에게, 저 여성의 입을 막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는지 참 궁금합니다.

사실 개념녀가 될 수도, 김치녀가 될 수도 없는 젊은 여성들의 고민을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을 지나온 저는 눈물이 나더군요. 저희 세대 역시 주류에서 배척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떤 주장 앞에는 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을 붙여야 했으니까요. 더 더 오래 전부터, 여성은 성녀이자 마녀여야 했으니까요. 이름만 다를 뿐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와 혐오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구나 싶어 몹시 서글펐습니다. 그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여성이 되지 않는 것'뿐인데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얘기죠. 자기부정의 끝은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물론 선배 여성으로서 안타까운 점은 분명 있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려는 것도 나쁘지만, 모든 원인을 사회에만 전가하는 것도 건강한 사고방식은 아니니까요. 평범한 여성이 되지 않기를 선택하고, 조금 덜 안녕하기를 선택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겁니다. 너무 두려워 마세요. “평범한 여성”으로, “이 사회에서 안녕”하길 택하지 않고서야 비로소 행복해진, 제 얘기입니다.

다시 돌아와, 누가 글쓴이에게 저 여성을 비웃을 권리, 가르칠 권리를 주었을까요?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 아마 저 여성도 그럴 텐데. 네네, ‘무지몽매한’ 여성을 가르치는 건 예로부터 천부남권(天賦男權)이었죠. 여성은 늘 남성의 소유물이고, 마음대로 해도 되는 존재이고, 때려서라도 말을 듣게 만들어야 하는 열등한 존재니까요. 어디 암탉 따위가 말이죠. 그러니 이렇게 ‘준엄히 꾸짖어’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죠.

... 설득에 지치고 게으른 저는 그저,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쓴이님, 그리고 오늘도 다른 여성을 가르치느라 불철주야 고생이 많으실 남성 여러분, 그런 사명감 따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무거운 짐일랑 내려놓으시고, 공감을 할 수 없다면 그저 존중해 주세요. 죽을 수도, 미칠 수도 없는 그들의 고민을 존중마저 하기 어렵다면 그저, 무시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왜 이것을 하지 않아?’라고 남을 다그치지 마시고, 가르치려 하지도 마시고, 당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세요. 그렇게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잘 살 테니까요. 그렇게 놔둬서야 이 사회가 어떻게 되겠냐고요? 그런 우국충정은 다른 ‘거대한’ 주제에 쏟으셔도, 사회는 충분히 잘 돌아갑니다. 걱정 마세요.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두 개나 가져와서 썼으니 응당 그 커뮤니티에 올리는 것이 좋았겠으나, 커뮤니티 활동은 당최 적성에 안 맞는지라 제 공간에 올린 것이니 너무 불쾌해 하진 마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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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4/01/17 14:57 2014/01/17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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