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몇 달 지난 얘기지만 그래도 해야겠기에;

지난 11월 말, 인터스텔라를 보러 갔습니다. 아이맥스에서 봐야 한대서 무려 2주 전에 예약을 했지요. 아이맥스는 무조건 뒷자리를 외친 동행 덕에 예매한 좌석은 맨 뒷자리 장애인석 옆이었습니다.

영화관 좌석배치도
<상영관 좌석 배치도>

이렇게 생긴 배치라, 영화를 보러 온 휠체어 장애인이 없을 경우 우리는 맨 뒷줄에 오붓하게 앉아 영화를 보게 될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휠체어석은 공간과 바(bar)만 있어 휠체어를 타고 있어야만 착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기 이틀 전, 우연히 들어가 본 영화관 사이트는 제가 예매한 일시의 표가 매진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응? 장애인석도 매진이라고? 때마침 쥔장의 호기심 발동. 매진 표시는 장애인석까지 매진일 경우 표시되는가, 비장애인석만 매진일 경우 매진 표시를 하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다른 시간대의 예매현황 등등을 살펴보고 마침내 알아낸 정답은? 장애인석까지 매진되어야 ‘매진’으로 표시된다, 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저는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에 살짝 설렜습니다. 1년에 한 번 영화관을 갈까 말까 하는 입장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휠체어 장애인들이 영화관람을 하기 편치 않은 조건이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영화관에서 휠체어 장애인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어쨌든 휠체어 장애인도 한참 유행하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니, 한국도 조금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또 하나의 호기심 발동. 이게 정말 장애인에게 판매된 것일까? 혹시 비장애인이 장애인인 척 하고 표를 산 건 아닐까? 그래 시험 삼아(?) 다른 시간대 장애인석 예매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오, 안내 같은 경고 같은 안내 같은 아무튼 팝업창이 표시됩니다.

“고객님이 선택하신 좌석은 장애인석으로 일반고객은 예매하실 수 없는 좌석입니다. 장애인석은 휠체어 전용좌석으로 일반고객은 현장에서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좌석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일반고객’이란 말이 두 번이나 나와 빈정이 좀 상하긴 하지만 그건 잠시 덮어두죠. 그러니까 내용인즉슨, 이 자리는 휠체어 장애인만 예매 가능하고, 비장애인이 예매한다손 치더라도 현장에서 들여보낼 때 휠체어에 착석한 사람이 아니면 입장을 시키지 않겠노라는 얘기인 거죠. 비로소 실감이 났습니다. 나는 휠체어 장애인과 영화를 보는, 한국에서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을 한 비장애인이 될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죠. 보통 장애인석(엄밀히 말하면 휠체어석)은 몇 개씩 연달아 설치하는데,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영화를 보러 온 경우에는 따로 앉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장애인은 장애인끼리만 영화를 보라는 건가 -_-;) 장기적으로는 어느 자리든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되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당일 낮, 동행과 휠체어석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를 정하기도 하면서 점심을 먹고 영화관에 입장. 그런데 응? 우리 자리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두 좌석만 동떨어져 보이거나 우리 좌석 옆에는 휠체어가 있어서 바로 눈에 띄어야 할 텐데 말이죠. 뭐지 뭐지? 왜지 왜지? 당황하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왼쪽에는 휠체어 대신 이동식 커플석 의자 세 개가 놓여있네요. 그곳에는 젊은 커플 세 쌍이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말이죠. 텅 비거나 휠체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일반의자’ 세 개가 놓여 있으니 우리 자리가 눈에 띌 리 없었습니다.

대외적으로 영화관의 장애인석은 영화상영 10분 전까지 비장애인에게 예매가 허용되지 않다가 (당연하죠. 영화를 보고자 하는 장애인이 언제 예매를 하거나 현장에 나타날지 모르니까요) 영화상영 시간이 임박해서도 좌석이 소진되지 않으면 비로소 비장애인에게도 입장을 허락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는 영화상영 시간과 관계없이 비워두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만, 현실적으로 저 정도 성의(?)라도 보인다면 크게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옆에 앉았던 사람들의 정체가 휠체어 장애인 전용석을 상영 직전이 아니라 이미 ‘며칠 전’에 예약해서 앉아 있는 비장애인이라는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영화관에서 휠체어석을 매진 처리하고 의자를 미리 세팅한 후 현장에 도착한 비장애인에게 선착순으로 좌석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겠네요. 다른 시간대의 예매상황을 보면 아주 아주 낮은 가능성이긴 하지만요;) 그들이 어떤 경로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되었는지 개인적으로 몹시 궁금하긴 하지만 그것도 일단 넘어가죠. 여기서 중요한 건, 회마다 매진을 기록하고 있는, 수입 빵빵한 영화를 상영하는 대기업 영화관은 휠체어 장애인을 기다리는 대신 회당 72,000원(12,000원*6명)의 추가 수익을 선택했다는 사실이지요. 네, 영화관은 그 돈 받아서 잘 먹고 잘 사시겠지요?

장애인석을 차지한 커플용 간이의자
<휠체어 대신 커플석>

영화가 끝나고 장애인석 운영 규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장애인석 ‘설치’만을 강제하고 있을 뿐, 설치한 장애인석을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나 기준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런 식으로 임시의자를 갖다 놓고 비장애인에게 표를 팔아도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거죠. 쩝, 허탈하군요.

몇 년 전에는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일부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을 몰아서 설치하는 방식으로 ‘편법’ 운영을 하고 있음이 지적되기도 했는데요, 이젠 설치에 대한 문제제기뿐 아니라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까지 함께 점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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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15/01/21 13:26 2015/01/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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