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에서 사고를 쳤다. 사고 치는 게 어제 오늘 일이겠냐마는, 이번 건 좀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내 기준으로 보아 넘길 만한 사고도 있었고,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도 있었다. 그런 사고들이 연이어 뻥뻥. 지난 주부터 오늘까지. 더 정확히는 어제까지. 귀찮고 짜증 나서 일일이 쓰지는 못 하겠다만.

그래서 어제, 심각하게 출근하기가 싫었다. 에이 뭐, 나 좋자고 사는 인생, (하는 사람도 지겹고 나도 듣기 지겨운) 싫은 소리 들을 거 뻔한데 그냥 확 날라 버려? 으아악. 당장 입에 풀칠 할 일이 걱정인 것도 아닌데(왜 난 늘 이런 건방진 자세를 견지하는지, 가끔은 나도 의문이다). 정말 출근하기 싫어서 출근,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아드레날린 수치가 급상승. 맥주를 작은 잔으로 세 잔 정도 먹은 상태(사실 소주 반 잔씩 섞어서 먹었다, 흠흠;)였으니 망정이지, 더 마신 상태였더라면 자칫 실려 갈 뻔했다.

스무 살 이후로, 아니 사실 그 전부터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부모님이 해결해 줄 거라고, 그들에게 기대도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흔히 하듯 "엄마~" 하면서 전화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대신해서 짐을 떠 맡아줄 사람이 있었으면, 싶다. 어이 거기, 누구 없어요?

찾아보면 없겠냐마는, 그래도 오늘 출근해서 그 야단을 다 맞고(그것도 두 명에게!),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지 마음먹은 나는, 그리하여 오늘 하루도 살아내었다.

2.
약 3주 전부터 유달리 심해진 윗집 아가 공룡들(넷이나 된다. 이해해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가끔 이 집 엄마가 "조용히 해!" 하는데- 밤에 가만 있으면 윗집 아저씨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 생활소음에 전혀 무방비인 집에 사는지라 애들 혼내는 소리도 다 들린다- 애들이 까르르르 웃으며 도망갈 땐 정말 내가 다 할 말이 없어진다)이 내는 소음을 참을 수가 없을 때면 가끔 '그분' 생각을 한다. 골격 튼실한 '그분'이 2층 가서 한 번 스윽 쳐다보기만 해도 좋이 한 달은 집에서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그도 생각해 본 적 없을 테고(물론 내가 부탁하면 그리 해 주기는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런 '불경한' 생각을 입 밖에 내어 본 적이 없다.

대신 오늘 저녁 나는, 2, 30분을 참고 있다가 굳게 마음을 먹고 지퍼백에 햅쌀을 2kg쯤 담아 2층으로 올라가 "뇌물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하고 돌아왔다. 5월 말에 처음 그 집에 가서 "이 건물이 층간소음이 유달리 심하거든요. 밤이랑 주말만 좀 조심해 주시길 부탁드려요" 한 뒤로 두 번째 걸음이다. 그땐 정말 어젯밤만큼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뇌물'이라는 말에 한껏 경계를 하던 이 집 아줌마는 당장에 눈치를 채고 제일 작은 아이를 가리키며 "아유. 얘가 너무 시끄럽죠~" 한다. 그래도 집에 뭐 갖고 온 사람이라고 "고맙습니다~" 깍듯이 인사하는 꼬맹이한테 뭐라 하겠나. 보아 하니 경우 없는 부부도 아닌 것 같던데(게다가 누가 찾아왔다며 그 집 아저씨부터 꼬맹이 넷이 눈 똥그랗게 뜨고 현관에 보란 듯이 줄줄이 서 있었단 말이다;;;). 그래 "아니에요. 밤에만 조금 주의해 주셔요 ^^" 하고 왔다. 다시 내려온 후 지금까지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우리집(역시 인간관계는 '뇌물'로 좌지우지 되는 거냐).

3.
어른이 된다는 건, 혼자 산다는 건, 이런 것. 그리하여, 조금은 뿌듯하고, 또 조금은 슬픈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런데 이건, 어른이 되는 거냐, 늙어가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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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11/02 23:10 2009/11/0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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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전에 사 읽은 책에 대한 얘기를 10년도 지나서 하게 된 건 순전히 엊그제(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할 그 당시엔 분명히 '엊그제'였다) 퇴근길 버스에서 내 뒤에 앉아있던 사람 때문이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지만 나의 버스 이동에는 분명히 방해가 되는 크기로, 그는 통화중이었다. 친구와 통화중인지, 왜 자기가 아직 그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에 대해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다가, 그래서 어디서 만날지 계속 계속 계속 묻고 답하던 중(이쯤에서 나는 짜증이 북받쳐 올라 버스에서 내려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버스가 멈춰 선 정류장에서 벌어진 싸움을 보고 이 사람 하는 말,

"어머. 어떤 개념 없는 애들이 버스정류장에서 싸우고 있어. 완전 소리 커. 여기까지 다 들려."

아, 그 순간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푸하하하 웃어버렸는데, (그럴 리는 없었겠다만) 그 애가 나를 봤다면 아마도 DMB로 코미디 프로 보는 '개념 없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게다(하지만 미안, 요새 DMB로 보는 뉴스는 웃을 일이 별로 없어).

주위에 누가 있건 말건 거리낌 없이 떠드는 사람들은,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존재하는 것이며, '내'가 이어폰도 없이 DMB를 시청하는 동안엔 다른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혼자 책 읽다가 뒤집어지게 웃는 사람을 간혹 보게 되는데(어, 나다;) 그 사람이 옆 사람 눈치 보면서 웃더냐 말이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땐 주위 사람이 눈에 안 들어오는 거랑 같은 이치다.

10년도 전에, 모 대학 앞 서점에서 이 책을 사 읽은 건 순전히 표지 때문이었다(그 때 샀던 책은 XX 씨가 꿀꺽 한 후 당최 돌려줄 생각을 않았던 관계로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건 1999년에 다시 산 8쇄본이다). 후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소진 전집>도 갖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마지막 소설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편애한다. <김소진 전집> 만듦새가 워낙 허술하기도 하지만(표지부터 책등까지 다 울어버린 그 제본이라니!), 그토록 따뜻하게 웃는,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해 보이는 사람의 얼굴을 외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 그의 이름 한 자락 들어본 적 없지만 낼름 책을 사버린 건, 순전히 그 표지사진 때문이었다.

원한다면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밤중에 무서운 할머니네 항아리를 깨 먹은 아이는 마침 내리는 눈으로 그 항아리에 눈을 뭉쳐 눈사람을 만들고 혼날까 봐 아침 일찍 도망 나갔다 저녁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집에 들어왔더니! ...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더란 얘기다. (세 줄이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음을, 어른들이 모두 그를 "더 곤혹스럽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짜고 그러는(29쪽)"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구나.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짐작하고 또 생각하는 세계하고 실제 세계 사이에는 이렇듯 머나먼 거리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 거리감은 사실 이 세계는 나와는 상관없이 돌아간다는 깨달음, 그러므로 나는 결코 주변으로 둘러싸인 중심이 아니라는 아슴푸레한 깨달음에 속한 것이었다(29~30쪽).

대체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하루 온종일 밖을 쏘다녀도, 아이들은 피곤해하지 않는다. 설혹 피로하다 쳐도, 피곤하다 느낄 새도 없이 잠들어버릴 거다. 그러므로 '피로'는 '어른'의 것.

나는 어린애답지 않게 몹시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그것은 내가 그 순간 헐떡이고 있었던 이유를 적절하게 해명해줄 수 있었다. 피로하다는 것,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감…… 하긴 어찌 피로하지도 않고 감쪽같이 기절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때 내가 피로해야 하는 목적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기절하는 것이었다. 기절이라도 하고 나면 이 세상에 뭔가가 달라져 있겠지, 혹은 최소한 모면의 여지는 남겠지 하는 맹렬한 위안이 달라붙었다. 동시에 그 피로감은 어쨌든 세상에 대한 것이라는 게 명백해졌다. 변소에서 오줌보를 비우고 돌아서기까지 나는 너무나 생생했고, 빠루를 밟고 나서 갑자기 피로감을 느끼기까지 불과 십여 초가 흐르는 동안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피로감이란 육체적 고단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정신적 흔들림에서 우러난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피로감은 어른에게나 해당하는 피로였다(15쪽).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건 슬프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비로소 타인이 보이게 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한 가지(친구와 전화하는 '나')가 아니라 두루두루(다른 승객들) 생각하고 살피는 것. 나를 '두루두루' 중 하나라고 인정하는 것.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애들을 가리켜 남녀노소 불문하고 '애들'이라고 부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내 주위에는 미성숙한 영혼들이 너무 많다. 그들의 '천진난만함'을 그대로 보아 넘길 만큼 너그러운 인간이 아닌지라 그 영혼들에게 이 책 한 권씩 쥐어주고픈 생각이 불끈불끈 든다만, 읽기나 할지. 읽고 '어른'이 되기나 할지. 세상엔 이렇게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리는 아이도 있는데.

참, 10여년 전엔 몰랐는데, 그 땐 그냥 '요절 작가'라고만 어슴푸레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책날개를 다시 보니, 그는 정말 '너무 일찍' 갔구나. 나는 이미 그가 살아보지 않은 나이를 살고 있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김소진 지음 / 강 펴냄 /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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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1 00:18 2009/07/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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