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어제 오늘 넘쳐나는 "여기자" "여기자" "여기자" 소리. CNN 보도에서 그냥 "two journalists"라는 걸 굳이 "두 여기자"로 번역해서 자막 깔아주는 센스(?)와 북한방송에서조차 "미국 기자들"이라는 걸 또 굳이 "여기자들"로 바꿔 부르는 집요함은 그냥 아직 이 사회가 너무나 후진적이기 때문이라고 "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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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6 10:28 2009/08/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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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미국 기자 두 명이 북한에 붙잡혀 재판을 받고 형을 사는 과정을 보면서 미국이 대체 어떻게 대처할지 몹시 궁금했다. 제 나라 국민들을 각종 위험에서 지켜내는 것은 근대 시민국가의 핵심이 아닌가. (아닌가? -_-;) 그러나 고작 국민 두 명으로 위험천만하게시리 전쟁을 할 수도 없고 맨날 말로만 관용을 베풀어 사면해 달라, 추방해 달라, 이렇게 얘기한다고 들어줄 북한도 아니고, 대체 미국이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할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 그런데 빌 클린턴이라니. 미국, 정말 소름 끼치는 나라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반면 이 나라 국민 한 명이 몇 달째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걸 남북대화 화제로도 꺼내지 못하는 이 정부(사실 다른 정부라고 뭐 그리 다를까 싶기는 하다만)는 차치하고서라도, 번연히 제 나라 땅에 발 딛고 있는 제 나라 국민을, 최소한, 정말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은 채 '제압'에 열 올리고 있는 이 나라는 대체 뭔가. 대한민국, 정말 소름 끼치는 나라다.

정말,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

... 아무도 죽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무력한 마음이 부끄러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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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tcetera

2009/08/05 11:09 2009/08/0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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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번역이 엉망이어서도 아니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오탈자 때문도 아니고, 행간이 너무 빡빡해서도 아니고,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도 아니다. 그냥,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심장을 한 번씩 들었다 놓는 것처럼 무겁기 때문이다.

일 없고 돈 없고 부양해야 할 아이만 있는 남미의 한부모 여성의 선택은 미국행이었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그럼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책이 탐구하는 건 바로 그 남겨진 아이들이다. 엄마 찾아 삼만 리를 떠난 아이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는 엔리케의 여정은 결코 (제대로 본 적이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가슴 따뜻하고 감동적이진 않다.

어릴 때 헤어져 어렴풋한 촉감과 몇 장의 사진, 간혹 걸리는 전화 목소리 정도로만 엄마를 기억하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우리 환상 속의 완전무결한 엄마이기도 하고 그대로 '아메리칸 드림'이기도 하다. 엄마가 보내주는 돈으로 이곳에서 다른 집보다는 약간, 아주 약간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정서적으로 몹시 피폐하다. 책에서 세밀히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이건 딱히 '엄마'가 키우지 않아서(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 뷁!)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래 하나 뿐이던 주 양육자가 아예 없어져버리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힘든 다른 일가친척에게, 그것도 모자라 번번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려가며 맡겨지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다.

(이건 잠깐 다른 얘긴데, 어찌 보면 엄마들에게도 이 아이들은 '드림'인지도 모른다.

"많은 엄마들이 아주 잠깐 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6년에서 8년까지 계속 헤어져야 해요." 이주민 문제를 전공한, 로스앤젤레스 지역연합학교 사회복지사인 아날루이사 에스피노자가 말했다. 어떤 엄마들은 밀입국 알선자에게서 자기 아이가 아닌 아이를 건네받는 경우도 있다. 처음 보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을 잃지만, 엄마들은 금세 받아들이고 자기 자식처럼 키운다. (189쪽)

"금세 받아들이고 자기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을 정말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걸 보니 공부랑 영 등진 건 아닌가?)

보내주는 돈으로 학교를 마치고 변변한 직업을 갖길 바라는 '엄마'의 소망과 달리 이들은 대개 본드와 마약에 손을 대고, '막장'까지 치닫다 결국 아무 희망도 없는 고향을 떠나 '엄마'를 찾아가게 된다. 미국에 가서, 엄마를 찾으면, 다 잘될 거야.

책의 상당 부분은 이들이 '엄마'를 찾아 가는 여정에 대한 묘사이다. 어디서 어떻게 기차를 몰래 타고, 어디서 강도를 만나고, 어디서 치료를 받고, 어디서 다시 잡혀 송환되었다가 다시 시도를 했는지. 그 와중에 누구는 강간을 당하고 누구는 다리를 잃고, 누구는 돈을 잃고, 또 누구는 목숨을 잃는다. 함께 여행하는 아이들도 믿을 수 없고 지역 폭력배들도 믿을 수 없고 경찰도, 이민국 사람들도 믿을 수 없는 여행길.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는, 눈물겨운  여정.

그래도 그들이 이 지독한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이민국 직원에게 발각되어 돌려보내진 뒤에도 두 번 세 번, 일고여덟 번, 성공할 때까지 시도할 수 있는 건, '엄마'에 대한 그리움(혹은 환상), 희망 없는 고국,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예수 성심상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엔리케는 밑열이식 화물차 위에 혼자 있게 되었다. 밤이 검은 망토로 사방을 감쌌고, 기차는 작은 마을을 지나며 구슬픈 기적 소리를 냈다. 그때 우연히 옆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수십 명의 여자와 아이들이 작은 꾸러미를 들고 철길을 따라 집에서 달려 나오고 있었다.
  이주민들은 두려웠다. 이 사람들이 돌을, 아니 바위를 던질 것 같았다. 그들은 기차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렸다. 엔리케도 한 여자와 아이가 그의 밑열이식 화물차를 따라 달리는 것을 보았다.
  "이봐요!" 그들이 소리치며 던져준 것은 롤 크래커였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엔리케는 몸을 쭉 뻗어 잡으려고 했지만, 놓치고 말았다. 크래커가 몇 센티미터 옆으로 날아가, 기차에 맞고 땅에 풀썩 떨어졌다. 철길 양 옆에 있는 여자들과 아이들이 차량 지붕에 있는 불법이주민들에게 꾸러미를 던지고 있었다. 기차가 빨리 달려서 빗맞지 않도록 잘 겨냥해 그들에게 던져 본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엔리케가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그 여자와 소년이었다. 그들은 파란색 비닐봉지를 던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의 팔에 뚝 떨어졌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는 어둠 속을 향해 소리쳤다. 쏜살같이 지나간 그 사람들이, 엔리케의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엔리케는 봉지를 열었다. 롤 빵 여섯 개가 들어있었다. 엔리케는 그들의 친절함에 한동안 넋이 나갔다. (138~139쪽)

롤 빵 여섯 개에 넋이 나간 아이를 보며, 나는 아이의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한동안 넋이 나갔다. 어떻게,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두들겨 맞고 며칠은 좋이 굶은 아이에게, 상대에게 들리지도 않을, 고맙다는 인사를 할 힘이, 심성이 남아 있었던 걸까. 그러니까, 나를 울리는 건 언제나 다큐. 고맙습니다, 라니.

그리고 잘 찾아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의 반대편에서 인간이란, 인간들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

이주민을 돕던 마을 사람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의 총을 잘못 맞아 죽은 것 같았다. 이들은 막대기와 돌멩이를 쥐고 시청을 둘러쌌다고 한다. 그리고 뭘 요구했을까?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물론 그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것은 그 전날 체포된 이주민들의 석방이었다. 이 가난한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한 사람의 죽음이 단지 '재수 없이 경찰 총에 맞아 죽은 사건' 이상이 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도움으로 멕시코-미국 국경에 도착해 어렵사리 돈을 모아 어렵사리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 엄마는 어렵사리 돈을 모아 '코요테(불법 밀입국 알선자)'에게 보내준다. 코요테는 아이와 몰래 강을 건너 육로로 엄마가 있는 지역에 데려다 준다. 드디어 모자상봉.

<엄마 찾아 삼만 리>는 여기서 끝날 것이다. 그러나 엔리케(<엄마 찾아 삼만 리>의 주인공 아이와 이름이 같은 건 우연일까? 책 내용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의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된다. 반가움도 잠시, 엄마는 고국에서 그려왔던 '그 엄마'가 아니요, 아이 역시 미국에서 오매불망 기다렸던 '그 아이'가 아님을 서로 깨닫게 된다. 왜 필요할 때 사랑을 주지 않았냐, 왜 곁에 없었냐며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한 아이와, 누구 때문에 이 타국에서 필요한 돈과 장난감을 보내주려고 열심히 일했는데 적반하장이냐며 억울해 하는 엄마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엄마'가 있는 '미국'이 결코 지상낙원이 아님을 깨달은 아이는 다시금 술과 마약에 손을 대고, 고국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의 삶은 망가져간다.

그쯤 가다 보면, 어떤 아이들은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정착하고 사랑하는 이와 살 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고, 어떤 이들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그렇고 그렇게 살다 그렇고 그런 삶을 마감할 것이다.

... 아이와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고국에는 굶어죽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엄마/아빠 혼자 미국으로 떠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학비와 장난감이 채워줄 수 없는 상실감에 괴로워한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남미의 가난한 이들에게 계속 주어지고 있다. 이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에필로그에 가서야 지은이와 전문가는 단순하지만 어렵고, 그러나 그 외에 방법이 없어 보이는 해법을 제시한다. 남미 국가들의 빚을 탕감해 주고 그들 나라에 일자리를 만들어 주라는 것.

... 오랜 시간과 돈, 무엇보다 열정과 애정으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 써낸 감동적인 르포 하나는 정말 많은 생각거리와 연구주제, 크나큰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더불어 사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다.

<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 하정임 옮김 /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펴냄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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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00:11 2009/08/0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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